[비즈한국] 2021년은 유럽 스타트업의 황금기였다. 2021년에만 약 100개의 유니콘이 탄생했고, 작년 대비 3배 증가한 1210억 달러의 자금이 조달됐다. 특히 유럽은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대한 막대한 자금 지원으로 미국과 대등한 수준의 생태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벤처캐피털회사 아토미코(Atomico)가 12월 초에 발간한 ‘2021년 유럽 테크 보고서(State of European Tech 21)에 따르면, 2021년은 유럽 스타트업의 분수령이 된 역사적인 해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공요인은 첫째로 경제와 사회를 바꾸는 기술 발전, 둘째로 인재·자본·노하우의 체계적인 결합이다. 또 다른 어느 해보다도 ‘다양성’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되어 인종과 성별 등에 따른 근본적인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맞춤형 자금 지원 프로그램이 생겨난 것도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예를 들어 블랙 시드(Black Seed)는 유럽 스타트업 창업자 중 1.8%에 불과한 흑인 창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맞춤형 펀드다. 정치적으로 소수자인 창업가들을 지원하는 이 같은 프로그램이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한층 성숙하게 만들었다고 평가된다.
#‘코로나 특수’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
전 세계가 코로나로 몸살을 앓았지만, 유럽 스타트업계는 예외였다. 비대면, 온라인 중심의 생활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신기술은 새로운 삶의 방식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먼저, 10분 생필품 배송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이 분야의 스타트업 고릴라스(Gorillas), 플링크(Flink)가 최단기간에 유니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이후 겟티어(Getir)를 비롯한 경쟁 업체들도 속속 서비스를 확장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다크 키친(Dark Kitchen) 스타트업도 크게 성장했다. 유럽은 코로나 발발 직후 수 개월의 록다운 기간에 식당이 문을 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방(Kitchen)을 운영하되, 배달에 중점을 둔 일종의 ‘배달 전문 레스토랑’들이 성장했다. 코로나 전에도 다크 키친 모델은 있었지만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파리에서 시작한 다크 키친 스타트업 테이스터(Taster)는 ‘맥도날드보다 많은 다크 키친’이라는 모토를 내걸었다. 테이스터는 자체 한국식 치킨 브랜드 ‘아웃 프라이(Out Fry)’, 베트남 음식 브랜드 ‘미션 사이공(Mission Saigon)’, 비건 버거 브랜드 ‘어 버거(A Burger)’를 론칭해 큰 인기를 얻었다. 현재 파리, 런던을 비롯한 유럽 25개 도시에 진출했으며, 자체 다크 키친 이외에도 현지 150개 레스토랑과 제휴해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테이스터는 재주문율이 60%에 달하며, 파리에서는 배달 플랫폼 딜리버루에서 맥도날드, 버거킹 다음으로 매출이 높다. 2020년에 100만 끼의 식사를 배달했으며, 2025년까지 전 세계에 1만 개의 다크 키친을 오픈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35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성장한 분야로는 결제 관련 스타트업이 눈에 띈다. 현금 위주의 생활을 고수하던 유럽인도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쇼핑, 비접촉식 결제를 사용하게 되면서 결제 문화가 1년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소비자가 혁신적인 방식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돕는 결제 관련 핀테크 스타트업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
스웨덴의 스타트업 클라르나(Klarna)는 선구매 후지불(BNPL) 서비스를 선도하며 올해 3월 10억 달러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6개월 만에 기업 가치가 310억 달러로 증가했다. 2021년 상반기 유럽 핀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2020년 연간 총액을 초과할 정도로 핀테크는 유럽에서 가장 핫한 분야였다.
긴 팬데믹 기간 동안 사람들은 두 가지 분야에 큰 관심을 두게 되었다. 어떻게 건강하게 살 것인가, 사람을 못 만나는 이 기간에 어떻게 놀고 사회 활동을 할 것인가. 전자의 관심을 반영하듯 2021년에는 디지털 헬스 케어 관련 분야가 크게 성장했다. 스스로 건강을 모니터링하고 예방할 수 있는 웨어러블 기기와 앱이 큰 인기를 끌었다.
수면과 신체활동을 모니터링하는 스마트 링을 개발한 핀란드 스타트업 오우라(Oura)는 2013년에 설립된 다소 오래된 스타트업이다. 그런 오우라에게 2021년은 의미 있는 한 해였다. 디지털 헬스 케어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 덕분에 지난 5월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 C 투자를 유치했기 때문이다. 오우라는 현재까지 50만 개 이상의 스마트링을 판매했다.
#2021년 특히 주목받은 분야
앞서 말한 것처럼 2021년은 ‘사람들이 어떻게 놀고, 사회생활 할지’와 관련해 많은 시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뜨거운 주제는 ‘메타버스’다. 페이스북이 메타버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사명을 ‘메타’로 바꾸면서 ‘메타버스는 인터넷의 미래’라고 선언해 관심이 더욱 쏠렸다. 메타버스는 최고의 유행어로 떠올랐고, VR·게임 관련 스타트업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파리에 기반을 둔 스타트업 스테이지 11(Stage 11)은 메타버스를 위한 몰입형 음악 경험 구축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세간의 관심을 반영하듯 지난 10월에 약 577만 달러의 시드 투자를 받았다. 스테이지 11은 다비드 게타(David Guetta), 스눕 독(Snoop Dog), 니요(Ne-Yo), 에이콘(Akon)과 같은 아티스트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런던의 스타트업 그래비티 스케치(Gravity Sketch)는 디자이너들의 3D 디자인 원격 작업 플랫폼을 출시해 가상 협업이 가능하게 했다. 스웨덴의 VR/AR스타트업 월핀(Warpin)은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크라이(Kry)와 협업하여 무대·발표 공포증을 치료하는 VR 세라피 비디오를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메타버스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라기보다 현실과의 적절한 조화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 밖에도 2021년에는 핀테크와 함께 인슈어테크의 성장이 눈에 띈다. 보험 관련 스타트업에서는 2015년 대비 23배나 증가한 투자액을 유치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관련 보험상품을 함께 구매하는 임베디드 보험(Embedded insurance)에 대부분 주력하고 있는데, 앞으로 보험 업계의 대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래 지향적 스타트업들도 주목을 받았다. ‘고기의 미래’를 선언한 대체육 스타트업들은 투자자와 소비자의 관심을 동시에 받았다. 에스토니아의 스타트업 젤라텍스(Gelatex)는 기존 대체육 생산 비용을 최대 90%까지 절감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대체육 생산에 사용되는 나노섬유 재료가 비쌌기 때문에 젤라텍스는 자체 생산 기술을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방식은 앞으로 의약품 생산 및 에너지 저장 분야에 응용될 수 있어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래 지향적인 화두에서 ‘기후변화’를 빼놓을 수 없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클린테크(Cleantech) 스타트업들이 주목을 받은 가운데, 리튬이온 배터리 같은 기존 제품을 더 친환경적으로 만들거나 대안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특히 관심을 받았다.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는 리튬이온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보유해 전 세계 전기자동차 회사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볼보, 폭스바겐, BMW와 스카니아 등과 이미 270억 달러의 거래를 체결했다. 제품은 2024년에 납품될 예정인데, 이때쯤 노스볼트는 스타트업을 넘어서 중견기업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내년에는 또 어떤 혁신이 세상을 뒤흔들어 놓을까. 2021년을 넘어설 2022년을 기대해본다.
필자 이은서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향수병에 못 이겨 다시 베를린에 와 살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독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독일 기업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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