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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왜소 은하 중심에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숨어 있다!

우리 은하보다 훨씬 작은 왜소 은하 중심에서 우리 은하 블랙홀에 맞먹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 발견

2021.12.27(Mon) 10:27:53

[비즈한국] 우리 은하의 중심에는 아주 거대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 궁수자리 A* 블랙홀이 있다. 그 질량만 태양 질량의 약 460만 배에 달한다. 굉장히 거대하지만 사실 우리 은하 전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비중이다. 우리 은하 중심부 팽대부(Bulge)의 질량은 대략 태양 질량의 20억~30억 배 정도다. 우리 은하 중심부만의 전체 질량과 그 중심의 블랙홀의 질량 비율은 약 1000 대 1 정도라 볼 수 있다. 

 

은하 중심부의 질량과 그 중심의 블랙홀의 질량은 약 1000분의 1 정도의 일정한 비율을 따르는 관계를 보인다. 이미지=K. Cordes, S. Brown(STScI)


이러한 비율은 다른 은하들에서도 동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재밌게도 우주에 있는 거의 모든 은하의 중심부 질량과 그 중심에 숨어 있는 블랙홀의 질량을 비교하면 이처럼 딱 1000분의 1 정도의 기울기로 완벽한 비례 관계를 보인다. 이를 통해 은하 중심의 작은 블랙홀이 은하 전체의 규모와 형태를 결정하는 은하 진화의 씨앗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결국 은하 전체 질량에 비례해서 은하가 품고 있는 블랙홀의 질량도 달라진다. 우리 은하보다 10배 더 가벼운 은하라면 우리 은하보다 10배 더 가벼운 블랙홀을, 100배 더 가벼운 은하는 100배 더 가벼운 블랙홀을 품고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 은하 곁에서 이 간단한 규칙을 완전히 벗어나는 충격적인 은하가 발견됐다. 우리 은하 곁을 떠도는 작은 왜소 은하 레오 I(Leo I)은하다. 

 

우리 은하 주변을 떠도는 왜소 은하 레오 I. 사진=ESA/Gaia/DPAC/SDSS


레오 I 은하는 전체 질량이 우리 은하에 비해 약 1만 배나 더 가벼운, 대략 태양 질량의 2000만 배 정도인 아주 왜소한 은하다. 따라서 단순히 생각하면 1000 대 1의 비율에 따라 이 은하 중심에는 기껏해야 우리 은하 블랙홀에 비해 1만 배 더 가벼운, 태양 질량의 2만 배 정도 수준의 작은 블랙홀이 있을 거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엔 우리 은하가 품고 있는 블랙홀에 버금가는, 태양 질량의 200만 배에 달하는 아주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있다. 

 

겨우 태양 질량의 2000만 배 정도에 불과한 왜소 은하가 중심에 태양 질량의 300만 배에 달하는 블랙홀을 품고 있다니. 자기 전체 질량의 약 16~22퍼센트에 달하는 엄청난 비중의 블랙홀을 품고 있는 셈이다! 은하 전체 질량에 비해 1000배나 더 작은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일반적인 다른 은하에 비해서 확연히 높은 비중이다. 자신의 왜소한 규모에 걸맞지 않게 너무 과한 블랙홀을 품고 있다. 대체 이 은하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주 작은 왜소 은하 중심에 어떻게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왜소 은하 레오 I은 밤하늘의 사자자리에서 밝게 빛나는 별, 레귤러스 바로 옆에서 겨우 볼 수 있는 희미한 왜소 은하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천문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체 질량 대비 암흑 물질의 양이 아주 적은 흥미로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문학자들은 미국 맥도날드 천문대에 위치한 2.7m 망원경을 활요해서 이 왜소 은하에 암흑 물질이 얼마나 많이, 어떻게 분포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관측하는 새로운 연구를 진행했다. 

 

특히 기존 연구에서 집중하지 않은 이 왜소 은하의 가장 중심부를 관측했다. 사실 은하의 중심부로 갈수록 별들이 더 빽빽하게 높은 밀도로 바글바글 채워져 있다. 이런 곳에서는 각 별을 따로 구분해서 움직임을 파악하기가 까다롭다. 그래서 기존 연구에선 개개의 별을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는 은하 중심에서 약간 벗어난 외곽의 별들만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인 관측적 편향(Bias)을 일으켰다. 은하 외곽으로 갈수록 별들이 더 느리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 은하에서 느리게 움직이는 별들 위주로만 관측했고 결국 은하 전체가 행사하는 중력의 세기를 더 약하게 오해하게 됐다. 

 

이번 관측에서 분석한 왜소 은하 중심부의 밀집된 영역.

 

이번 연구에선 더 좁은 영역에서 개개의 별들을 세밀하게 구분해 관측을 수행했다. 그 덕분에 별들이 바글바글하게 모여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중심부의 속도 분포를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앞선 연구에서 더 약하다고 오해했던 이 왜소 은하의 강한 중력의 진가를 제대로 알게 된 것. 이를 통해 은하의 정중앙에서부터 바깥으로 나가면서 거리에 따라 은하 속 암흑 물질이 어떻게 분포하는지 반경에 따른 암흑 물질의 밀도 분포를 측정하고자 했다. 

 

이러한 관측 결과를 다양한 질량의 블랙홀과 여러 암흑 물질의 분포를 가정한 모델에 비교하며, 관측된 별들의 실제 움직임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모델을 찾아냈다. 기존에는 단순히 이 작은 왜소 은하 중심에 거대한 블랙홀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그저 암흑 물질만 넓은 반경 범위에 적당히 퍼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블랙홀 없이 암흑 물질만 있다고 가정한 상태에선 그 어떤 모델을 적용해도 실제 관측된 아주 빠른 중심부 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이 왜소 은하 정중앙에 수백 pc(parsec) 범위에 막대한 질량이 한데 밀집되어 있어야만 설명이 가능했다. 거의 태양 질량의 300만 배에 달하는 아주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숨어 있다고 가정했을 때에만 실제 관측된 별들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우리 은하가 품고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75퍼센트에 이르는, 사실상 거의 맞먹는 엄청난 수준이다! 

 

최근 사진으로 담는 데 성공한 거대 은하 중심의 블랙홀. ​왜소 은하 중심에도 ​이와 맞먹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존재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미지=EHT


우리 은하에 비해서 만 배나 더 가벼운 작은 왜소 은하가 어떻게 이런 육중한 블랙홀을 품고 있을까? 이에 대해선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추측이 가능하다. 

 

어쩌면 레오 I은 처음부터 왜소한 작은 은하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원래는 우리 은하처럼 아주 거대한 평범한 은하였지만 지속적인 중력 힘 겨루기에 밀리면서 결국 갖고 있던 별과 가스 물질 대부분을 우주 공간에 흘리면서 잃어버렸을 수 있다. 실제로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구상성단 중에도 원래는 왜소 은하였던 천체가 우리 은하 안에 들어온 뒤 서서히 부서지고 물질을 잃어버리면서 지금의 구상성단처럼 보이는 잔해 일부만 남은 사례들이 있다. 

 

또는 반대로 작은 블랙홀들이 한데 모이면서 이제 막 초거대 질량 블랙홀을 완성한 은하일 가능성도 있다. 작은 왜소 은하가 중심에 블랙홀을 키우면서 훨씬 큰 보통의 은하로 성장해나가는 중간 과정일 수 있다. 그렇다면 레오 I은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은하 중심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어떻게 성장하고 탄생하는 것인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생생한 사건 현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천문학자들은 다양한 망원경으로 이 수상한 레오 I 왜소 은하를 계속 관측하며 그 모습을 모니터링해나갈 예정이다. 

 

거대한 블랙홀을 품고 있는 이 왜소은하는 더 큰 은하로 성장 중이거나 더 거대했던 은하가 파괴됐을 가능성, 정반대의 과정 두 가지 방식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 사진=NASA

 

그간 인류는 우리 은하 바깥에 있는 가장 가까운 초거대 질량 블랙홀은 약 250만 광년 거리에 떨어진 또 다른 거대한 은하, 안드로메다 은하가 품고 있는 그 중심의 블랙홀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연구에 따르면 안드로메다 중심의 블랙홀보다 더 가까이에 뜻밖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존재하고 있었다. 안드로메다보다 약 3배 더 가까운, 약 85만 광년 거리에 위치한 왜소 은하 레오 I 중심에 그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거대한 또다른 블랙홀이 숨어 있다. 

 

우리 은하 헤일로를 떠도는 60여 개의 또 다른 왜소 은하 중심에도 이런 육중한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은하계 중심뿐 아니라 그 주변 우주 공간에도 수십 개의 초거대 질량 블랙홀이 떠돌고 있을지 모른다! 곧 이어질 추가 관측과 연구를 통해서 지금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초거대 질량 블랙홀의 성장 과정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길 기대해본다. 

 

참고

https://iopscience.iop.org/article/10.3847/1538-4357/ac0c79

https://news.utexas.edu/2021/12/01/texas-astronomers-discover-strangely-massive-black-hole-in-milky-way-satellite-galaxy/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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