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남반구의 밤하늘에선 북반구에서 볼 수 없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망원경 없이 맨눈으로도 뿌옇게 보이는 두 은하를 만날 수 있다. 우리 은하 곁을 떠도는 작은 왜소은하 대마젤란 은하(LMC, Large Magellanic Cloud), 소마젤란 은하(SMC, Small Magellanic Cloud)다. 이들은 지구 곁을 도는 인공위성들처럼 우리 은하에 붙잡혀 곁을 맴돌고 있기 때문에 위성 은하(Satellite galaxy)라고도 부른다.
현재까지 우리 은하 곁에서 59개의 위성 은하들이 발견됐다. 이들 대부분은 약 130억 년 전 우리 은하가 탄생하던 순간 우리 은하를 만드는 데 쓰이지 못하고 그 주변에 남은 잔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부터 꾸준히 우리 은하 곁을 돌고 있는 위성 은하로 여겨졌다. 최근까지 진행된 많은 우주 진화 시뮬레이션에서도 거대한 은하 곁에 오랜 세월 살아남아 꾸준히 곁을 도는 위성 은하들의 분포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런데 가이아 위성의 새로운 데이터를 활용해, 이런 추정을 완전히 뒤집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위성 은하 대부분이 오래전부터 우리 은하 곁을 떠돌던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우리 은하에 접근한 것으로 의심된다. 애초에 우리 은하 곁을 도는 ‘위성’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추가 연구를 통해 이 사실이 확인된다면 이제 더 이상 이 천체들을 ‘위성’ 은하라고 부를 수 없게 될지 모른다. 대신 ‘유입’ 은하, ‘첫 방문’ 은하 등으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과연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 은하는 앞으로 어떤 운명을 걷게 될까?
우리 은하 주변 위성 은하들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가이아 위성은 우리 은하 속 별들과 주변 성단, 은하들의 정확한 속도와 거리를 측정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최근 가이아 위성이 완성한 세 번째 공개 데이터를 활용해 주변 왜소은하들까지의 거리와 속도를 비교했다. 그리고 무려 40개나 되는 왜소은하 대부분이 우리 은하 중심에서 아주 멀리 놓인 채 예상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우리 은하 곁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이들 대부분이 오래전에 우리 은하 중력에 붙잡혀 안정적인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아주 최근에 외부에서 유입된 ‘신입’ 은하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최근 20억 년 이전에 들어온 (천문학적으로) 따끈따끈한 신입들이다! 이는 최소 40억~50억 년 전에 우리 은하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의심되는 궁수자리 왜소은하나 마젤란 은하들에 비해서 훨씬 나중에 들어온 셈이다. 이런 신입들은 이제 막 우리 은하에 붙잡혀 궤도의 첫 바퀴를 돌기 시작했기 때문에, 아직 우리 은하 주변 궤도를 단 한 바퀴도 돈 적이 없다는 뜻이다!
보통 크기가 작은 왜소은하들은 우리 은하처럼 훨씬 덩치 큰 은하에 접근하면 강한 조석력에 의해서 산산히 부서진다. 해체된 왜소은하는 헨젤과 그레텔이 빵가루를 흘리듯이 궤도 뒤에 기다란 별과 가스 꼬리를 남긴다. 실제로 오래전에 우리 은하에 붙잡혀 이미 해체된 궁수자리 왜소은하는 우리 은하를 둥글게 감싸는 아주 기다란 조석 꼬리를 흘려놓았다. 하지만 다른 대부분의 왜소은하들은 뚜렷한 별과 가스 물질의 흐름을 보여주지 않는다.
덩치가 작은 왜소은하가 덩치 큰 우리 은하의 강한 조석력에도 부서지지 않고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덩치가 작은 왜소은하 자체가 많은 암흑 물질을 품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 왜소은하가 강한 자체 중력으로 단단하게 스스로의 형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왜소은하는 상대적으로 암흑 물질의 비율이 훨씬 적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위성은하들이 적은 암흑 물질과 약한 자체 중력으로도 쉽게 부서지지 않고 우리 은하 곁에 잘 머물고 있다는 것이 수수께끼였다.
이번 최신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애초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왜소은하 대부분이 사실은 이제 막 우리 은하에 유입되어 해체되고 부서지기 전이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암흑 물질이 적은데도 아직 부서지지 않고 잘 살아남아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우리 은하 주변 왜소은하 대부분은 ‘경력 같은 신입’인 셈이다. 너무 뻔뻔하게 잘 녹아들어 당연히 오래전부터 우리 은하 곁을 돌고 있는 위성 은하라 생각했지만, 위성이라 부르기 민망한 갓 유입된 은하였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왜소은하 대부분이 모두 동일한 방향에서 함께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앞서 천문학자들은 우리 은하 주변의 여러 왜소은하들과 구상성단들의 공간 분포를 통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이 우주 공간에 어떻게 분포하는지 지도를 그려보면, 우리 은하 주변 사방에 무작위하게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은하 중심 회전축을 따라 은하 원반에 수직한 방향으로만 분포한다. 이러한 구조를 우리 은하 주변의 거대 극 구조(VPOS, Vast Polar Structure)라고 부른다. 이는 우주에서 은하들이 만들어질 때 단순히 사방에서 한꺼번에 물질이 난잡하게 모여드는 것이 아니라 기다란 가스 필라멘트의 가닥을 따라, 긴 통로를 따라 물이 흘러가듯 물질이 모여들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모습은 우주의 진화를 구현한 다양한 우주론적 시뮬레이션에도 쉽게 볼 수 있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그런데 이번 연구에서 새로 분석한 왜소은하들의 공간 분포를 비교한 결과, 우리 은하 주변 왜소은하의 약 20퍼센트가 VPOS와 비슷하게 우리 은하 원반에 수직한 약간 다른 방향으로 길게 이어진 또 다른 분포를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이들은 오래전 우리 은하에 유입되어 해체되고 있는 궁수자리 왜소은하와 함께 길게 이어져 있다. VPOS에 비해선 작은 구조이지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수직 구조를 궁수자리 극 구조(SPOS, Sagittarius Polar Structure)라고 부른다. 이는 우리 은하 주변 왜소은하의 약 20퍼센트가 훨씬 오래전 먼저 유입된 궁수자리 왜소은하에 뒤이어 같은 방향으로 최근에 유입됐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우리 은하는 이렇게 길게 이어진 우주 거대 구조의 긴 흐름을 따라 유입되는 물질을 집어삼키며 성장해 나가고 있다. 기다란 거대 구조의 흐름이 두꺼운 빨대라면 이 흐름을 따라 유입되는 왜소은하들은 빨대를 타고 유입되는 버블티의 버블이라 할 수 있다. 우주적 규모의 빨대를 타고 빨려들어온 버블, 왜소은하들은 결국 우리 은하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해체되고 으스러지며 자신이 품고 있던 모든 별과 가스를 우리 은하에게 헌납하게 될 것이다. 왜소은하들은 빠르게 우리 은하의 일부가 되어 우리 은하를 더욱 살찌우게 된다.
우리 은하는 아직도 성장을 끝내지 못한 채 계속 외부에서 유입되는 왜소은하들을 집어삼키며 폭풍 식사를 이어가며 한창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은하를 살찌울 먹잇감들이 유입되는 두 개의 주요한 채널, 거대한 우주적 빨대가 확인됐다.
우리 은하는 벌써 태어난 지 130억 년 가까운 긴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하나의 거대하고 어엿한 나선 은하가 됐다. 이제 웬만한 중요한 성장 과정은 다 마친 완성된 은하, 전체 인생의 말년이 들어선 은하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 은하의 전체 역사를 생각해보면 이제 막 유아기를 지나 한창 성장하는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던 것일지 모른다. 오랫동안 꾸준히 곁을 맴도는 위성은하라고 생각했던 왜소은하들이 사실은 이제 막 유입되어 잡아먹힐 운명에 처한 따끈따끈한 먹잇감이었다.
앞으로 안드로메다 은하와 함께 반죽되어 더 거대한 타원은하로 변신하게 될 때까지 우리 은하의 왜소은하 먹방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아니 그 이후에도 먹방은 계속될지 모른다. 성장기 우리 은하는 아직도 배고프다.
참고https://sci.esa.int/web/gaia/-/60211-gaia-s-globular-clusters-and-dwarf-galaxies-with-orbits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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