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가 일곱 번째 시즌을 맞았다. 능력 있는 작가를 찾아내 홍보하고 전시까지 이어지는 명실상부한 미술가 응원 기획은 이제 미술계로부터 본격적인 작가 발굴 기획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6번의 시즌 동안 140여 명의 작가가 이 프로젝트에 소개됐고, 상당수 작가가 화단 진입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한국미술응원프로젝트협회(KAUP)’라는 그룹을 결성, 활동을 시작해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이번 시즌을 시작하면서 아직 터널 속에 있는 우리 현실에서 출구를 향한 자그마한 빛이 되리라는 믿음을 갖는다.
조선시대에는 서예를 회화의 앞자리에 세웠다. 당시 사회 지배층이었던 사대부들의 정신세계를 담아내는 데 추상성을 갖고 있는 붓글씨가 형상을 따라 하는 그림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회화가 서예를 따라 하기에 이른다. 따라서 19세기 조선시대 회화는 문인사대부들이 심심풀이로 그리던 그림(문인화)이 새로운 흐름으로 떠오르게 된다.
서예의 필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인데, 북산 김수철 우봉 조희룡 같은 이가 이런 방법으로 새로운 회화를 만들어 미술사에 이름을 올린 작가가 되었다. 이를 두고 ‘이색 화파’ ‘신감각 산수’라고 불렀다.
추사 김정희 같은 이는 한 술 더 떠 자신의 서체까지 만들었고(추사체), 그 서체로 제작한 그림이 한국회화사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세한도’(국보 180호)다.
문인사대부들의 정신세계를 담는 이런 그림은 서예를 중심에 두었다. 글에 담긴 고매한 정신성을 그림으로 나타내려고 한 셈이다. 이에 따라 글씨의 기운을 회화 속에 담으려는 노력이 있었는데, 문자의 형상미를 따라하거나 서예의 필력으로 산수화를 그리려는 시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사례는 20세기 서양미술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후 추상의 한 갈래인 ‘서법적 추상’이 그것인데, 서예의 필법으로 그린 추상화인 셈이다. 일본 미니멀리즘을 이끌었던 이우환도 서예의 필법으로 신감각 추상화를 만들어 성공한 대표적인 화가다.
정원희는 이런 맥락에 서 있는 보기 드문 작가다. 서예의 필법에서 출발한 그의 회화는 동양예술 가장 깊은 곳에다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작업은 소중해 보인다.
그는 서예로 다진 필력으로 자신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그린다. 서예의 직관적 구성과 같은 방법으로 인물을 단번에 그려낸다. 붓글씨 쓰듯이. 사람의 형상을 묘사하기보다는 순간적으로 보이는 성격과 움직임을 획에 담아 표현한다.
그의 ‘사람 연작’에서는 흰 종이 위에 한 붓으로 주저 없이 써 내려간 서예의 느낌이 보인다. 인물의 움직임에 따라 필력의 강약을 조절한 방법에서 사람 형상으로 쓴 글씨의 분위기가 풍기기 때문이다. 필력이 주는 경쾌하고도 약동하는 듯한 율동감이 강하게 나타난다. 붓의 다양한 움직임이 도드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필치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서양식 추상과 다르다. 형상이 가진 독자적 성격을 숙련된 필치의 운용에 담아내기 때문에 조선 후기 신감각 산수의 현대화 작업이라고 할 만하다.
전준엽 화가·비즈한국 아트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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