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스타트업에서 일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스타트업이니까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는 ‘스타트업이니까 무모해 보이는 것도 시도하고, 스타트업이니까 수평적인 관계로 의사소통을 하고, 스타트업이니까 나이와 직급에 관계없이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와 같은 희망적인 말들이 있는가 하면 반대의 경우도 있다. ‘스타트업이니까 체계가 없다’, ‘스타트업이니까 돈이 없다’, ‘스타트업이니까 야근이 많다’, ‘스타트업이니까 시행착오가 너무 많다’ 등 변명과 핑계가 되는 말도 많다.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스타트업계의 그런 역동성을 감안하고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들이 연달아 터지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런 연말에 ‘현타’가 오기 마련이다. 계획한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거나 투자에 적신호가 들어오기도 하고, 내부 직원과의 마찰로 해고를 고민하는 창업자들도 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가족·친구들과 따뜻한 연말도 못 보내고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기 마련이다.
스타트업을 하는 데에는 단 하나도 쉬운 일이 없다. 스타트업 전문 리서치 기업 ‘스타트업 게놈(startup genome)’의 2019년 발표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90%는 실패한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 신화는 9명 중 1명의 특이한 경우라는 것이다. 하버드경영대학원(Harvard Business School)에서 오랫동안 MBA과정을 이끈 시카르 고시(Shikhar Ghosh)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 벤처캐피털(VC)의 지원을 받은 스타트업의 75%는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한다.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스타트업의 실패를 연구하는 페일로리(failory)의 조사에 따르면, 스타트업의 34%는 출시한 제품이 시장성이 부족해서 실패하고, 22%는 마케팅의 문제로, 18%는 팀 내부의 문제, 16%는 재정적인 문제, 6%는 기술적 문제, 2% 운영상 문제, 2% 법적인 문제로 실패한다. 이 숫자 뒤에는 얼마나 많은 실패의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까.
오죽하면 ‘창업자 우울증(Founder’s depression)’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일까. UC샌프란시스코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마이클 A. 프리먼의 2018년 연구에 따르면, 창업자는 일반인보다 우울증이 30% 많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겪을 확률도 29%나 더 높다. 개인의 속도에 맞춰 성장해 나가면 되는 개인사업자나 소규모 비즈니스와 달리 스타트업은 남보다 빠르게 성장해 단시간에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 특성 때문에 이에 대한 압박이 일반 기업가들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도 성공한 스타트업은 10%에 불과
유럽의 상황은 어떠할까. 2020년 스위스의 스타트업 컨설팅 회사 스트라이버(stryber)는 유럽 스타트업에 대한 다양한 조사를 시행했다. 2013년에 설립된 스타트업이 2020년에 어떤 상태인지 살펴보았는데, 29%는 ‘완전히 죽은’ 상태였고,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38%가 ‘좀비’ 상태였다.
여기서 ‘좀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스타트업 투자 정보를 가장 광범위하고 활발하게 제공하는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에는 여전히 살아 있다고 나와 있지만, 아직 직원이 10명 이하인 곳이다. 즉 7년이라는 기간 동안 큰 성장 없이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의 스타트업이다. 빠른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스타트업계 기준에서는 ‘거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어느 정도 살아 있는(somewhat alive)’ 상태의 스타트업, 즉 크런치베이스에 여전히 노출되어 있으면서 50명 이하의 풀타임 직원을 고용한 스타트업은 22%였다. 또 스케일업(Scale-up)에 성공한 스타트업이 5%, 투자회수에 성공한 엑시트(Exit) 스타트업이 6%였다. 10개 중 9개의 스타트업이 실패한다는 앞서의 조사 결과와 거의 유사한 수치이다.
단지 ‘유지’하고만 있는 것으로는 스타트업에게 ‘성공’이라는 이름표를 가져다주지 않는 이러한 문화가 어떨 때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든다.
#실패를 광고하는 베를린의 퍽업 나이트(Fuckup night)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멋지게 도전하고 과감하게 실패를 선언한 이들의 이야기를 기념하는 행사도 있다. 베를린의 스타트업 생태계 중 하나인 팩토리 베를린에서는 창업자들에게 영감을 주는 행사가 많이 열린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창업 실패담을 공공연한 자리에서 풀어 놓는 ‘퍽업 나이트’다. 쉽게 말해 ‘창업하다 망한 스토리 대회’라고나 할까. 자신이 어떻게 실패했는지 7분 동안 10개의 이미지를 사용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다.
퍽업 나이트는 2012년 멕시코에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을 거쳐 전 세계 스타트업신에서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창업가들은 실패담을 나누며 다시 성공의 기회를 탐색하기 위한 도약점을 찾기도 하고,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공유하면서 심리적 치유를 받기도 한다.
베를린뿐만이 아니다. 브뤼셀에서는 ‘실패를 딛고 나아가기(failing forward)’라는 행사가 4년 동안 지속되었다. 200여 명의 창업가가 참여해 자신의 어리석은 아이디어로 인해 실패한 경험담을 나누는 자리다. 처음에는 연례행사로 진행했지만, 이제는 블로그와 영상의 형태로 제공해 언제든 실패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아카이브를 해놓았다.
EU에서도 스타트업의 실패에 관심이 많다. 유럽위원회(Eupeopean Commision)는 2015년 ‘라이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라이프(LIFE)는 ‘실패한 기업가 정신에서 점진적으로 배워나가자(Learning Incrementally from Failed Entrepreneurship)’라는 말의 약자다. 2015년은 유럽 스타트업 생태계가 폭발적으로 확장하던 시기였다. 10개의 유럽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되었고, 유럽에서 2만 5000개 이상의 스타트업 관련 밋업이 개최됐다.
유럽에서 스타트업이 중요한 이유는 경제 구조 때문이다. 유럽 전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고, 약 7500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EU 경제의 중추가 되는 중소기업의 씨앗인 스타트업은 잘 가꾸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라이프 프로젝트 보고서’는 유럽 국가별로 실패에 대한 문화적 인식을 분석했다. 그런데 유럽에서 ‘실패에 대한 문화적 인식’은 스타트업의 폭발적인 성장과는 다소 괴리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지수(Fear of Failure)는 미국이 30%인 것에 비하면, 유럽 평균은 40%나 됐다. 흥미롭게도 EU 본부가 자리해 그 어느 나라보다 국제적인 성장에 적합해 보이는 벨기에가 49%로 가장 높았고, 크로아티아는 30%로 가장 낮았다.
베를린의 퍽업 나이트 주최자 중 한 명인 파트릭 바그너(Patrick Wagner)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특히 독일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문화’가 있어 혁신을 시도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전통적으로 ‘직업’을 갖는 것, 고용되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투자, 성장, 확장, 도전을 주저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 특히 독일은 실패 이후의 과정, 즉 법적으로 파산하는 과정이 매우 엄격해 창업자들을 신중하게‘만’ 만든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결국 퍽업 나이트가 꿈꾸는 것은 ‘아무도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지 않는 문화’를 바꾸려는 것이고,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혁신을 가져오는 것이다. 퍽업 나이트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정기적인 오프라인 행사를 열지 못하지만, 올해 초부터 그동안 퍽업 나이트에서 반응이 좋았던 게스트를 초청해 팟캐스트로 자신의 실패담을 공유하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우리는 매일 성공 신화를 접한다. ‘신화’라는 말이 붙은 이유는 현실과 괴리가 커서일 것이다. 전체 스타트업의 절반은 창업 후 5년을 넘기지 못한다. 10년 동안 살아남는 스타트업은 약 3분의 1이고, 실제로 수익을 내는 스타트업은 40%에 불과하다. 실패하는 스타트업의 82%는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겨서다. 실패율이 가장 높은 분야는 IT이고, 특히 금융, 식품 분야의 스타트업은 규제와 법적 문제로 인해 실패한다.
시장에서 원하는 솔루션, 누구보다 뛰어난 마케팅 능력, 투자자의 든든한 자금력, 팀원들의 뛰어난 퍼포먼스. 처음엔 모두 괜찮았을 것이다. 그 누구도 실패를 전제로 두고 창업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판단이 틀려서, 때로는 시기가 맞지 않아서, 때로는 돈이 없어서 실패한다. 그리고 요즘은 많은 창업자들이 코로나 때문에 위기에 빠져 있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코로나는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늘 ‘틈새’는 있다. 살아날 틈새, 새로운 아이템을 내놓을 시장의 틈새. 그 틈새를 벌리려는 시도는 비록 실패하더라도 사회에 차곡차곡 쌓여 다른 누구에게 새로운 출발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필자 이은서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향수병에 못 이겨 다시 베를린에 와 살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독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독일 기업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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