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OTT 춘추전국시대를 맞은 지금, 저마다의 플랫폼에서 사활을 거는 것은 결국 오리지널 콘텐츠이다. 잘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가 있으면 소비자는 그 플랫폼으로 갈아타거나 추가하게 마련이니까. 쿠팡 로켓와우 멤버십 고객(월 2,900원)이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쿠팡의 OTT, 쿠팡플레이도 첫 오리지널 시리즈를 내놓았다. 한류스타 김수현과 연기에 예능까지 섭렵한 차승원이 가세한 드라마 ‘어느 날’이 그 주인공이다.
‘어느 날’은 평범한 대학생이 하룻밤 사이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되어, 진실을 묻지 않는 밑바닥 변호사와 교도소 내 먹이사슬 최상위 권력자를 만나며 치열한 생존을 벌이는 이야기. 벤 위쇼가 열연을 펼쳤던 영국 BBC 드라마 ‘크리미널 저스티스’가 원작이다. 명작으로 소문난 원작의 명성은 물론 김수현과 차승원, 김성규 등 쟁쟁한 출연진과 ‘펀치’ ‘열혈사제’ 등을 연출한 히트메이커 이명우 감독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지난 11월 27일 1화를 시작으로 매주 토, 일요일 0시에 공개되는데, 8부작 중 공개된 4화까지 보면 한 마디로 압도적이다.
조별모임이 취소되고 친구들의 풀파티에 참석하러 몰래 아버지의 택시를 몰고 나온 대학생 김현수(김수현). 현수의 택시에 우연히 탑승한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며 그에게 이끌려 여자의 집에서 약을 흡입하고 진탕 술에 취한 채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깨어난 현수 앞에 보이는 건 피투성이로 죽어 있는 여자의 시체다. 겁을 먹은 현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음주운전 단속에 걸린 순경에 걸려 우여곡절 끝에 경찰서에 가고, 그 자리에서 살인범으로 체포된다. 직접 증거는 없지만 현수가 범인임을 가리키는 정황증거가 117개나 되고, 베테랑 형사 박상범(김홍파)나 안태희 검사(김신록) 등 누구도 현수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다.
‘어느 날’은 우연히 한 여자와 하룻밤을 보냈다 끔찍한 상황을 맞은 김현수가 속수무책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쫀쫀한 몰입도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김현수처럼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렸을 때, 과연 나라면 김현수처럼 행동하지 않을지 자신할 수 없는 것도 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동시에 그 여자 홍국화(황세온)를 죽인 것이 누구인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한편, 정말 김현수는 결백한 것일까 혼란을 자아내는 것도 ‘어느 날’의 특징이다. 현수는 약과 술에 취한 채 잠에서 깨어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을 못하니까. 그러니 시청자는 억울해 보이는 현수에 몰입하게 되지만 그럼에도 ‘혹시’ 하는 뒷맛을 떨쳐 내기 어렵다.
‘어느 날’의 쫀쫀한 몰입도를 완성시키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다. 스타지만 언제나 출중한 연기를 선보였던 김수현은 이번에 ‘멋진 남자’의 광채를 지우고 나락에 빠져 울먹이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혹시 모를 반전이 있을지 몰라도 지금 당장 두려움에 떨면서도 결백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현수를 돕는 잡범 전문 생계형 변호사 신중한을 연기하는 차승원의 넉살은 어떻고. 극심한 아토피로 발에 랩을 감은 채 샌들을 신고 장발을 질끈 묶은 독특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차승원은 특유의 코믹 연기가 녹아 있는 ‘개그캐’인 듯 하다가도 순간순간 기지를 발휘하는 모습으로 의중을 알 수 없는 신중한을 자신의 색깔로 채워간다. 날카로운 눈빛과 고요한 카리스마로 공간을 지배하는 교도소 내 최고 권력자 도지태 역의 김성규도 돋보인다.
주연진 외에도 베테랑 형사를 맡은 김홍파와 김현수 살인사건의 담당 검사를 연기한 김신록, 무슨 이유인지 무료로 현수를 맡겠다고 나선 스타 변호사 박미경 역의 서재희 등 조연진의 묵직함도 눈에 띈다. 특히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김신록은 이번에도 나오는 장면마다 확고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어느 날’은 한꺼번에 콘텐츠를 공개하는 방식과 달리 매주 에피소드를 공개하며 기다려가며 봐야 하는 드라마다. 보통 16부작 기준 드라마들이 반환점을 도는 8회 이후 힘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8부작인 ‘어느 날’은 4화까지 방영했음에도 아직 텐션이 짱짱하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김현수에게 접근하는 도지태의 속셈이 무엇인지, 의외로 실력 있어 뵈는 신중한 변호사가 생계형 변호사를 넘어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김현수는 살인사건에서 한 톨의 의심없이 결백할지 등등 파야 할 이야기들을 생각하면 남은 4회분이 숨가쁠 정도.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 교도소와 천양지차 다른,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 뺨치는 지옥 같은 드라마 속 교도소처럼 비현실적인 부분도 여럿 눈에 잡히지만, 그를 속도감 넘치는 전개와 시종일관 묵직한 분위기로 압도하기에 ‘어느 날’을 외면할 수 없다.
진실을 묻지 않는 변호사와 진실을 찾기보다는 자신들의 성과가 중요한 형사와 변호사 중 누가 승리를 거둘까? 김현수는 신중한과 손을 잡고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주말마다 쿠팡플레이에 접속할 수밖에. 다행히 쿠팡 멤버십 회원이라 추가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니 좋지 않은가.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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