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모든 소송이 판결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재판상 화해, 화해권고결정으로 종결될 수 있고, 조정이나 중재로 종결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그 중 조정에 대해서 보기로 한다.
형사 소송은 법원이 검사가 제기한 공소사실을 판단하고 피고인에 대해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절차이므로, 양보와 타협을 전제로 하는 조정 절차를 상정할 수 없다. 다만 검찰 단계에서 경미한 성범죄, 재산범죄, 명예훼손, 지적재산권 침해범죄 등을 대상으로 피해자와의 합의를 주선하고, 그 결과를 기소 등의 처분에 반영하는 절차가 있기는 하다.
최근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조정기일에 출석하는 것 대신 통화로 형사조정이 진행되기도 한다. 필자가 직접 겪은 일인데, 연세 지긋하신 분(형사조정위원)과의 통화로 합의금을 논의하고(속된 말로 흥정에 가깝다) 전달받은 계좌에 돈을 입금한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금 합의금을 지급하는 것인지 보이스피싱을 당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행정 소송에서도 간혹 조정이 이뤄진다. 그러나 행정청 소속 소송수행자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우려해 조정을 기피하기도 하고, 행정청이 조정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상위 관청의 승인·지휘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기에 사례가 많지는 않다.
따라서 다른 유형의 소송보다 민사소송 사건이 조정 절차에 회부되거나 조정이 성립되는 사례가 많다. 민사조정은 조정위원에 의한 조정과 수명법관에 의한 조정으로 구분된다. 조정위원은 대체로 변호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위촉된다. 그러나 간혹 특수한 분야·영역의 사건에서는 변호사 자격의 유무와 관계없이 연륜이 깊으신 분이 조정위원으로 지정되는 사례도 있다.
필자가 연예인 분쟁 사건을 수행하고 있을 때, 법원 직원으로부터 ‘조방헌 씨가 조정위원으로 지정돼도 이의가 없느냐’는 문의를 받았다. 이에 별생각 없이 “(조방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다만) 이의 없다”고 했는데, 조정기일에 가수 태진아(본명 조방헌)가 조정위원석에 앉아 있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연예인 분쟁사건의 경우 업계가 좁고 특수하다 보니 업계 사정을 잘 알고 원로로 대접받고 있는 분이 조정에 더 적합한 면이 있다. 가수 태진아가 “내가 가수 생활을 오래 해봐서 아는데, 누구 말이 맞고 틀린 지 들으면 안다”고 하면, 이에 대해 뭐라 반박할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사건이 끝나고 나중에 들은 내용이지만 실제로 가수 태진아의 조정 성공률도 무척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특수한 영역의 사건이 아니라면 대부분 변호사 중에서 조정위원이 위촉·지정된다. 과거에는 원로 변호사들이 많이 활동했으나, 최근에는 조정에 사명감이 있는 젊은 변호사들의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1회 조정기일에서 조정이 결렬되더라도 여러 차례 조정기일을 계속 지정해 어떻게 해서든 쟁점을 정리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조정위원에 의한 조정은 법률적으로나 사실적으로나 구속력이 없다. 당사자들이 이의를 제기하는 것만으로 조정 절차가 허무하게 끝나 버리는 경우가 많다. 즉, 조정기일 당일 협상이 결렬되면 조정위원은 ‘조정을 갈음하는 결정’을 내려 당사자들에게 본인이 생각하는 조정안을 수용할 것을 권고하는데, 당사자 중 일부가 2주 내 이의를 제기하면 그 결정은 효력을 잃고, 조정 절차는 종료된다. 조정 절차가 끝나면 소송절차가 개시되는데, 조정위원은 소송절차나 판결 내용에 관여할 여지가 없어 당사자들이 아무런 부담 없이 조정위원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송절차 내에서 수명법관(주로 배석판사가 된다)이 주재하는 조정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수명법관은 재판부를 구성하는 법관 중 한 명이다. 수명법관은 조정안을 통해 본인의 심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데, 그 심증은 곧 판결의 내용에 반영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당사자들이 조정안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그 조정안보다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하기 어렵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수명법관에 의한 조정의 경우 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 대부분 유리하였다.
그렇다면 주로 어떠한 사건이 조정으로 끝나게 될까. 이에 대해서 법원 실무제요는 △교통사고, 산업재해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조사가 충분히 이뤄져 수소법원이 사실관계 및 이에 대한 법률적 평가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있는 사건 △당사자가 사건의 신속한 해결을 원하고 비교적 조정이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건을 조정에 적합한 사건으로 열거하고 있다.
조정을 잘 받는 방법이 있을까? 특별한 왕도는 없다. 조정 절차도 어디까지나 민사소송의 일부인 만큼 일반적인 민사사건과 같이 증거관계가 유리한 당사자가 조정 절차에서도 유리한 지위에 있게 된다.
다만 조정안의 조건으로 비밀유지, 지급금액의 분납, 소송비용 각자 부담 등이 있는데, 이 조건을 이용해 상대방의 양보를 받아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액의 금원 지급이라도 그 사실 자체로 회사의 명성에 금이 가게 된다면, 이를 비밀로 약정하는 조정안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극히 사소한 것 한 가지가 있다. 조정위원이 조정기일에 갑자기 칭찬한다면 조심해야 한다. 이는 양보를 권하기 전 당사자의 저항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착한 사람이 손해 본다’는 말이 맞고 틀린 지에 대해서 사람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조정이 성립되려면 누군가 양보를 해야 하는데, 이때 주로 착한 사람이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는 것이 일반적인 조정의 모습인 것 같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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