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주변에서 재택근무의 좋은 점만 이야기해서 ‘내가 예민하고 이상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사팀에서 불쑥 전화를 해서 현 위치를 확인한다거나, 영상 회의를 하고 난 뒤에 상사가 농담처럼 ‘이거 계속 켜 놓고 업무하면 좋겠네’라고 말할 때 소름이 돋더라고요.”
작년 초부터 재택근무를 한다는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 A 씨(30대)는 재택근무 속 감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처음엔 출퇴근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았지만 회사의 보스웨어(원격 상태에서 직원들의 근태를 감시·분석하는 소프트웨어)가 점점 촘촘해졌다고 설명했다. 일부러 웹캠을 켜고 회의를 진행하거나 업무일지를 더 자주 제출하도록 하는 등 업무 내용은 동일한데 회사의 감시가 더욱 심해졌다고 느낀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길어지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됨에 따라 기업들은 하나둘 재택근무제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올해 6월 네이버 관계사인 라인플러스가 국내 대기업 최초로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제를 이어간다고 발표한 데 이어, 최근 카카오도 내년 3월까지 지금처럼 재택근무 형태를 유지하되 그 이후에는 각 조직장이 근무 형태를 결정한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재택근무의 방식은 점점 다양하고 촘촘해지고 있다. 업계에선 근무 장소를 온라인에 그대로 옮겨놓는 메타버스 형태로 진화할 거라 전망한다. 메타버스는 디지털 가상현실 사회를 촉진하는 각종 첨단기술을 아우르는 용어다. 지금도 부동산 플랫폼 ‘직방’ 직원들은 오프라인 본사 대신 자체 개발한 가상 오피스 ‘메타폴리스’에서 업무를 본다. 출근은 아바타가 하고 회의는 가상공간에서 이뤄진다. 기술도 변화를 빠르게 따른다. 한글과컴퓨터는 최근 ‘한컴타운’이라는 재택근무용 서비스를 출시할 계획을 밝혔다. 메타버스 형태인 한컴타운은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을 포함한 스마트워크 서비스로, 기업 고객(B2B)을 대상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재택근무 동상이몽…몸은 집에 있지만 늘 긴장 상태
실제 그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일상은 어떨까. 외국계기업 사무직 노동자 B 씨(20대)는 지난해 중순부터 재택근무와 사무실 출근을 병행하고 있다. B 씨의 회사는 ‘애니데스크(Anydesk)’라는 원격제어프로그램을 사용해 재택근무를 시행한다. 아침 출근 시간인 9시 30분, 프로그램에 접속하는 동시에 줌 메신저에는 녹색등이 켜져 있게 설정한다. 회의는 3명 미만일 시 카카오 보이스톡으로 하지만 대부분 줌 영상을 예약해서 진행한다.
B 씨는 “접속 상태를 부서장과 인사팀이 가끔 점검한다고 들었다. 메일, 카톡, 전화, 줌, 메신저 등 소통방법이 매우 다양해졌다. 여러 창구를 왔다갔다 하다 보니 정신이 없다. 모두 켜 두고 답장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 불편하다. 실시간으로 답을 하지 많으면 일을 안 한다고 생각할까 봐 늘 긴장 상태로 있다. 상사마다 차이도 있다. 마이크로매니징(micromanaging)하는 상사 밑에서는 재택을 할 때도 대면 근무보다 더 감시와 의심을 받는 느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최재용 한국메타버스연구원 원장은 “현재 기업에서 원격 형태로 재택근무를 하는 것도 넓은 범위의 메타버스에 속한다. 공무원 교육원이나 기업 연수원 등 많은 곳에서 아바타를 이용하는 원격 시스템을 도입해 시행 중이다. 많은 기업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상관없이 원격 교육, 재택근무를 향후 확대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메타버스 속에선 어디까지 감시할 수 있을까
기업의 입장에서는 재택근무 확대가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 계산된다. 오프라인 사무공간을 축소하거나 이전할 수 있고 그 외 부수적인 여러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은 연간 1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재택근무 확대를 통해 절약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올 1분기에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은 작년 같은 분기와 비교했을 때 대외비용 등에서 2억 6800만 달러를 절약했다.
한 중소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많은 기업이 그동안 3·2(주 3일 출근, 2일 재택근무), 4·1 등 하이브리드 근무를 통해 재택근무를 해도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다. 따라서 이런 기조를 점점 확대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해야 현재의 생산성, 긴장감을 유지할지가 과제다. 기업들은 이를 시스템으로 보완하기 위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노동자의 불안처럼, 감시가 강화되는 움직임에 대한 위기의식의 필요성도 지적된다. 정현철 직장갑질 119 사무국장은 “재택근무 관련 상담이 크게 늘진 않았다. 다만 일부 사례 중 유의미한 내용은 있었다. 대표적인 게 콜센터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을 하게 되면서 별도 시스템을 장착한 노트북을 지원받은 사례인데 문제는 이 노트북에 마우스 움직임이나 캠 화면을 감지하는 시스템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노동 감시 장치를 사용하지 않으면 업무를 할 수 없다보니 사용자와 노동자의 충돌이 생기게 된다. 전반적으로 재택근무에 대한 기준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전했다.
한중섭 작가는 책 ‘친절한 독재자, 디지털 빅브라더가 온다’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된다 해도 감시에 순응하게 된 우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작가는 비즈한국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재택근무의 확대는 곧 제2의 감시 확대와 연결된다. 오래된 조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근무 형태를 믿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개인에게 기업의 레이더가 일상적으로 탑재될 것이다. 마우스를 일정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경고가 간다거나 줌 회의를 할 때 카메라가 홍채를 인식해 다른 생각을 하진 않는지 추적하는 등 여러 방식의 감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책을 통해 위기의 징조들을 이야기한다. 사회통제와 권력 유지에 감시가 대단히 유용하다는 것을 인지한 정부,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감시 인프라를 구축한 기업이 이것을 순순히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과 함께, 더 강도 높은 감시가 허용될 여건이 자연스럽게 조성됐다는 설명이다.
이를 견제할 방법은 없을까. 한중섭 작가는 “감시를 감시해야 한다. 사실 개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아 쉬운 문제는 아니다. 특히 한국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담론 형성이 부족한 편이다. 집단지성을 이용해 문제를 인식하고 토론하고 연대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뿐일 것”이라고 전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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