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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케이팝으로 유럽을 사로잡은 진엔터테인먼트

한국 유학생들이 창업한 케이팝 이벤트 스타트업…자체 기획 및 협업으로 공연 등 진행, 현지인에 더 유명

2021.11.30(Tue) 11:17:00

[비즈한국] 2년 전, 팩토리 베를린에서 우연히 알게 된 스타트업 창업자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당시 ‘창업자의 워라밸’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많아 자연스레 그에게 “여가(free time)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VR 관련 기술스타트업을 이끌던 그는 “창업자에게 프리(free)한 시간은 거의 없지만,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라고 대답했다.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내 삶의 90%는 일, 5%는 잠, 그리고 나머지 5%가 한국 드라마”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 “두 유 노 크래시 랜딩 온 유(Crash Landing on you)?”라 물으며 한참 재밌게 보던 드라마를 나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의 눈에서는 자신의 창업 아이템을 설명할 때와 비슷한 반짝거림이 보였다. 한국 드라마를 잘 몰랐던 나는 나중에서야 그 드라마가 손예진, 현빈 주연의 ‘사랑의 불시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일에서 인기 있는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순위. 사진=Moviepilot.de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동네 친구가 ‘런닝맨’을 즐겨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가 유재석, 이광수, 지석진의 이름을 줄줄 읊으며 등장인물의 캐릭터에 푹 빠져 있는 걸 보았을 때는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베를린에서 자신의 모국어인 아랍어 자막으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 그를 보며,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베를린에서 같이 ‘런닝맨’을 이야기할 외국인 친구가 생길 것이라는 상상은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기생충’이 베를린 극장가를 뒤흔들더니, 이제는 넷플릭스로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안방에서 편하게 한국 드라마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서 ‘오징어 게임’ 주의보가 울렸을 때, 그 폭력성과 무관하게 잠시 ‘국뽕’이 차올랐다. 한국문화가 차차 인기를 끌면서 동시에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지난 3년간 베를린에는 한식당이 급격히 늘더니 이제는 100여 개가 된다. 아주 외곽만 아니라면, 베를린 어느 지역에 가든 구글맵에서 ‘korean restaurant’를 검색하면 10여 분 내외의 거리에서 편하게 한국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이런 ‘한류’ 열풍의 중심에는 케이팝이 있었다. 한국의 음식, 영화, 드라마, 예능은 각기 다른 형태와 맥락으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하나로 뭉뚱그려 그 인기를 설명할 수만은 없다. 정말 다양한 이유로 한국의 콘텐츠를 접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을 단순히 ‘K-콘텐츠, 문화’라는 이름으로 싸잡아 설명하는 것도 피로감이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부터 강한 팬덤을 형성해 천천히 성장하던 케이팝이 한류가 세계의 주류 문화가 되기까지 가장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세계 어디에서나 이 장르를 공식적으로 ‘K-pop’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K’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은 확실하다. 지역색이 강하고 보수적인 독일 음악 차트에도 케이팝이 오르내리고, 독일 라디오나 티비 프로그램에서도 소개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2000년대 초반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류와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의 한류는 새삼 다른 감각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세계 어디에서든 K가 붙은 비즈니스를 해도 ‘된다’는 기본 합의에는 다다른 것 같다. 이런 한국문화의 부흥을 남보다 빠르게 관찰하고, 물 들어올 때 노를 열심히 젓고 있는 케이팝 스타트업이 있어 만났다.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엔터테인먼트(JIN Entertainment)’다. 

 

#학생창업에서 유럽 ‘케이팝’ 대표 기획사로

 

진엔터테인먼트는 2018년 뮌헨에서 창업한 케이팝 이벤트 스타트업이다. 회사의 공식 이름은 잠마(ZAMMA)이고, 잠마의 이벤트 매니지먼트 브랜드가 진엔터테인먼트이다. 잠마는 ‘ZAM Zusammen MA wir(우리 함께)’라는 뜻의 바이에른 지방 사투리로 뮌헨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잠마는 뮌헨대학교 경영학과에 다니던 이상훈 대표가 뜻이 맞는  친구 4명과 함께 공동창업을 하게 되었다. 이 대표는 일찍이 중학생 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유학한 덕에 독일어가 유창하고 독일어권 문화에도 빨리 적응했지만, 그런 만큼 한국 문화에 애착이 강했다. 항상 주변 친구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해주는 것을 즐겼던 이 대표는 어느 순간 본인이 소개하지 않아도 이미 한국 문화를 잘 알고 한국의 음악을 즐기는 친구들을 발견했다.

 

“대학에서 친구들과 케이팝 파티에 갔는데, 생각보다 별로였습니다. 당시 친구들과 뮌헨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TDKM이라는 뮌헨 지역 독일어-한국어 언어교류 모임을 주도하고 있었는데, 그 실망스런 케이팝 파티를 보고 우리가 더 잘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 대표는 첫 창업의 순간을 떠올리며, 당시 이미 뮌헨에서 ‘힙’했던 한국 음악과 문화로 사고를 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뮌헨에서 열린 첫 코리안 나이트 포스터. 사진=JIN ENTERTAINMENT

 

“첫 파티를 재미로 조직했는데, 이게 되겠다 싶어서 바로 공식적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포스터를 만들고 홍보도 하고 뮌헨의 클럽도 섭외해서 첫 코리안 나이트 행사를 열었습니다.” 

 

경영학도답게 ‘비즈니스’를 해낸다는 마음으로 접근한 것이 성공의 첫걸음이 되었다. 독일의 독특한 회사 형태인 소위 ‘1유로 유한회사’인 ‘우게(UG)’의 존재도 큰 도움이 되었다. 법인사업자로 등록해 정식 창업을 하고 싶었지만, 2만 5000유로의 자본금이 필요한 유한회사 형태인 ‘게엠베하(GmbH)’는 학생이던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은 2008년부터 창업을 활성화하고 지원하는 차원에서 최소 자본금 1유로로 창업할 수 있는 미니 유한책임회사 격인 ‘우게(UG)’를 사업 형태 중 하나로 신설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이 자본금 부담 없이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를 실현하게 되었다. 우게 제도가 실시된 지 10년 후인 2018년, 약 15만 개의 우게가 설립되어 독일은 가히 ‘창업가들의 나라’가 되었다. 

 

학생으로 이벤트 기획사를 창업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진엔터테인먼트 창업자들. 왼쪽부터 이상훈 CEO, 이상현 공동창업자&Financial Manager, 김수현 공동창업자&Account Manager, 이요한 COO, 정범규 공동창업자&마케팅 매니저. 사진=JIN ENTERTAINMENT

 

이 대표도 우게로 회사를 설립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마음껏 실현해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취미나 과외 활동의 일부로 가볍게 시작하기보다 진지한 마음으로 사업에 임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법인화’의 의미가 컸다. 뮌헨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다른 친구들이 글로벌 대기업이나 세계 유수의 컨설팅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보고 ‘웬 창업이냐’고 말리던 부모님도 진엔터테인먼트의 성장세를 보고 열렬히 응원해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뮌헨의 작은 클럽에서 시작한 ‘코리안 나이트’는 시작 5개월 만에 슈투트가르트, 비엔나까지 확장됐고, 이후 라이프치히, 베를린 등 독일의 다른 도시를 비롯해서 취리히, 로잔, 프라하, 암스테르담 등 유럽의 타 도시까지 빠르게 진출했다. 현재는 유럽 5개국 17개 도시에서 한 달 평균 10개의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한국인들보다 현지인들에게 유명한 ‘진엔터(JIN ENT)’

 

‘코리안 나이트’에는 적게는 300여 명에서 많게는 1500여 명의 관객이 함께한다. 대부분의 관객이 현지인이기 때문에 한국인보다 현지 유럽인들에게 더 유명하다. 특별한 마케팅 없이 오로지 페이스북과 인스타를 통한 홍보만으로도 행사 때마다 수백 명의 관객을 모으고 있으니, 그 파급력이 대단하다. 

 

주로 18세에서 35세의 젊은 층이 많이 참여하지만, 최근에는 관객층이 넓어지고 다양해졌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모든 행사는 진엔터테인먼트 소속 5명의 케이팝 전문 DJ 겸 프로듀서가 이끈다. 이들은 이미 인스타그램에 팬층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지난 11월 21일 베를린에서 열린 코리안 나이트. 코로나로 분위기가 위축되었지만 백신접종자도 테스트를 하고 출입하는 등 엄격한 방역 수칙을 지키며 성공리에 진행됐다. 사진=JIN ENTERTAINMENT​

 

진엔터테인먼트는 자체 기획한 ‘코리안 나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케이팝 관련 행사에 참여해 저변을 넓혀왔다. 2019년 8월 JYP엔터테인먼트의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Stray Kids)의 콘서트 애프터 파티를 이끌었으며, 그해 10월에는 유럽 최대의 케이팝 행사 중 하나인 ‘핑거 하트 페스티벌(Finger heart Festival)’의 오프닝 스테이지 진행을 맡아 몬스타엑스, 우주소녀, 카드(KARD)와 함께 무대를 꾸몄다.

 

빠른 확장과 동시에 케이팝 이외의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도 가질 수 있었다. 화장품 브랜드 ‘토니모리’, 주류 회사인 ‘하이트진로’와 프로모션 이벤트와 마케팅도 함께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장기간의 록다운이 지속되어 오프라인 이벤트는 하지 못했지만, 이 대표는 그간 바쁘게 달려오느라 돌보지 못했던 회사를 정비하고 새로운 인력도 채용하면서 코로나 이후를 준비했다. 오프라인 이벤트를 할 수 없던 기간에도 하이트진로의 온라인 마케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케이팝 ‘RE:ACT’ 캠페인을 진행했다. 

 

2019년 10월 만하임 핑거 하트 페스티벌에서의 진엔터테인먼트 공연. 약 8000명의 관객과 함께한 큰 행사였다. 사진=JIN ENTERTAINMENT

 

“케이팝은 팬덤 문화가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케이팝 하나로 대화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정서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같은 케이팝 팬이라면 ‘가족’처럼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관계로 발전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 시기는 진엔터테인먼트에게는 위기의 시간이라기보다는 끈끈하게 팬들과 함께 엮일 수 있는 재정비의 시간이었다. 누구나 외롭고 힘든 코로나 시기에 팬덤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친구가 되면서 오프라인에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록다운이 지속되던 시기 진엔터테인먼트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Feel Korea Now Online’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 지속해서 케이팝 팬들과 온라인 소통을 해온 것은 성공한 케이팝 가수들의 행보와 닮았다. 실제로 록다운이 해제된 후 지난 7월 말 코리안 나이트가 재개되자, 많은 팬들이 기다렸다는 듯 오프라인으로 달려왔다. 9월에 쾰른에서 열린 행사에는 300명 정원의 공간에 1000명의 팬이 몰려 모두 다 입장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투자하겠다는 분도, 협업을 하자는 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매달 8건 안정적으로 행사를 해내고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것에 일단 감사하며, 빠른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성장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투자 등 비즈니스를 확장하게 될 것도 고려해 무엇보다 내실을 탄탄하게 다져 놓을 생각입니다.” 이 대표는 앞으로의 포부를 이렇게 밝혔다. 

 

단순한 케이팝 행사를 넘어서 내년에는 자체 콘서트를 기획하고, 한국 대형 기획사와 협력해 한국의 아이돌과 함께하는 콘서트도 계획하고 있다. 친구들끼리 시작한 스타트업 진엔터테인먼트는 이제 7명의 직원과 5명의 DJ 겸 프로듀서가 있는 조직이 되었다. 

 

진엔터테인먼트의 케이팝 DJ 겸 프로듀서 5인. 사진=JIN ENTERTAINMENT​

 

처음 ‘1유로 미니 유한회사’로 시작한 회사의 형태도 이제 자본금이 충분히 모여 좀 더 공신력 있는 유한회사인 GmbH로의 변경도 진행 중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로 시작한 이 스타트업이 유럽의 콘텐츠, 엔터테인먼트 시장에 어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럽에서 K-컬처의 미래

 

2012년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뒤흔들었을 때, 놀랍다고 생각했다. 싸이 이후에는 한국어로 된 음악이 세계에 퍼질 일은 더 없겠다고도 생각했다. 특히나 다른 나라보다 지역성과 보수성이 강한 독일의 음악 차트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하지만 2021년 11월 현재, 하루에 한 번은 BTS나 블랙핑크 등의 노래를 독일 라디오에서 듣게 된다. ‘잠깐 이러고 말겠지’라던 생각은 서서히 바뀌었다. 2018년 BTS 베를린 콘서트 티켓 3만 장이 9분 만에 매진됐을 때, 2019년 ‘기생충’이 유럽의 극장가를 휩쓸었을 때, 그리고 독일 슈퍼마켓에서 ‘짜파구리’용 라면과 ‘달고나 커피’용 커피, ‘뽑기’를 선전하는 것을 보았을 때,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 K의 열풍이 쉽사리 가시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이 기회를 활용해 어떤 K-스타트업이 유럽에서 활약하게 될지 몹시 기대된다. 

 

필자 이은서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향수병에 못 이겨 다시 베를린에 와 살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독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독일 기업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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