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방문판매부터 로드숍 매장, H&B 스토어, 온라인몰까지…. 아모레퍼시픽의 판매 및 마케팅 전략은 우리나라 화장품 산업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사드(THAAD) 보복으로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위기를 겪고 코로나19 직격탄을 맞는 동안 아모레퍼시픽은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 로드숍 매장과 아리따움 매장은 체험형 서비스와 빠른 배송을 통해 자구책을 찾았지만 특별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코로나19가 2년여째 지속되며 온라인으로 소비의 중심축이 이동한 지금, 오프라인 매장은 새로 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오픈한 ‘설화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와 코로나19 시국을 버틴 ‘아모레 성수’를 방문해 아모레퍼시픽의 고민과 실험을 살펴봤다.
#은은한 한약재 향과 전시장 같은 공간과 티하우스 ‘북촌스러운’ 플래그십 스토어
아모레퍼시픽은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북촌에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와 ‘오설록 티하우스’를 개점했다. 1930년대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인 두 개의 공간은 나란히 붙어 있어 한 공간처럼 보였다. 오픈한지 일주일째인 26일 오후 2시경 방문한 매장은 평일 낮임에도 사람이 많았다.
향은 공간의 첫인상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풍기는 은은한 한약재 향은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떠올리게 했다. 입구의 세면대에서 손 세정 후 대표 제품을 바르며 한 번 더 향을 맡았다. 체온을 체크한 직원은 포장된 인삼달고나를 건넸다. 입구에서부터 오감으로 설화수를 느끼게 하는 장치다.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전면 유리가 많았다. 한옥의 특성상 여러 개의 문을 열고 공간을 넘나들며 구경해야 했지만, 벽들이 전면 유리로 구성돼 마치 하나의 공간인 것 같은 느낌을 선사한다. 곳곳에 위치한 액자와 나무, 한옥 기둥과 서까래가 한데 어우러져 한방 화장품이 갖는 느낌을 구현했다.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한옥이라는 공간적 특성상 연령대 높은 고객이 많을 거라 예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친구들과 북촌에 놀러 왔다가 들렀다. 정원, 단장실 등 사진 찍기 좋은 스폿이 많다. 엄마가 쓰는 브랜드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매장에 와 보니 디자인이나 향이 우리 세대에게도 잘 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온 친구는 매장 방문으로 설화수 브랜드에 관심이 더 생겼다고 한다.” -이현주 씨(28·가명)
마치 박물관에 와 있는 느낌도 든다. 설화수의 모태가 된 1966년 최초의 인삼 화장품 ‘ABC 인삼크림’ 관련 그림이나 그 당시 화장품 용기가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한옥에 어울리도록 디자인된 메이크업 제품들이 배치된 단장실과 도예가 작업실을 구현한 공작실 등 천천히 걷다 보니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이미지가 형상화된다.
한옥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양옥은 오설록 티하우스 북촌점이다. 아모레퍼시픽의 차(茶) 브랜드로, 티 마스터가 개인의 취향에 맞게 티를 블렌딩해주는 공간과 향나무, 석탑, 석등이 있는 야외 공간 등으로 구성됐다. 매장은 여유 있는 오후 시간을 보내는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커피 향이 아닌 녹차 향이 공간에 짙게 배어나는 점이 특색 있다.
#맞춤형 체험 프로그램 등 색다른 경험 제공하는 ‘아모레 성수’
2019년 10월 오픈한 ‘아모레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의 전 브랜드와 제품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다. 김주연 홍익대학교 교수는 아모레퍼시픽이 성수동에 공간을 낸 것에 대해 책 ‘스페이스 브랜딩’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젊은 층 사이에서 핫플레이스로 부상한 성수동은 본질적으로 화장품 브랜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장 지대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 그러나 밀레니얼과 Z세대는 이 이질성을 쿨하다고 느낀다.”
체험은 브랜드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직접적인 수단이다. 미적인 공간과 조형물, 인상 깊은 체험과 친절한 직원의 응대는 브랜드에 호의적인 감정을 불러온다. 아모레성수는 이 공간 브랜딩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췄다. 자동차 정비소를 개조했지만 정원 ‘성수가든’을 둘러싼 널찍하고 하얀 공간은 외부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을 줬다.
11월 23일 화요일 오후 3시 아모레성수를 방문했다. 평일 늦은 오후의 매장은 한가했다. 입구의 직원은 체온 측정 후 샘플과 교환할 수 있는 모바일 쿠폰을 발급해줬다. 덧붙여 “입구 옆에 위치한 클렌징룸에서 세안 후 매장 내부 제품을 직접 체험할 수 있지만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마스크를 벗을 수 없다”고 안내했다. 공간의 핵심 콘셉트 자체가 실행 불가능한 상황이 오픈 직후부터 2년 가까이 이어진 셈이다.
대신 사전에 예약한 ‘립피커 서비스’와 ‘메이크업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이동했다. 화장품 업계 새로운 트렌드인 맞춤형 화장품을 시범적으로 선보였다기에 기대가 컸다. 립피커 서비스를 위해 앉은 자리에선 평소 립 제품에 대해 갖고 있던 고민과 관심을 이야기하고 그에 맞게 전문가가 색과 향, 점도를 조절해 즉석에서 립 틴트가 만들어졌다. 개인의 취향에 딱 맞는 제품을 가져갈 수 있을 뿐 아니라 색이 섞이고 용기에 담기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 외에도 맞춤형 파운데이션 제조 서비스인 베이스피커, 아모레퍼시픽 제품을 사용한 무료 메이크업 서비스 등의 체험 프로그램에 사전 예매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방역 조치로 인해 체험에 많은 제약이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아쉽다. 그럼에도 아모레성수는 모든 공간에서 정원이 보이는 넓은 창과 곳곳의 조형물, 구매의 폭을 늘린 여러 브랜드 제품들로 시선을 끌었다. 마스크를 쓴 위로 메이크업을 받거나 사용해보고 싶던 제품의 샘플을 요청하는 고객들이 보였다.
“직장이 근처라서 가끔 들러 필요한 제품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낸다. 군데군데 위치한 휴식공간과 정원을 보면 여유 있는 카페 같기도 하고 전시된 제품을 보면 널찍한 화장품 매장 같기도 하다.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부담이 없다는 게 타 매장과 다른 점이다. 오히려 나올 때 준 샘플들로 가방이 두둑하다.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더욱 매력적인 공간이 될 것 같다.” -김미래 씨(34·가명)
아모레퍼시픽의 공간 브랜딩에서 가장 인상 깊은 건 ‘정원’이다. 북촌과 성수, 두 곳 모두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단정한 정원이 메인 공간으로 여겨질 정도로 신경 쓴 티가 났다. 이니스프리, 오설록, 설화수 등 자연친화적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서일까. 화장품이 메인 업종인 만큼 공간 전반의 분위기가 정원과 잘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전했다.
“아모레 성수는 과거 자동차 정비소의 공간적 흔적을 경계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중앙의 조경 ‘성수 가든’에서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을 자유롭게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고객들은 공유와 보존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품은 공간에서 체험에 몰입한다. 아모레 성수는 ‘(화장품을) 바르다’라는 가치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화장품을 발라보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모든 공간에서 덜어내는 스페이스 브랜딩을 했다.” -김주연 홍익대학교 교수
아모레퍼시픽은 몇 년 전만 해도 아리따움이 회사의 메인 로드숍이었다. 전국에 1300여 개 매장이 있었을 정도다. 하지만 로드숍에서 온라인으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매장을 직영점 중심으로 정리하는 전략을 취했다. 단순히 오프라인을 줄이고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체험, 전시 등 경험에 집중한 북촌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와 아모레 성수는 아모레퍼시픽이 던진 오프라인 매장의 새로운 역할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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