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오징어 게임’으로 ‘K-드라마’가 세계 1위를 하던 게 엊그제 일이었는데, 이번엔 ‘지옥’이 난리다. 11월 19일, 넷플릭스에 공개되고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를 기록한 것.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지옥’에 관해 이야기 중이고, 강남구 코엑스에 설치된 ‘지옥’ 체험존에는 줄을 서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고, 원작 웹툰도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옥’이 이렇게 난리법석일 만하냐고? 물론이다. 호불호가 갈린다는 평도 많던데, 개인적으로는 왜 불호(不好)가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지옥’은 ‘돼지의 왕’ ‘창’ ‘사이비’ 등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선보인 이후 실사 영화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달성한 연상호 감독의 작품. 원작 웹툰 또한 연상호 감독이 스토리 집필을, ‘송곳’으로 유명한 최규석 작가가 작화를 맡았다. ‘지옥’의 시작은 초자연적이다. 카페에서 초조하게 핸드폰 시계를 보던 한 남자. 시계가 13시 20분이 되자 갑자기 카페 유리를 깨고 괴물같이 생긴 생명체 셋이 나타나 남자를 무자비하게 폭행한 뒤 손을 내밀어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남자를 태워 잿더미로 만든다. 백주대낮에 일어난 이 기이한 사건에 대해 10년 전부터 ‘새진리회’라는 신흥종교를 만들어 활동해 온 정진수 의장(유아인)은 이것이 ‘신의 의도’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죽은 남자, 주명훈을 시작으로 기이한 존재(새진리회에서는 천사라 명명)가 사람들 앞에 등장해 이름을 호명하며 언제, 몇 시에 지옥에 갈 것임을 예고하는 ‘고지’가 일어나고, 그 내용을 괴생명체(사자)가 ‘시연’하는 일들이 늘기 시작한다.
2022년 11월 10일, 주명훈의 첫 번째 시연을 시작으로 사람들은 정진수 의장이 설파하는 신의 의도와 새진리회에 휩쓸리기 시작한다. 이 내용을 광신하며 범죄를 일으키는 ‘화살촉’이라는 추종 무리도 생겨난다. 그러나 새진리회가 법 위에 설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한국에서 주명훈에 이어 두 번째로 고지를 받은 박정자(김신록) 때문이다. 고지를 받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 찾은 새진리회 정진수 의장에게 시연의 ‘중계’를 대가로 30억원을 제안받은 박정자는 엄마없이 남겨질 수 있는 두 자녀를 위해 그 제안을 수락한다. 그리고, 믿기 어려웠던 고지는 현실이 된다. 생방송으로 ‘단죄의 현장’을 지켜본 사람들이 홀리듯 새진리회를 맹신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걸까?
‘지옥’이 다루는 세상은 무척이나 염세적이다. 그러나 눈여겨봐야 할 건, 그 염세적인 세상을 불러온 것이 지옥행을 고지하는 천사나 지옥으로 데려가는 사자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들 스스로라는 거다. 박정자의 시연을 전후로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보라. 고지를 받았다는 이유로 밝혀진 죄도 없는 박정자에게 대중은 손쉽게 죄인이라 낙인을 찍고, 죄인의 가족이란 이유 또는 죄인을 돕는다는 이유로 연좌하여 주변인에게 비난을 던진다. 박정자의 시연이 현실이 되었을 때, 사자들에게 총을 겨누는 건 오직 형사 진경훈(양익준)뿐이다. 시연이 끝나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홀린 듯 신에게 절을 올리며 경배하는 순간 절하지 않은 박정자 측의 변호사 민혜진(김현주) 등은 이때부터 광신도 화살촉 무리는 물론 일반 사람들에게도 배척당하게 된다.
지옥의 사자들이 행하는 무자비한 폭력(신체를 패대기치고 장기들을 갈기갈기 찢는 수준)과 화살촉 무리의 범죄도 충분히 무서웠지만, 그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사회 시스템을 초월하는 신념과 군중심리로 사람들이 죽어가는 장면이었다. 민혜진과 함께 박정자를 보호했던 소도법률사무소의 박 변호사가 화살촉 무리에게 처참히 맞아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그의 모습을 사진찍거나 구경할 뿐 누구도 돕지 않는다. 화살촉 무리에게 폭행을 당한 어머니를 병원으로 데려간 민혜진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접수부터 하세요”다. 민혜진이 누구인지 알아본 의료진은 의도적으로 죽어가는 민혜진의 어머니를 방치한다. 응급실에 들어서 죽은 어머니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민혜진에게 의료진이 던진 “여기 들어오시면 안 돼요”라는 무감정한 대사가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던지. 당연히 시민을 지키고 도울 것이라 생각되는 경찰이나 의료진이, 군중심리에 휩쓸려 응급상황에 처한 나를 외면할 것이라 생각해보라.
초자연적인 현상보다 비합리성에 지배당한 인간의 군중심리가 더 무섭다는 걸 ‘지옥’은 소름돋게 묘사한다. 물론 그 군중심리의 기저에는 옳은 것을 행한다는 비뚤어진 신념부터 남들에게 배제당하고 싶지 않다는 공포심도 존재할 것이다. 흥미로운 건 지옥보다 무서운 인간의 면면을 ‘지옥’이 보여주는 한편, 결국 지옥 같아진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거다. 1부격에 해당하는 1~3화에서 진경훈 형사나 민혜진 변호사는 새진리회가 세상을 잠식하는 걸 막지 못한다. 2부격에 해당하는 4~6화의 상황도 암울하긴 마찬가지지만 새진리회 피해자들을 돕는 비밀조직 ‘소도’를 이끄는 민혜진과 갓 태어난 자식이 고지를 받으며 새진리회가 잠식한 세상에 대항하게 된 배영재(박정민)와 송소현(원진아) 부부를 비추며 일말의 희망을 던진다.
출연진들의 빼어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유의 ‘쪼’를 쫙 빼고 1부를 힘있게 이끄는 유아인부터 새삼스럽게 반하게 되는 김현주, 경이로워 보이는 박정자 역의 김신록 등 누구 하나 빠지지 않는 연기를 보인다. 특히 박정민의 현실감 넘치는 짜증 연기는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게 될 정도. 어쨌거나 백문이 불여일견. 아직 ‘지옥’을 보지 않았다면 강추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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