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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랑] '조선 왕릉 비교체험 극과 극' 태종과 순조의 헌인릉

3대 왕 태종의 헌릉은 조선 왕릉 최대 규모, 23대 왕 순조의 인릉은 봉분 하나뿐

2021.11.23(Tue) 18:31:15

[비즈한국] 양재역에서 한참을 더 들어간 대모산 자락에 자리 잡은 헌인릉에는 조선의 3대 왕 태종의 헌릉과 23대 왕 순조의 인릉이 있다. 조선 왕릉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석물도 다른 곳보다 딱 두 배가 많은 헌릉, 병풍석도 없는 자그마한 봉분 하나에 부부가 같이 묻힌 인릉. 두 임금은 능의 모습처럼 다른 길을 걸었다. 

 

조선 제3대 왕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가 묻힌 헌릉. 조선왕릉 최대 규모에 보통 하나씩 있는 석물도 몽땅 두 개씩 갖췄다. 사진=구완회 제공

 

#부부가 함께 묻힌 자그마한 인릉

 

1400년에 조선의 3대 임금에 오른 태종과 1800년 23대 국왕이 된 순조. 둘의 즉위 연도는 정확히 400년의 시차가 있다. 이들이 국왕이 되는 과정과 왕으로서의 삶 또한 400년의 시차만큼이나 판이했다. 두 차례 ‘왕자의 난’을 통해 왕위에 ‘오른’ 태종은 제위 기간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신생왕국 조선의 기초를 다졌다. 반면 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된’ 순조는 할머니의 ‘수렴청정’을 거쳐 장인의 ‘세도정치’로 빠져들었다. 

 

왕릉은 두 왕의 생전 모습을 닮았다. 조선왕릉 최대 규모에 보통 하나씩 있는 석물도 몽땅 두 개씩 갖춘 태종의 헌릉에 비해 순조의 인릉은 척 보기에도 자그마한 합장릉이다. 조선의 스물 일곱 왕 중에서도 수백 년의 시차를 두고 이렇게 판이한 성격의 왕을, 이렇게 대조적인 왕릉에, 그것도 한자리에 모신 것은 유래를 찾기 힘들다. ‘조선국왕 비교체험 극과 극’라고나 할까?

 

재실을 먼저 보고 입구에 들어서면(참, 재실 마당에 나란히 있는 잡석들도 놓치지 마시길), 인릉을 지키는 홍살문이 눈에 들어온다. 왕의 재위 순으로 태종의 헌릉을 먼저 볼까? 아니다. 규모가 작은 인릉을 먼저 보는 것이 동선에도 맞고, 둘의 규모 차이 때문에 아이가 느낄지도 모를 실망감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순조와 왕비 순원왕후 김씨를 합장한 인릉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둘렀다. 문인석과 무인석, 석호, 석양 등 대부분의 석물도 다른 왕릉에 있던 것들을 재활용(?)했다. 사진=구완회 제공

 

인릉은 병풍석 없이 난간석만 둘렀다. 거기다 문인석과 무인석, 석호, 석양 등 대부분의 석물들은 다른 왕릉에 있던 것들을 재활용(?)했다. 세종의 영릉과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의 희릉을 천장하면서 남은 석물들을 사용한 것이다. 인릉을 만들면서 새로 제작한 석물은 망주석과 석마, 석양 일부뿐이다. 순조가 세상을 뜰 당시 나라 살림이 그만큼 어려웠던 탓이다. 그의 재위 기간에는 백성들의 어려움도 극에 달해 민란이 들끓었다. 

 

#조선 왕릉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헌릉

 

자, 이번에는 수많은 난관을 뚫고 본인이 직접 왕위에 올랐고, 재위 당시에는 왕권강화를 통해 신생왕조를 반석에 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계모이자 정적이던 신덕왕후에게는 무덤에까지 복수를 하고야 말았던 집요함의 소유자, 태종의 헌릉을 살펴볼 차례다. 

 

앞서 말했듯 헌릉은 조선왕릉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살아생전 태종의 모습을 보듯, 병풍석에 난간까지 두른 당당한 봉분을 남들보다 두 배 많은 석물들이 빽빽이 지키고 있다. 한마디로 빈틈이 없다. 두 번의 칼바람을 일으켜 왕위에 오른 태종은 생전에도 이렇듯 빈틈없는 경호를 받았을 것만 같다. 

 

다른 왕릉과 달리 헌인릉은 능침 바로 앞까지 올라갈 수 있다. 그 덕분에 위풍당당한 봉분과 석물을 바로 눈앞에서 확인 가능하다. 왠지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무인상을 살펴보는 것도, 봉분을 둘러싸고 있는 석물의 종류를 맞혀보는 것도 재미있다. 문인석과 무인석 옆에는 석마가, 봉분과 곡장 사이에는 석호와 석양이 있다. ​

 

홍살문에서 올려다 본 헌릉. 헌인릉은 능침 바로 앞까지 올라가서 봉분과 석물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구완회 제공

 

태종은 잔인하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자식 둘을 죽인 계모의 묘를 사대문 밖으로 이전하는 것도 모자라, 거기서 나온 석물을 가지고 청계천 보수공사에 사용해 오가는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400년 뒤, 할머니와 장인의 손아귀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했던 순조와 비교한다면? 

 

시대를 뛰어넘는 이런 비교가 불공평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어차피 우리 같은 백성의 입장에서는 농사 짓는 곡괭이를 들고 민란으로 나서게 만드는 무능하고 허약한 국왕에 비할 바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자식(효명세자)을 앞장세워 난국을 타개하려고 했던 순조와 지저분한 일은 자기 손으로 전부 해결하고 깨끗한 나라를 물려주었던 태종을 비교하면 말이다.

 

<여행메모> 


헌인릉

△위치: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36-10

△문의: 02-445-0347

△이용시간: 11~1월 09:00~17:30, 2~5월/9~10월 09:00~18:00, 6~8월 09:00~18:30, 매주 월요일 휴관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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