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비법] K-블랙프라이데이는 왜 할인율이 저조할까

[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블랙프라이데이란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에 앞서 재고를 할인 판매하는 행사를 말한다. 상점들은 최대 90% 파격적인 할인율을 적용해 소비를 자극하는데, 소비자들의 호응도 열광적이어서 블랙프라이데이 시즌의 매출은 연간 매출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랙프라이데이와 유사한 행사가 있다. ‘코리아 세일 페스타’라고 불린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호응은 블랙프라이데이만 못하다. 미국과는 유통환경이 달라 할인율이 낮을 수밖에 없어서다. 우리나라는 유통업체가 아니라 제조업체(납품업체)가 재고를 부담한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부담이 없기에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 이를 알려면 먼저 제조업체(납품업체)와 유통업체 간의 거래유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직매입’이란 유통업체가 상품을 매입한 뒤 매입가에 이윤을 더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보통 ‘사입거래’로 표현한다. 유통업체가 상품 소유권을 가지게 되므로 판매 활동과 재고 처리까지 담당한다. 편의점은 주로 식품류, 생활 필수재를 취급하는데, 이는 수요가 꾸준하고 소비자 유인에 필요한 상품이므로, 편의점에서는 주로 직매입으로 거래된다.

또 다른 방식인 ‘위수탁거래’에서는 유통업체가 상품을 매입하지 않는다. 유통업체는 제조업체(납품업체)를 대신해 판매 활동만을 수행한다. 그리고 판매액의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를 판매대금으로 지급한다. 이 과정에서 소유권은 이전되지 않는다. 즉 재고 수거·처리는 제조업체(납품업체)의 몫이다.

온라인쇼핑, TV홈쇼핑에서는 주로 위수탁 방식으로 거래된다. 이러한 업태에서는 제조업체(납품업체)가 쇼핑몰 플랫폼이나 방송화면에 개입할 여지가 없고, 상품의 노출 및 구매 유도 활동은 쇼호스트 등 유통업체 관계자에 의해 결정돼 위수탁거래가 적합하다. 

매장임대차의 경우에도 매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판매 활동은 입점업체에 의해 수행된다. 유통업체는 공간만을 제공할 뿐이며, 소비자 집객·홍보, 매장 대여의 대가로 판매액의 일정 부분을 임대료로 받는다. 구체적으로 ‘임대갑’, ‘임대을’ 방식으로 나뉜다. 

그 밖에 위와 같은 유형이 혼합된 ‘특약매입’이 있다. 백화점이나 아웃렛에서는 대부분 매장임대차나 특약매입으로 거래된다. 백화점, 아웃렛이 취급하는 상품은 중고가의 의류·가전제품, 패션잡화 등인데 이러한 상품은 그 특성을 숙지한 제조업체(납품업체) 소속 전문판매원의 역할이 중요하므로, 판매 활동을 제조업체(납품업체)에 일임한다. 결론적으로 직매입의 경우에만 유통업체가 재고를 부담하나, 위수탁, 매장임대차, 특약매입의 경우에는 유통업체가 자유롭게 반품을 할 수 있어 재고 부담이 없는 셈이다.

블랙프라이데이를 기획하는 유통업체들은 재고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 파격적인 할인율을 적용해 소비를 자극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편의점이나 식품류, 생활 필수재 등 단가가 낮은 상품에 직매입이 집중되어 있다. 이러한 상품에 할인율을 적용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하락 폭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또한 소비자들은 주로 중고가 의류·가전제품 할인 판매에 관심을 보인다. 이 상품들은 우리나라에서 매장임대차 방식으로 거래되므로, 유통업체가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여하거나 높은 할인율을 적용할 유인이 적다. 

우리나라 유통업계에서 직매입 비중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각에서는 유통업체들이 서비스 혁신을 도외시한 채 당장의 손실 회피를 위해 재고 부담을 최소화하는데 몰두하고, 막대한 구매력과 협상력의 우위를 앞세워 제조업체에 재고 부담을 전가하고, 높은 유통마진을 확보하려는 전략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보다 거래상 우월적 지위를 지는 구조이기에 유통업체가 재고 부담을 회피하는 조건의 거래가 체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서비스 혁신, 가격할인 등 소비자 후생을 위한 조치가 저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대규모유통업의 거래유형 분석과 정책 방향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조업체 또는 납품업체의 협상력이 강화될 경우 직매입 비중이 높아지고, 특약매입에서 불공정거래의 빈도가 높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각각의 거래유형은 상품의 특성, 판매방식, 시장 상황 등에 적합하게 발전한 것이므로, 직매입 거래만이 우월하거나 공정한 방식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미국은 국토가 넓어 배송비, 물류비 부담이 큰데 이와 같은 유통 현실의 차이로 미국의 직매입 비중이 유달리 높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든 유통 현실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코리아 세일 페스타의 호응이 높지 않은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현재 국내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과거와 같이 높은 유통마진을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이제는 오프라인 업체들도 자체 MD를 육성하고 매입 역량을 발달시키는 등 투자와 혁신을 기울일 때다. 

그 수단 중 하나로서 대량의 물량을 직매입 방식으로 조달함으로써 구매가격을 대폭 낮추는 방법이 있다. 쿠팡이 직매입 방식으로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로켓배송을 가능케 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유통업계에서 어떠한 혁신이 이루어질지, 그 과정에서 K-블랙프라이데이가 어떻게 활용될지 지켜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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