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해외 디파이 서비스(DeFi, 탈중앙화금융)나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제공하는 대출 서비스 인기가 심상치 않다. 투자자들은 가상화폐로 시세차익, 예대마진, 선물, ‘김치 프리미엄(한국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 등으로 더 큰 수익을 올리거나, 급하게 현금이 필요할 때 암호화폐 대출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미비하고 이자 변동 폭도 큰 데다가 해킹 위험마저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는 담보 대출과 무담보 대출로 나뉜다. 담보 대출은 암호화폐를 담보로 다른 암호화폐를 대출해주는 서비스다. 2014년 설립된 메이커다오(MakerDao)가 가장 대표적이다. 메이커다오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탈중앙화 금융 서비스인 디파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더리움(ETH)을 담보로 맡기면 LTV(담보인정비율)에 따라 1달러와 같은 가치를 가진 스테이블 코인인 다이(Dai)를 받을 수 있다.
담보 없이 암호화폐를 대출받을 수도 있다. 에이브(AAVE)가 운영하는 디파이 서비스의 플래시론(Flash Loan)이 대표적이다. 플래시론은 블록체인의 블록 1개가 만들어지는 짧은 시간 안에 무담보로 대출을 받고 상환하는 서비스다. 대출한 암호화폐와 그에 따른 이자까지 한 트랜잭션(거래내역) 안에서 지급이 돼야 하기에 상환해야 하는 총액이 대출과 이자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출 자체가 실행되지 않는다. 즉 완벽한 차익 실현이 가능한 경우에만 플래시론이 발동하는 셈이다.
이용자들의 암호화폐는 디파이 서비스로 향하고 있다. 19일 기준 메이커다오에 묶여있는 물량은 달러 기준 약 174억 2390만 달러 수준(약 20조 6038억 원)이다. 에이브의 유동성 규모도 약 154억 8929만 달러(약 18조 3161억 원) 수준이다.
이용자들이 암호화폐 대출을 이용하는 가장 큰 목적은 높은 수익을 올릴 기회를 잡을 수 있어서다. 디파이 서비스에서는 대출뿐만 아니라 예금도 가능하다. 이용자들은 대출과 예금을 적절히 활용해 수익을 올리고 있다. 특정 암호화폐의 가치나 이자율이 높아 단기간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데, 해당 암호화폐가 없거나 이를 사들일 현금이 부족할 때 보유 중인 암호화폐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해당 암호화폐에 투자해 차익을 남기는 방식이다. 디파이 서비스를 이용해 수익을 남길 수 있는 영상들을 유튜브나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암호화폐 오미세고의 경우 보바토큰 에어드롭 이벤트가 있었다. 에어드롭(airdrop)은 기존 암호화폐 소유자들에게 무상으로 암호화폐를 배분하는 이벤트다. 보바토큰을 받으려는 수요가 몰리면서 오미세고는 일시적으로 가격이 올랐다. 그리고 보바토큰 지급을 위한 스냅숏(기준 시점을 정하는 행위)을 찍자마자 오미세고는 가격이 급락했다. 보바토큰을 받는 게 목적인 이용자들도 있었겠지만, 동시에 오미세고의 시세차익을 노리거나, 가격이 내려갈 것에 베팅한 선물 투자를 위해 오미세고를 대출받은 이용자들도 많아 바이낸스가 오미세고의 이자율을 높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는 급전이 필요한 이용자들이 주로 이용한다. 보유한 암호화폐의 가치가 매수 시보다 떨어져 있거나, 암호화폐의 가치가 향후 더 오를 것으로 판단해 매도할 이유가 없는 이용자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대출 서비스를 활용하는 것. 보유한 암호화폐를 담보로 다른 암호화폐를 빌려 매도한 뒤 현금으로 되찾으면 된다. 전통 금융업계의 대출한도나 신용점수에 영향을 받지 않고 현금을 빌릴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담보로 현금을 대출해주는 업체가 우리나라에 등장했다. 암호화폐 예치 서비스를 운영하는 ‘델리오’는 비트코인을 위탁 연계해 현금을 빌려주는 대부 서비스 ‘블루’를 공개할 예정이다. 암호화폐를 담보로 법정화폐를 대출하는 업체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다. 업계에 따르면 LTV는 50% 정도며, 연 이자율은 약 16%로 예상된다.
그러나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는 아직 법과 제도권 밖에 있는 서비스다. 이용자가 사고로 인한 피해를 입어도 보상받을 가능성이 낮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제 겨우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가상자산사업자로서 신고 후 영업하도록 법을 개정했을 뿐이다.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에는 가상자산법안, 가상자산업 발전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 가산자산 거래에 관한 법률안,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 등 암호화폐 관련 법안들이 계류돼 있지만, 언제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있을지는 가늠할 수 없다.
암호화폐 대출 서비스는 전통적인 금융업계처럼 기준금리가 없다 보니 서비스 주체나 암호화폐에 따라 이자율 변동 폭이 상당하다. 한 시간, 1일을 기준으로 이자율을 계산하고, 대출 기간도 7일에서 180일로 짧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앞서 언급한 암호화폐 오미세고(OMG) 대출에 하루 이자율 10%를 적용했다. 연으로 환산하면 3650%에 달한다. 오미세고의 에어드롭 이벤트로 수요가 몰릴 것을 예상해 높은 이자를 책정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무담보 대출인 플래시론의 경우 해킹 위험도 있다. 해커들은 블록체인 기술이 내부 데이터에 의존하는 단점을 이용한다. 암호화폐 대출을 실행할 때 블록체인 내에 저장된 암호화폐의 적정 가치에 따라 빌릴 수 있는 암호화폐의 총량이 정해진다. 해커들은 담보물의 가치를 조작해 실제보다 더 많은 암호화폐를 대출받고 이를 통해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 최근 크림파이낸스가 플래시론을 이용한 공격으로 약 1억 3000만 달러(약 1500억 원) 상당의 암호화폐 손실을 봤다. 외부 공격으로 손실을 본 게 벌써 세 번째다.
암호화폐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의 가격변동 폭이 높고, 예금으로 인한 이자율이 높다 보니 대출을 받아도 수익을 남길 수 있다고 믿는 이용자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이 같은 수요가 늘면서 최근 암호화폐를 담보로 현금을 대출하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금융당국이 어떻게 유권해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법정화폐를 건드렸기에 문제가 있다면 수일 내에 실체가 드러날 것”이라며 “대출서비스가 인기를 끌든 아니면 문제가 생기든 암호화폐 시장의 법과 제도 마련을 앞당기는 사례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전까지 이용자들은 암호화폐 대출을 최대한 보수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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