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두산그룹이 구조조정의 ‘마지막 관문’으로 불리는 두산건설을 매각하면서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조기 졸업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산업은행에서 3조 원의 긴급자금을 빌린 지 약 1년 6개월 만으로, 대기업 구조조정 역사상 최단기간에 해당한다. 두산건설 매각 논의는 지난해 대우산업개발과의 계약이 불발된 이후 지지부진했지만 최근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두산건설 매각 금액은 4000억 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두산은 두산타워·솔루스·인프라코어 등 우량자산을 잇달아 정리해 채무 자산을 약 5000억 원까지 줄여놨다. 매각 절차가 끝나면 산은에서 대출받은 3조 원의 대부분을 연내 상환할 여력이 생기는 셈이다. 두산은 채권단 체제 조기졸업 후 신에너지 사업 등 신사업 발굴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이 보유한 두산건설을 신영증권 PE 본부-큐캐피탈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하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매각 대상은 두산건설 지분 100%, 매각 금액은 4000억 원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인수 컨소시엄에는 유진자산운용과 신영증권이 재무적투자자로 참여한다. 국내 중소·중견기업 경영권 인수를 전문으로 하는 중견 운용사 큐캐피탈은 두산건설을 인수해 기존 경영진과 협업으로 회사를 운영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산그룹의 부동산 개발 자회사인 디비씨(DBC) 등도 현금 1200억 원과 현물을 출자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두산이 향후 두산건설을 되사오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양측은 이달 안으로 주식매매계약(SPA·Stock Purchase Agreement)을 체결하고 연내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신고를 마친다는 계획이다.
#‘아픈 손가락’ 건설, 구조조정 마지막 퍼즐 맞추기까지
두산건설 매각은 그룹 구조조정의 마지막 퍼즐로 꼽힌다. 두산건설은 지난해 6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대우산업개발에 매각을 시도했지만 가격이 합의되지 않아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재무구조 개선계획(자구안)의 핵심으로 꼽히던 두산인프라코어가 매각될 때까지도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
두산건설은 그룹 유동성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된다. 두산건설의 위기는 2009년 일산의 초대형 주상복합아파트인 ‘두산위브더제니스’ 분양에서 시작됐다. 당시 대규모 장기 미분양으로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해 2011년부터 9년 연속 적자를 냈다.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이 수년간 유상증자 참여해 전환상환우선주(RCPS·Redeemable Convertible Preference Shares) 인수, 각종 사업 출자 등으로 2조 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했지만 고질적인 자금난은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두산건설은 2018년 미분양 대형 평수를 할인 분양해 1646억 원을 손실 처리했고, 2019년 12월 상장폐지 수순을 밟아 지난해 3월 그룹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됐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 여파와 더불어 두산건설에 대한 계열사의 자금 지원이 누적되면서 두산그룹의 재무구조는 악화됐다. 두산건설로부터 촉발된 유동성 악화가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으로까지 번진 것. 지난해 4월 두산중공업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3조 6000억 원을 지원받는 대가로 자산 매각을 골자로 하는 3조 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다. 상환 기간은 2023년이다.
이후 두산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이어왔다. 지난해 8월 클럽모우CC(1850억 원) 매각을 시작으로 1998년부터 사옥으로 쓰던 동대문 두산타워(8000억 원)와 두산솔루스(6986억 원), 두산모트롤BG(4530억 원)를 팔았다. 올해 2월에는 두산인프라코어를 8500억 원에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말 1조 3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 확보에 나섰다.
업계 관계자는 “두산그룹이 자구안에 집중하면서 그룹 내부적으로도 허리를 조여맸다. 작년에는 연봉이 동결됐고 성과급도 없었는데 올해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끝이 보이면서 다시 계열사별로 성과급 지급과 연봉 인상이 이뤄졌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덕분에 빠르게 경영상황이 호전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은 대기업그룹은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과 같이 채무 상환이 유예되는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체적으로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그룹 전체의 재무구조를 따지기 때문에 상환 기간 안에 조기 졸업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두산이 연내 졸업을 한다면 2014년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은 뒤 2년 만에 졸업한 동국제강의 기록보다 6개월을 앞당기게 된다.
#경영정상화 위해 사업 다각화·조직 재정비
채권단은 두산이 자구계획을 충실히 이행 중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적으로 자산을 매각해 안정적인 현금 창출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두산건설 매각으로 최대주주인 두산중공업의 재무구조 개선도 빨라질 전망이다.
두산은 경영정상화를 앞두고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솔루스 등 떠오르는 ‘알짜배기’로 꼽히던 사업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성장동력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1월 1일 두산은 지주부문 내에 그룹 전반의 비즈니스 비전 및 전략 수집, 포트폴리오 재편 등을 수행하는 ‘그룹포트폴리오 총괄’을 신설했다. 대표 자리에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에너지 사업 분야를 담당해온 김도원 사장을 선임했다. 신에너지 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얻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두산그룹은 내년부터 신재생에너지, 소형 원자로 등 신사업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두산중공업은 풍력발전단지 건설, 기자재 공급 계약 체결 등 해상풍력 발전 분야에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는 수소액화플랜트 사업을 추진하고 (주)두산 지주 부문에 ‘수소 TFT’를 발족하는 등 본격적인 수소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밖에도 소형 원자로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여기며 관련 사업을 가속화하고 있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두산중공업은 소형 원자로와 해상풍력 분야, 퓨얼셀은 수소 전지 사업을 확대하는 등 신사업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주)두산의 경우 자율 이동 로봇의 두산로지스틱스솔루션, 물류 자동화 기술을 제공하는 DLS을 키우는 등 향후 계열사별로 사업 다각화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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