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공룡이 멸종한 이유는 그들에게 우주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이다(The dinosaurs became extinct because they didn’t have a space program)!”
미국의 SF 작가 래리 니븐이 남긴 재밌는 말이다. 약 1억 년 전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들은 갑작스럽게 떨어진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에서 자취를 감췄다. 만약 공룡들도 인간들처럼 소행성을 감시하고 방어할 수 있는 우주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대멸종이라는 끔찍한 운명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그랬다면 지금의 지구는 인간이란 작은 포유류가 아닌 거대 파충류의 후손들이 지배하는 행성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인류는 공룡 선배님들의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또 다시 지구를 위협하는 운석이 날아온다면 인류는 멸종하지 않고 지구를 구할 수 있을까? 놀랍게도 이제는 단순히 이론적 아이디어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우주 공간에 날아가서 실제 소행성을 대상으로 지구 방어 시스템을 연습하고 시험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과연 오늘날 인류가 대비하고 있는 지구 방어 시스템은 어떤 모습일까?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을까?
핵폭탄으로 소행성을 방어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가장 최근 진행된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소개한다!
#핵폭탄도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소행성의 크기가 클수록 더 위협적일 듯하다. 물론 소행성의 크기가 클수록 지구에 떨어졌을 때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하지만 오히려 크기가 작은 100~500m 정도 크기의 소행성이 더 위협적일 수 있다. 이런 작은 크기의 소행성은 먼 거리에 있을 때 미리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작은 소행성들이 발견된 시점은 이미 지구에 충분히 가까이 접근한 이후가 될 것이다. 결국 이런 작은 소행성들을 발견하고 방어하기까지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3주밖에 안 될 것이다.
사실 100~500m 크기라 하더라도 그 파괴력이 아주 작은 것도 아니다. 물론 수 km 크기의 소행성처럼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도시 하나쯤은 순식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무시하기 어려운 파괴력을 지녔다. 크기가 작아서 찾기 어려울뿐더러 무시할 만큼 위력이 약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둠 속에 숨어 있을 이런 소행성들은 가장 까다로운 잠재적인 위험 요소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충돌은 지구에서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1908년 6월 30일 러시아 예니세이스크 지역에 있는 폿카멘나야 툰구스카강 인근에 지름 60m 정도 크기의 커다란 운석이 떨어졌다. 운석은 땅에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 여파로 서울 면적의 3.5배나 되는 지역 전체가 싹쓸이 되었고 8000만 그루의 나무들이 밀대로 밀어버린 것처럼 다 누워버렸다.
이 사진은 1994년에서 2013년까지 약 20년간 지구에 추락하며 운석이 대기권에서 공중 분해된 지역과 그 위력을 표시해놓은 것이다. 고위도, 저위도, 바다, 육지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지역에 고르게 운석이 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운석 충돌의 심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아마겟돈’, ‘딥 임팩트’ 등 운석 충돌을 다루는 SF 영화에서는 지구에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아예 핵탄두를 가지고 가서 소행성에서 터트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오히려 소행성을 더 많은 작은 조각으로 쪼개 지구를 더 큰 위협에 빠뜨릴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잘게 쪼개진 파편은 사방으로 떨어질 뿐 아니라 파편들이 동시에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져 가열되면 지구 대기권의 온도도 더 뜨거워지게 된다. 그 영향은 한동안 지구 기후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운석 조각들이 운 좋게 전부 공중에서 타버려 사라진다 하더라도 훨씬 뜨겁게 달궈진 지구의 하늘 아래 생태계는 적지 않은 악영향을 받을 거라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소행성을 핵으로 터트리는 영화 속 방식은 정말 안 좋은 방법일까?
최근 천문학자들은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소행성을 핵으로 터트리는 방법의 효과를 테스트했다. 수백 m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기까지 6개월에서 몇 주를 앞둔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약 1메가톤의 핵탄두를 소행성 표면에서 터트렸을 때 소행성이 어떻게 쪼개지고, 그 파편이 지구에 얼마나 떨어질 수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 결과 소행성의 질량 99.9퍼센트 대부분은 모두 태양계 우주 공간으로 흩어졌다. 직접 지구 대기권으로 떨어진 건 겨우 0.1퍼센트뿐이다. 이 정도면 지구 대기권의 온도도 크게 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충분히 작은 양이기 때문에 파편 대부분이 지표면에 닿지 않고 모두 공중에서 불 타 사라질 수 있다. 물론 이런 작은 양이라 하더라도 운 나쁘게 인구 밀집 지역 위에서 폭발하면 (지난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지역 위에서 폭발한 운석처럼) 인명·재산 피해를 남길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시뮬레이션 분석에 따르면 기존의 걱정과 달리 핵폭탄으로 터트리는 방법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급박한 상황에선 그나마 아주 큰 피해 없이, 충분히 시도해볼 만한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작은 탐사선으로 소행성의 궤도를 틀 수 있다?
운 좋게 좀 더 여유롭게 위협적인 소행성을 발견만 할 수 있다면, 핵폭탄보다 더 안전한 방어 수단을 활용해볼 수 있다. 소행성 근처에 작은 탐사선을 보내 그 곁을 맴돌게 하거나, 아예 소행성 표면에 추락시키는 방법이 있다. 물론 탐사선 자체의 질량은 소행성에 비하면 턱 없이 작지만 탐사선의 약한 중력으로도 수 개월에서 수년간 지속적으로 영향을 준다면 충분히 소행성의 궤도를 틀 수 있다.
실제로 2005년 천문학자들은 혜성 템펠-1을 향해 탐사선에 실려 있던 작은 탐사선을 날렸다. 물론 이 혜성은 지구를 위협하는 천체는 아니었고, 탐사선이 부딪히면서 튀어나간 혜성의 파편 샘플을 수집하기 위한 미션이었다. 당시 탐사선이 충돌하면서 혜성의 속도는 초속 약 0.01 마이크로미터 정도 아주 살짝 느려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주 미세한 변화이지만 이 속도 변화로 인해 결국 혜성의 궤도는 10m 정도 달라졌다. 격추용 탐사선을 단 한 발이 아니라 여러 발을 연이어 날린다면 그 변화는 더 커질 것이다. 단 수십 m의 차이도 운석 충돌을 앞둔 지구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유의미한 차이다.
11월 24일 NASA는 실제로 본격적인 소행성 격추 실험을 위해 탐사선을 보낸다. SpaceX의 팰컨 9 로켓에 실린 작은 탐사선은 지구와 화성 궤도 사이를 넘나들며 지구 궤도 근처를 지나가는 소행성 디디모스(Dydimos)로 날아갈 예정이다. 이 소행성 곁에는 더 작은 소행성 디모르포스(Dimorphos)가 함께 맴돌고 있다. 탐사선은 이 디모르포스로 빠르게 충돌해 두 소행성의 궤도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을지를 테스트할 예정이다. 말 그대로 마치 과녁에 작은 다트 화살을 맞추듯 진행될 이번 DART(Double Asteroid Redirection Test, 이중 소행성 방향 수정 테스트) 미션은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오게 될 운석 충돌의 위협으로부터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볼 중요한 도전이 될 것이다.
영화에서 지구를 위협하는 우주적 재난으로부터 인류를 지켜주는 건 히어로들의 초능력과 마법이지만, 현실 세계에선 과학이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천문학자들은 진짜 히어로라 할 수 있다. 과연 인류는 대멸종을 피하지 못한 공룡 선배들과 다른 운명을 걸을 수 있을까? 지구에 찾아오는 우주적 재난을 무기력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직접 우리 행성의 운명을 바꿔버리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곧 시작될 DART 미션의 성패에 인류의 운명이 걸려 있다.
참고
https://www.llnl.gov/news/late-time-small-body-disruptions-can-protect-earth
https://wci.llnl.gov/simulation/computer-codes/spheral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094576521003921?dgcid=coauthor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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