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근 국내 게임사들이 게임 BJ에 거액의 프로모션 비용을 주며 신작 홍보에 나서는 사례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일각에서는 돈을 쓸수록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페이투윈(P2W, Pay to Win) 게임에서 심판인 게임사가 BJ에게 홍보비를 주면서 특정 세력을 지지하고 이용자들의 과금을 유도하는 것 아니냐며 비판한다. 그러나 게임사들은 “BJ에게 정당한 홍보비를 지급한 것뿐이다. 이를 어떻게 쓰는지는 BJ들이 결정할 일”이라며 “공정성이 저해된다고 생각하는 이용자들은 다른 서버에서 게임을 하면 된다. BJ들과 같은 서버에서 게임을 하고 싶어하는 이용자들이 훨씬 더 많다”고 반박했다.
P2W 게임 BJ들의 주 콘텐츠는 게임에 돈을 쓰는 것이다. 변신·마법인형 뽑기 등 확률형 아이템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쓰면서 자신들 캐릭터의 스펙을 쌓는다. 일반인들은 감히 꿈꾸지 못할 정도의 큰 액수다 보니, 시청자들은 이들의 ‘현질’을 통해 어느 정도 돈을 써야 저 정도 스펙을 쌓을 수 있는지 가늠했다. 아이템 강화에 성공하거나, 큰돈을 썼는데도 원하는 스펙을 올리지 못했을 때 나오는 BJ의 리액션에 시청자들은 대리만족을 느꼈다.
이러한 콘텐츠가 흥행하면서 새로운 콘텐츠들이 등장했다. 돈 좀 쓴다고 자부하는 일반 유저들이 BJ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스펙업을 요구한 것. 가령 변신·마법인형을 대신 뽑아달라거나, 무기나 방어구의 강화를 부탁했다. 성공 확률이 높을수록 BJ의 인기는 더 높아졌다. 이 같은 대리 콘텐츠에 시청자들은 BJ에게 성공 염원과 실패를 바라는 야유 등을 보내며 재미를 느꼈다.
이를 통해 게임 BJ가 게임 산업에 미치는 영향력도 높아졌다. 게임에서 버그가 발생하거나, 운영진 정책이 유저에 반할 때 BJ들이 앞장서서 유저들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올해 리니지M에서 발생한 문양 사태가 단적인 예다. ‘핵과금러(유료 콘텐츠를 사는 빈도와 액수가 상당히 높은 게임 이용자를 이르는 말)’인 게임 BJ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이 게임사들로선 썩 반갑지 않은 이유다.
게임사들은 결국 BJ들을 돈을 주고 영입하기 시작했다. 게임 BJ들에게 거액의 홍보비를 주며 신작 홍보를 맡기기 시작한 것. 카카오게임즈의 ‘오딘: 발할라 라이징’의 경우 영향력 있는 게임 BJ들이 게임을 즐기며 과금하는 것에 시청자들이 큰 반응을 보였다. 그 결과 오딘은 엔씨소프트의 리니지M과 리니지2M이 수년간 굳건히 지켜온 게임 매출 1위 자리를 단숨에 가로챘다.
카카오게임즈에 1위 자리를 내준 엔씨소프트도 신작 리니지W 홍보를 위해 게임 BJ들을 대거 섭외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 유튜버들까지 섭외했다. 그 덕분에 리니지W는 오딘에게서 매출 1위 자리를 다시 빼앗았다. 리니지W는 출시 9일 만인 12일 누적 매출 1000억 원을 돌파했다. 동시에 유저들의 불만을 대변하던 BJ들의 목소리도 낮출 수 있었다. 홍보비를 받았기 때문에 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내는 진심 담긴 불만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게임사가 BJ를 통해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그간 BJ들의 과금 콘텐츠는 대리만족하는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면서도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BJ들이 하루에 수천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모습을 보고 시청자들이 따라할 수 있다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것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던 건 그동안 BJ들이 게임에 쓴 돈이 ‘사비’였기 때문이다. 사비를 썼기 때문에 BJ의 콘텐츠에서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게임사가 BJ들에게 홍보비를 지급한 사례들이 공식적으로 드러났다. 엔씨소프트로부터 리니지W 홍보비를 받은 BJ 인범은 최근 전설등급의 변신카드 ‘드래곤슬레이어’를 뽑는 콘텐츠를 진행한 바 있다. BJ 인범은 4시간 40분간 확률형 아이템을 뽑기만 했고, 그가 쓴 돈은 2억 원 정도다.
결국 게임사도 사행성 조장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시청자들은 “게임사가 BJ로 하여금 유저들의 과금을 조장한다”며 비난하고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BJ들이 받는 홍보비의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순 없지만, 적어도 이들이 게임에 쓰는 금액보다는 홍보비가 더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게임이 출시되자마자 BJ들이 수천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게임사 관계자는 “BJ 홍보비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극히 일부다. 패션업계에서 모델을 활용하고, 상품 광고에 연예인을 활용하는 것과 같다. 게임업계에서 모델과 연예인은 BJ들이다. BJ들에게 홍보비를 지급하는 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BJ들에게 홍보비를 지급하면서 얼마만큼 사용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과금은 BJ들의 선택사항”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게임사가 BJ에게 홍보비를 지급하는 것이 자칫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하는 행위라는 주장도 제기한다. P2W 게임은 돈을 많이 쓸수록 유리하다. 게임사는 P2W 게임에서 공정한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특정 세력을 형성하는 BJ에게 홍보비 명목으로 금전을 지원하는 건 공정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게임사가 특정 BJ를 밀어주면서 승패가 왜곡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구독자 약 30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중년게이머 김실장’은 “과거에 기자들이 취재 목적으로 P2W 게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때 특정 혈맹에 가입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그 기자가 길드의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아 기사의 중립성이 무너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공정성이다. 상대와 경쟁하는 게임에서 제3자의 세력이 한 세력을 지원하는 뉘앙스가 느껴져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에는 우리가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어그러지는 느낌이 든다. 게임사가 특정 세력에 거액의 홍보비를 준다. 특정 세력이 게임사의 홍보비로 스펙업을 하고 게임에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공정한 일일까 의문”이라며 “물론 BJ가 게임사 입장에서는 신작 홍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다. 또 BJ들이 홍보비 대부분을 게임에 사용하기에 게임사 입장에서 어느 정도 원금 회수도 할 수 있다. 충분히 매력이 있는 마케팅이다. 하지만 반대 입장에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게임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공정성 유지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으면 판이 무너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의 게임사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일각의 비판은 충분히 수용하고 있다. 다만 BJ들이 속한 서버가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가령 축구선수 박지성과 축구를 할 수 있다면 마다할 사람이 있겠나. 내가 박지성보다 축구 못한다고 스트레스 받지는 않지 않나. 즉 좋아하는 BJ와 같은 서버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흥미를 느끼는 수요도 충분히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이를 원치 않는 이용자들이 있다면 다른 서버에서 게임을 즐기면 된다. 이 부분은 이용자가 선택할 부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앞으로도 BJ를 활용한 신작 홍보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두 게임의 흥행으로 게임사들은 앞으로 P2W 게임 신작이 출시할 때마다 BJ에 홍보비를 쓸 수밖에 없는 처지인 셈이다. BJ들은 앞으로 더 많은 홍보비를 요구할 것이다. 신작의 성패 요소가 게임의 질이 아니라 그 게임사가 감당할 수 있는 홍보·마케팅 비용에 좌우될 수 있다.
한국게임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이른바 ‘자뻑 마케팅’이 기업화 돼가는 추세다. 게임사들이 구글 플레이 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에서 순위를 높이기 위해 돈을 쓴다. 순위가 높을수록 이용자들이 호기심을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게 먹혔다. 반대로 그만큼 비용을 쏟지 못하면 게임이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초기에 망할 수 있다. 모바일 게임 회사들은 이 같은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위 교수는 “최근에는 게임사들이 BJ들에게 홍보비를 주며 신작 마케팅을 한다. 문제는 BJ들이 게임을 홍보하는 게 미디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개인 취미활동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친구한테 돈 받듯 게임사로부터 돈 받고, 원래 하던 것처럼 과금을 하는 거다. 이용자들은 ‘저 정도 금액이면 나도 같은 스펙이 될 수 있겠구나’라고 착각하게 된다. 결국 유저들이 BJ만큼 돈을 쓰게 된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마케팅에 투자한 만큼 성공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며 “게임을 잘 만들어 승부를 보려는 게임사가 점차 사라져간다. 게임의 수명도 그만큼 짧아진다. 이러한 마케팅은 국내 게임 산업에 지극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순히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 앞으로 회계 부정 같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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