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공유주방에도 권리금이 등장했다. 공유주방에서 1~2년 동안 매장을 운영하던 사업자들이 임차권을 양도하며 권리금을 받는 사례가 확인됐다. 배달 음식점이 대부분인 공유주방에서는 사업자들이 1~2년간 배달 애플리케이션과 온라인 마켓에서 받은 평점과 순도 높은 리뷰들이 권리금 산정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잘되는 사업을 양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권리금은 공간을 불문한다. 새로운 임차 형태인 공유주방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전문점이 강세를 띤 것이 이 같은 현상을 앞당겼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유주방은 2019년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와 안성휴게소(부산방면) 두 곳과 심플프로젝트컴퍼니가 운영하는 위쿡(WECOOK)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는 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통과하면서 시작됐다. 최초의 민간 규제 샌드박스 사례로 잘 알려져 있다. 이전에는 다수 사업자가 하나의 주방을 공유하는 게 불가능했다. 식품위생법상 식품을 제조·조리해 판매하려는 영업자는 영업소별 또는 주방 구획별로 하나의 사업자만 영업 신고를 할 수 있었기 때문.
공유주방은 ‘시간구분형’과 ‘동시사용형’으로 나뉜다. 하나의 주방을 주간(08〜20시)과 야간(20시〜24시)으로 구분해 2명의 사업자가 사용하는 게 시간구분형 공유주방이다. 앞서의 휴게소에서는 시간구분형 공유주방을 사용했다. 같은 시간대에 여러 명이 사용하는 방식이 ‘동시사용형’인데 위쿡의 경우 이 방식을 사용 중이다.
공유주방은 건물 임대료나 시설 인테리어 비용 등 초기 창업비용을 낮출 수 있어 예비 창업자들로부터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산 이후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많은 사람이 어렵지 않게 공유주방에서 창업에 도전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공유주방은 올 6월 기준 총 21개 업체가 시범운영 중이다. 영업 범위도 커피 등을 판매하는 ‘휴게음식점’에서 출발하여 ‘즉석판매제조·가공업’까지 확대됐다.
더욱이 공유주방은 지난해 말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제도권 내에서 정식 서비스 운영이 가능해졌다. 올해 12월 30일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공유주방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강립 식품의약품안전처 처장은 지난 6월 위쿡 현장을 방문해 “지난 2년간 공유주방의 시범운영으로 공유경제 개념을 도입한 새로운 영업 방식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국민이 공유주방을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철저한 위생관리에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공유주방이 지난 2년에 걸쳐 자리를 잡으면서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바로 ‘권리금’이 등장한 것. 권리금은 단골 확보나 상권에서 지명도, 특수한 영업비법 등 그 부동산이 갖는 특수한 장소적 이익 또는 특수한 권리를 이용하는 대가로 임차권의 양수인이 양도인에게 지급하는 금전이다. 권리금은 원래 우리나라 법상 인정되지 않았으나, 2015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권리금은 주변 상권의 성숙도와 배후지, 업종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권리금은 통상 바닥·시설·영업 권리금으로 세분된다. 바닥 권리금은 말 그대로 위치에 따라 책정된다. 지역에 따라 다른 것도 있지만 같은 상권이라도 골목이나 중심지에 있느냐에 따라 권리금이 다르다. 매장의 인테리어 등을 얼마나 고급스럽고 편리하게 만들었느냐에 따라서 책정되는 건 시설 권리금이다. 마지막으로 위치가 별로고, 시설도 좋지 않아도 영업이 잘되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영업만 잘해도 받을 수 있는 게 영업 권리금이다”라고 설명했다.
권리금은 주로 전통적인 오프라인 상권에서 나타났다. 앞서 언급된 연·월매출, 단골, 지명도 등이 모두 수년간의 영업을 통해 쌓여야 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공유주방에서도 권리금이 등장했다.
A 씨는 최근 공유주방에서 숍인숍(shop in shop)을 운영하던 B 씨로부터 음식점을 넘겨받기로 하고 3000만 원 정도를 권리금으로 지불했다. A 씨는 그 대가로 식기류 등 매장 운영에 필요한 각종 시설과 상호는 물론, B 씨가 쌓아온 배달 애플리케이션(앱)에서의 높은 평점과 좋은 리뷰 등도 그대로 넘겨받았다.
A 씨는 “지인 B 씨와 1년 정도 함께 일해본 결과, 주변에 아파트가 많아 월 매출이 어느 정도 일정하다는 걸 확인했다. 또 매장을 그대로 넘겨받아 배달 앱에 쌓인 좋은 평점과 리뷰들도 그대로 유지됐다. 계속해서 이전과 같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공유주방 자체가 인테리어에 신경 쓰거나 고객들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어 부담이 적은 것도 한몫했다. 나는 홍보와 위생, 음식의 질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즉 공유주방에서 매장을 1~2년 이상 운영한 사업자들이 배달 앱이나 온라인 마켓에서 쌓은 신뢰도나 명성이 영업 권리금으로 책정되는 사례가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최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매장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이 후발로 뛰어드는 사람에게 시설 투자비, 노하우, 지명도 등을 전수하면서 그 대가로 받는 것이 권리금이다. 공유주방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업자가 이 같은 조건을 잘 갖췄을 경우 매장을 양도받는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요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권대중 교수도 “최근에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음식점 매출이 높아지는 특수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배달 음식점은 위치와 관계가 없고, 인테리어를 신경쓸 필요도 없다. 홍보를 통한 매출 확보와 음식의 맛이 중요하다. 그에 따라 영업 권리금이 높게 책정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권 교수는 “공유주방은 사업자들이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이후는 창업자의 기술력, 근면 등 능력이나 홍보를 통한 마케팅이 관건이다. 또 코로나19 확산으로 배달 주문이 일시적으로 증가한 점도 있다. 창업자의 능력이 좋지 못하거나 업종을 잘못 선택했거나 마케팅에 성공하지 못하면 공유주방에 입점해도 망할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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