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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우주의 진짜 소리를 담으려 했던 '음악가' 케플러

천문학자와 음악가가 담으려 한 '살짝 틀어진' 우주의 아름다움

2021.11.08(Mon) 11:51:50

[비즈한국] 온라인에서 ‘우주의 소리’란 제목의 영상을 본 적 있는가. 목성, 토성 등 태양계 행성에서 녹음한 소리라면서 기괴한 소리를 들려주는 영상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실제 행성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영상 속 소리들은 행성에서 관측한 전파 신호를 사람의 귀로 들을 수 있게 음역대를 옮겨 만든 것이다. 

 

그런데 실제 태양계 행성들에서 이런 다양한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거라 생각한 천문학자가 있다. 독일의 천문학자 케플러다. 그는 각 행성이 고유의 음을 연주하며 우주에서 한 편의 조화로운 음악이 연주되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가들이 발견한 음악 이론을 통해 조화로운 우주의 하모니를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우주의 소리를 악보에 옮기려는 시도도 했다. 케플러가 밤하늘에서 들었던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천문학자 케플러가 담아내고자 했던 우주의 음악은 어떤 것이었을까?

 

오늘날에는 예체능과 이과라고 하면 거리가 아주 멀어 보인다. 하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소리의 조화를 찾아내는 음악은 수학의 한 분야로 여겨졌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7개의 음계도 바로 수학자 피타고라스에 의해 시작된 개념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날 피타고라스는 우연히 대장장이가 쇠망치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 망치 소리에서 묘한 조화를 느꼈다. 흥미롭게도 망치의 무게가 딱 1 대 2 비율일 때 두 망치의 소리가 조화롭게 들렸다. 하지만 이 설화는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망치의 무게 비율로 이런 조화로운 소리를 재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선의 길이 비율이라면 음의 조화를 재현할 수 있다. 

 

피타고라스가 음악의 조화를 연구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 이미지=Wikimedia commons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짧게 줄여서 튕기면 원래 소리보다 더 높으면서도 원래의 소리와 아주 잘 어울리는, 딱 한 옥타브 높은 소리가 만들어진다. 현의 길이를 3분의 2로 줄여서 튕기면 이번엔 또 살짝 다른 소리가 나지만 이 역시 원래 소리와 잘 어울리는 5도 차이 나는 음이 만들어진다. 피타고라스는 우주가 ‘수’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수학자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양한 음을 만들어내는 현악기의 선의 길이에서 너무나 깔끔한 정수 비율의 조화를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수학적으로 완벽할 것만 같던 피타고라스의 음계는 조금씩 미세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피타고라스는 1:2(한 옥타브 차이)와 2:3(5도음 차이) 두 가지 비율만 활용해서 다양한 음계를 만들려고 했다. 첫 번째 기준 음에서 출발해서 5도씩 차이가 나는 음을 만들어가면서, 원래 기준 음과 한 옥타브 차이가 나는 음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음을 여러 단계로 쪼개고 싶어했다. 이를 통해 12개의 음으로 구성된 12음계 체계가 탄생했다. 하지만 5도씩 음을 오르락내리락하는 방식으로는 완벽하게 원래 기준 음보다 한 옥타브 높거나 낮은 음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었다. 3의 2를 아무리 여러 번 곱해도 정확하게 2분의 1 비율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연주자가 직접 미세하게 현의 길이를 조절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현악기에선 그나마 사정이 나았다. 하지만 딱 정해진 건반만 눌러야 하는 건반악기에선 미세 조절이 불가능했다. 건반과 건반 사이에 있지 않은 미세한 중간 음색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음악의 조성을 바꿔서 연주하려면 매번 피아노를 조율해야 하는 귀찮은 문제가 발생했다. 

 

조성이 바뀔 때마다 미세하게 다른 으뜸음에 맞춰 다른 음을 모두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매번 피아노 전체를 새로 조율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미지=Wikimedia commons

 

결국 피아니스트들은 피타고라스가 집착하던 완벽한 ‘정수비’의 족쇄를 벗어던졌다. 각 음과 음 사이의 진동수 비율을 정확하게 1:2와 2:3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한 옥타브의 차이를 12등분했다. 각 음의 진동수 비율이 모두 동일한 새로운 체계를 만들었다. 연주자의 편의를 위해 수학적인 조화를 포기한 과감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평균율이 탄생했다. 모든 음과 음 사이가 동일한 평균 간격으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매번 피아노를 조율하지 않아도 편하게 조성을 오르내리며 다양한 음악을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당시의 피아노 조율사에겐 평균율의 탄생이 그리 달가운 소식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바로 이 ‘평균율’의 놀라운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두 권의 클라비어 곡집을 통해 다양한 12가지의 장조와 단조로 구성된 프렐루드와 푸가 곡의 템플릿을 선보였다. 평균율이 단순히 편리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아름답고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최고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바흐의 음악만 있다면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인류의 음악을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했다. 그래서일까? 인류 역사상 가장 먼 여정을 떠나고 있는 보이저 탐사선에 실린 골든 레코드에는 바흐의 곡이 무려 세 곡이나 담겨 있다. 한 곡이 실린 모차르트와 두 곡이 실린 베토벤보다 더 많다. 먼 미래 보이저호를 발견한 외계인들이 바흐의 음악을 듣게 된다면, 인류가 어떤 체계의 음악을 작곡하고 들으며 지냈을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우주까지 날아간 인류 최초의 우주 데뷔 앨범 골든 레코드. 사진=NASA/JPL

 

음악가들은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감옥을 탈출해 약간은 어긋난 평균율이란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였다. 마찬가지로 완벽한 수학적 조화를 포기하는 너그러운 용기는 케플러에게도 중요한 문제였다. 당시 케플러는 태양 주변을 도는 모든 행성이 당연히 기하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원 궤도를 그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케플러는 스승 티코 브라헤가 남긴 화성의 관측 자료를 활용해 화성의 궤도를 계산했다. 그런데 화성은 시기에 따라 태양에 가까워지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했다. 분명 원에서 벗어난 이상한 궤도였다. 

 

어쩌면 화성이 사실 찌그러진 타원을 그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우주가 완벽한 수학적 조화를 이루고 있을 거라 기대했던 케플러는 이 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수년간 2절지 종이 수천 장에 계산을 반복하며 화성 궤도 문제로 씨름했다. 이 과정을 케플러의 ‘화성의 전투’라 부르기도 한다. 전쟁의 신 마르스를 상징하는 화성에게 걸맞은 계산 과정이었다. 

 

케플러가 분석한 화성의 궤도를 표현한 그림. 왼쪽 궤도를 보면 완벽한 원이 아닌 타원 궤도가 묘사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미지=Oxford Science Archive


사실 화성 궤도가 찌그러진 정도는 아주 미미하다. 화성이 그리는 타원 궤도에서 가장 긴 반지름과 가장 짧은 반지름의 차이는 겨우 0.4%다. 다른 사람 같으면 스승 브라헤가 관측에서 실수한 게 아닐까 생각하고 원 궤도가 맞다며 넘어갔을 만한 아주 미미한 오차였다. 하지만 집요한 케플러는 미세한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고 결국 실제 행성들이 완벽한 원을 벗어나 타원을 그리고 있다는 진실을 찾아냈다. 이것이 바로 케플러의 첫 번째 법칙, 타원 궤도의 법칙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주가 가장 완벽한 수학적 조화를 이루고 있을 거라 생각한 케플러가 스스로 족쇄를 풀고 약간 찌그러진 모습의 진짜 우주를 발견한 것이다.

 

케플러는 각 행성의 타원 궤도의 크기와 궤도가 찌그러진 비율, 이심률에 맞춰서 각 행성에 해당하는 음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천구의 음악’이라고 불렀다. 궤도가 크고 공전 주기가 길수록 음이 낮아진다. 그래서 목성과 토성은 아주 낮은 음을 연주한다. 반면 궤도가 작고 공전 주기가 짧아질수록 음이 높아진다. 태양에 가장 바짝 붙은 수성은 가장 높은 음색을 연주한다. 여기에 더해 궤도가 더 크게 찌그러진 타원을 그릴수록 음의 높낮이 변화를 더 크게 주었다. 궤도가 거의 완벽한 원에 가까운 금성은 음의 높낮이 변화가 없고 하나의 음만 연주한다. 반면 궤도가 아주 크게 찌그러진 타원을 그리는 수성은 음의 높낮이 변화가 가장 극적이다. 케플러는 이러한 행성들의 궤도의 특성을 악보에 옮겨서 연주한다면 실제 우주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케플러가 만든 각 행성에 해당하는 음계. 케플러는 행성의 음을 함께 연주한다면 실제 우주가 연주하고 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미지=Wikimedia commons

 

케플러는 말 그대로 우주 본연의 모습을 악보에 옮기려 한 우주의 음악가였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그는 우주를 가장 아름답게 느낀 사람이지 않을까. 매일 밤 하늘에서 천천히 돌아가는 행성과 별의 움직임을 보며 함께 연주되는 우주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 우주는 완벽한 이상적인 수학적 조화를 살짝 벗어나, 약간 찌그러지고 어긋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수학은 우리 우주를 아주 근사하게 단순화해 묘사하는 ‘근사한 근사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조화라는 집착에서 벗어나 미세한 차이와 어긋남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우주의 ‘아름답게 흐트러진’ 진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놀랍게도 음악가와 천문학자 모두 이러한 우주의 모습을 각자의 방식으로 발견해 노래했다. 

 

천문학자의 눈동자와 음악가의 손가락 끝에서 그려진 각자의 우주는 어떤 모습일까? 마침 이번 11월에 피아니스트와 함께, 각자의 방식으로 우주를 노래한 세 쌍의 과학자와 음악가를 소개하는 렉처 콘서트 ‘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혼돈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피워낸 하이젠베르크와 쇤베르크, 우주를 바라보며 우주를 노래한 갈릴레이와 드뷔시, 우주 속 조화를 연주하고자 했던 케플러와 바흐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피아노 공연과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음악과 함께 우주의 이야기를 선보일 이번 공연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우주를 노래한 세 쌍의 과학자와 음악가를 소개하는 렉처 콘서트 ‘천문대에 피아노가 떨어졌다’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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