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대기업은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지 않는다. 오히려 업종을 가리지 않고 크고 작은 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기업 정직원의 임금 수준이 업계 평균보다 훨씬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부가가치가 낮은 업무, 중요하지 않은 업무라면 철저히 외주화한다. 청소, 시설관리 업무를 외주업체에 위탁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아직 우리나라 대기업의 임금체계는 대부분 ‘호봉제’다. 호봉제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상승하는 제도다. 이는 장기근속을 유도하는 효과를 가져오므로 시장규모가 커지는 분야나 업력·경험이 중요한 업무에 적합하다. 반대로 말하면 시장이 축소되는 분야나 업력·경험이 중요하지 않은 업무는 호봉제에 적합하지 않고, 따라서 외주업체에 맡기는 것이 낫다.
국내 제조업을 살펴보자. 최저임금과 공장 임대료 등은 지속해서 인상돼 경쟁력은 해마다 약화하고 있다. 시장 변동성은 날로 높아져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제조설비·인력을 보유하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짐이 된다. 여기에 더해 제조 공정은 급속도로 자동화돼 종업원의 근속연수가 높다고 해서 품질이 향상되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비록 중요한 업무라고 하더라도 제조 부문을 위탁하는 사례, 즉 제조 하도급이 증가하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전(前) 공정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후(後) 공정(테스트, 패키징)은 중소기업이 각자 담당하기로 분업화된 것이 그러한 예다.
한편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기획·진행하기는 너무 전문적이어서 외주업체에 위탁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IT업체에 전산 시스템 구축을 발주하거나 법무법인에 법률 자문을 의뢰하는 것, 그룹 지주사에 지식재산권 관리업무 등을 위탁하는 것이 그러한 예다.
과거에는 외주업체를 하청업체라고 불렀다. 그러나 하청은 일본식 표현이고, 용어 자체에 갑을 관계가 내재돼 있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에는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외주업체를 이용하는 사례가 많은 만큼 외주업체를 적법하게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관리란 외주업체를 선정하고 거래 기간 동안 외주업체를 평가하며 그 평가 결과에 따라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외주업체를 지나치게 가혹하게 관리할 경우, 공정거래법·하도급법·대리점법 등의 위반으로 인한 행정제재 부과, 일실수익 감소 등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 책임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거나 자격을 박탈한다면 외주업체는 존립이 위태롭게 된다. 이러한 거래중단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면, 외주업체가 공정위에 불공정거래행위 등을 신고하거나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정치권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는 수순이다.
반면 합리적인 근거 없이 외주업체에 일감을 몰아주거나 정상가격보다 높은 대가를 지급해 상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경우, 부당행위계산 부인을 당해 조세 부담이 가중되거나 공정거래법에 위반되는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특히 계열사 간에 호의로 업무를 지원·보조하는 경우, 거래단계에서 비교 견적을 받지 않거나 정상가격을 산정하지 않은 채 임의로 대가를 정했다면 사후 이를 정당화하는 것이 곤란해질 수 있다.
따라서 외주업체 관리는 대기업에 중요한 문제다. 특정 외주업체를 대놓고 편애하거나 휘둘려서도 안되고 일반적으로 업계에서 통용되는 절차를 무시해 민원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외주업체 관리 절차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외주업체 의견을 반영해 평가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 평가 기준으로서 ‘SLA(Service Level Agreement)’라는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Agreement라는 단어에서 보듯이 원칙적으로 평가 기준은 외주업체가 동의 또는 합의한 것이어야 한다. 통상 간담회에서 평가 기준을 설명하고 계약서에 SLA를 첨부하는 방식이다.
다음으로 평가 기준에 따라 외주업체의 용역수행에 대한 평가를 한다. 그리고 외주업체에 평가 결과를 고지해 이의제기의 기회를 주고, 외주업체의 소명을 받은 후 평가 결과를 확정 짓는다.
마지막으로 평가 결과에 따라 신규 계약 또는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 보통 기안문서, 내부품의 등으로 평가 결과에 따른 의사결정의 근거를 남기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이러한 평가 절차는 입찰 절차에서 일종의 기술점수에 해당한다. 여기에 더해 견적가격을 비교해 가격점수를 산정하고, 기술점수와 가격점수를 모두 더한 총점으로 낙찰자와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하기도 한다.
평가 기준 수립, 평가 실시 및 재계약 여부에 반영 등은 어렵거나 복잡한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구현하는 것이 번잡해서인지 아니면 문제의식이 없어서인지, 이를 모두 구현하고 문서로서 입증자료를 확보해 놓은 곳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래 규모가 상당한데 계약서 한 장만 달랑 작성해 놓은 사례도 허다하다.
외주업체가 대기업으로부터 부당한 조치를 받았다고 생각하거나, 대기업이 외주업체의 부실 수행으로 속을 썩고 있다면, 위와 같은 평가 절차와 방법을 점검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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