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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안리 전세 피해②] "우리에게 사기 친 사람들, 제대로 처벌이라도 됐으면"

20~30대 세입자들 경매 통보에 '캄캄'…그나마 가능성 있다는 집단소송도 반환 장담 못 해

2021.11.01(Mon) 16:19:25

[비즈한국] 세 피해 유형 가운데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 은행에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다. 비즈한국이 주목한 부산 광안리 아파트 임대인은 1994년생이다. 그는 신축 아파트 24채를 분양받기 위해 은행에서 40억 원을 빌렸고, 이자를 갚지 못해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 겨우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위기는 고스란히 세입자들에게 전가됐다. 20대 청년이 어떻게 40억 원을 대출받을 수 있었을까? 세입자들의 전세 보증금은 어디로 갔을까? 전국에서 유사한 사건이 반복되지만 피해를 막을 법적 장치 마련은 요원해 보인다.


전세 보증금 피해는 특히 2030세대에 집중된다. 대부분 대학생, 사회초년생인 이들은 상대적으로 부동산 계약 경험이 많지 않고 고가의 아파트보단 원룸, 빌라 매물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집계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례 중 67.6%를 2030세대가 차지했다. 피해자 3명 중 2명은 20~30대 세입자인 셈이다. 

전세 보증금 피해는 특히 2030세대에 집중된다. 전세 보증금 피해자 3명 중 2명이 2030세대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하다. 사진=최준필 기자


부산 광안리 전세 피해 사건도 마찬가지다. 94년생 김 아무개 씨가 보유한 24채 대부분에는 20~30대가 거주한다. 이들은 서로와 무관한 삶을 살다가 ‘임의 경매 안내문’을 받고 한자리에 모였다. 적게는 8000만 원부터 많게는 1억 6000만 원에 달하는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어떤 이에게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20대 내내 모은 결혼 자금이었고, 어떤 이에겐 홀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10년간 모은 돈이었다. 누구 하나 그 돈이 소중하지 않은 이는 없다. 

#경매 통보 안내문 받은 뒤…세입자들 “다시는 전세 못 살겠다”

지난 7월 말 28세대 세입자들은 법원으로부터 부동산 임의 경매 안내문을 받았다. 안내문에는 ‘귀하가 사용(점유)하고 있는 부동산이 경매가 신청되었다’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이 지난해 입주했기 때문에 전세기간이 채 한 번도 끝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에 있는 ​A ​주상복합 아파트는 부산 지역 시행사가 지난해 3월 지하 1층~지상 19층 규모 한 동으로 조성했다. 사진=세입자 모임 제공​


현성 씨(30대 후반·가명)는 작년 10월 이 집에 전세로 들어왔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매력적인 매물이니 조금만 망설여도 집이 나갈 거라고 재촉해 급하게 계약을 맺었다. 올해 4월 현성 씨는 결혼을 했고 ​이 아파트에 ​신혼집을 꾸렸다. 

전세금은 11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은 돈 전부였다. 세입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동안에도 매일의 출퇴근은 반복됐다. 현성 씨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일이 터졌다.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는 것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들어 무기력함을 떨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철수 씨(30대 후반·가명)는 20대 시절 이야기부터 차근차근 꺼냈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짜리 집에서 시작해 전포동 보증금 2000만 원, 경성대 인근 5000만 원, 연산동 7000만 원 전셋집을 거쳐 이번에 1억 6000만 원짜리 쓰리룸 전셋집을 구했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해 모은 돈이었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큰마음 먹고 구한 집이었다. 

법원에서 날아온 등기는 집에 있던 철수 씨 어머니가 받았다. 어머니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뒤늦게 확인한 철수 씨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철수 씨는 “‘등기부등본과 계약서를 꼼꼼하게 살피지 않은 내 탓’이라는 생각과 ‘이건 누구라도 당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왔다갔다했다. 어머니한테는 ​아직도 ​말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공모자… “위험성 제대로 고지 안 해”

입주 두 달 만에 경매 등기를 받은 세입자도 있다. 20대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일해 모은 1억 원으로 전세금을 마련한 이도, 많은 걸 포기하며 10년 이상 월급을 모아 전세금을 마련한 이도 있다. 이들은 공통으로 “이번 일이 잘 해결된다 해도 다시는 전세로 집을 구하지 않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A 아파트는 앞에 버스정류장, 도보 10분 거리에 지하철 금련산역이 있어 시내 접근성이 뛰어나다. 높은 층에서는 창문으로 바다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세 피해자들이 살고 있는 2층~9층은 건물로 앞이 막혀 경매에 넘어가도 팔리기 쉽지 않아 세입자들의 우려가 크다. 사진=세입자 모임 제공


이들은 전세 계약 당시의 문제점도 꼬집었다. 계약 장소가 부동산 중개업소가 아닌 개인 오피스텔이었거나, 집주인 김 아무개 씨 대신 ‘매형이자 대리인’이라고 주장하는 손 아무개 씨가 계약서에 사인을 했지만 위임장 첨부 등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은 사례가 대부분이었다는 것. 두 개로 분리되어 잡힌 공동담보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것도 세입자 다수의 이야기다. 

이들의 임대차 계약서 특약 및 추가사항에는 ‘임차인은 위 부동산에 존재하는 선순위 권리(근저당권, 임차권 등)로 인하여 경매 등이 실행될 경우 전부 또는 일부를 반환받지 못할 수도 있음을 확인한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세입자는 계약 당시 이 내용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다. 

부동산 중개업소는 특약 조항을 통해 책임을 벗어날 구멍을 만들어 놓은 셈이다. 세입자모임 측은 “부동산 중개업소는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는 집이 24채나 되니 이 정도 근저당은 기본. 계산기 두드리니 안전선’이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심지어 일부 부동산은 경매 결정 이후 폐업했거나 잠적 중”이라고 주장했다. 

#세입자모임 “집주인 사기죄·명의신탁죄로 고소할 예정”
 
7월 말 경매 통보 안내문을 받은 뒤 9월 말, 24채 중 19채의 세입자들이 모였다. 세입자모임 대표를 맡은 현정 씨(30대 초반·가명)는 “처음 안내문을 받고 평소 알고 지내던 피해자 한 명과 같이 변호사 상담을 받으러 다녔다. 하나같이 ‘이런 경우 돈을 돌려받긴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그나마 집단소송으로 가면 가능성이 있다고 해 24세대 문마다 포스트잇에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주소를 붙였다. 그걸 보고 세입자들이 ‘너무 답답했는데 고맙다’고 연락을 줬다”고 설명했다. 

세입자모임은 변호사를 선임해 임대인 김 아무개 씨와 매형 손 아무개 씨를 사기죄, 명의신탁죄로 고소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소송 대리를 맡은 김욱태 법무법인 남문 변호사는 “집주인이 어떤 태도를 갖느냐에 따라 소송 진행 과정이 다르겠지만 세입자들의 근저당권이 후순위이기 때문에 돈을 돌려받기 쉽진 않다. 건물 가격에 비해 이자가 많은 수준이 아닌데, 그 정도도 변제가 안 되는 상황에서 다수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것처럼 속였다면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본다. 또 제3자인 매형이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계약과 관리를 맡은 점이 여러 증거로 드러나 명의신탁죄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정 씨는 “처음 한두 달은 집주인의 말을 믿었다. ‘기다려달라, 이자를 내면 경매가 취하될 거다, 집을 내놓았으니 문제없을 거다’라는 말에 기다렸지만 시간만 흐를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입자들이 모여서 사방팔방 알아보러 다니면서도 무력감이 들었다. 직장을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밤 10시가 넘어야 모일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틀에 한 번씩 모였다. 어떤 날은 파이팅이 넘치다가도 어떤 날은 무기력했다. 모두에게 보증금은 너무 소중한 돈이다. 이젠 돈을 못 받더라도 사기를 친 사람들이 제대로 처벌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고 전했다. 

차형조 기자

cha6919@bizhankook.com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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