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파란 하늘 아래 빨갛게 익은 사과를 똑, 따본 사람은 안다. 막 따낸 사과를 소매에 쓱쓱 문지르면 새콤한 향기가 피어 오른다는 것을. 맨질맨질해진 사과를 눈앞에 대고 앙, 크게 입을 벌리면 이빨이 닿기도 전에 침샘이 폭발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는 고급 선물세트 속 아기 머리통만 한 ‘명품 사과’가 아니라, 과수원에서 바로 따 소매에 쓱쓱 문질러 먹는 사과다.
#온가족이 함께 가면 완전 남는(?) 장사
아쉽게도 올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사과를 맛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여름 풋사과(아오리)를 시작으로 홍로와 양광을 거쳐 마지막 만생종 부사도 11월 중순이면 수확이 끝난다. 올해는 추위가 빨리 찾아와 더 일찍 끝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지. 이왕이면 가까운 곳이 더 좋겠지. 서울에서 2시간, 새로운 사과 명산지 충주가 딱이다. 지구온난화는 사과 명산지를 대구에서 청송으로, 다시 충주까지 올려놓았다.
검색창에 ‘충주 사과 체험’을 치니 지도와 함께 사과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농장들이 줄줄이 뜬다. 조건은 대부분 같다. 입장료 따로 없이 농장에서 딴 사과를 kg당 4000원에 사가면 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먹는 사과는 공짜라니, 온 가족이 함께 가면 완전 남는 장사다.
일요일 아침. 다른 휴일보다 조금 서둘러 아침을 먹고 충주로 출발했다. 목적지는 ‘새터농원’. 홈페이지도 보고 블로그 방문기도 참고해서 고른 농장이다. 껍질째 먹는 친환경 사과를 키운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차에 올라 2시간쯤 달리니 어느새 새터농원이다. “사과 따러 왔어요~”라는 말을 건네자 농장 아저씨는 익숙한 동작으로 사과 담을 자루를 들고는 사과밭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사과 따기 교육이 이어졌다.
“사과를 잡고, 위쪽으로 올리면서 따면 됩니다. 돌리면서 따면 안 돼요~. 우리 농장 사과는 친환경이라 소매에 문질러 먼지만 털고 드셔도 됩니다.” 이어지는 간단 실습. 농장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사과를 잡고 위로 살짝 올리면서 힘을 주니 아이들도 아주 쉽게 딸 수 있었다. 이미 익을 대로 익은 사과는 나무를 떠날 준비를 마친 듯하다. 손대면 ‘똑’ 하고 떨어지니 말이다.
#충주에서 ‘인생 사과’를 만나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사과를 따는 시간. 저마다 자루를 하나씩 들고 사과밭으로 돌진했다. 줄지어 서 있는 사과나무에는 붉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어디든 손만 뻗으면 잘 익은 사과가 지천이다. 사과나무 사이로 햇빛 반사 필름을 깔아 두어 나무 그늘 아래 사과도 빨갛게 잘 익었다. 우선 손에 잡히는 사과를 하나 따서 소매에 쓱쓱 문지른 후 한입 베어 물었다. 입 안 가득 새콤한 사과향, 달콤한 사과즙이 퍼진다. 우와, 오늘 여기서 인생 사과를 만나는구나!
정신없이 먹다 보니 어느새 큰 사과 하나가 뼈(?)만 남았다. 아이들도 따는 재미보다 먹는 즐거움에 흠뻑 빠졌다. 사과로 배를 채우고 나니 그제야 바닥에 있는 자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이렇게 맛있는 사과를 자루 가득히 채워 가야지. 소화도 시킬 겸, 더 크고 더 빨갛고 더 예쁜 사과를 찾기 위해 사과밭을 돌아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0kg짜리 자루 두 개가 가득 찼다. 마음 같아서는 더 가져가고 싶지만, 조만간 제철을 맞을 귤을 생각하면 이 정도가 적당하다. 앞으로 한 달 동안 온가족이 매일 먹어도 충분한 양이다.
#350년 고택 체험도 함께
맛있는 사과를 배불리 먹고 두 자루 가득 채워 차에 싣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시간. 아직도 해는 중천이다. 다음 행선지는 새터농원에서 차로 5분 거리의 최응성 고가. 조선 숙종 때의 문장가 최응성의 생가인데 안채와 사랑채, 사당, 정자 등이 350여 년 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원래는 8km쯤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충주댐 건설로 수몰지구가 되면서 이곳으로 옮겼단다.
입구로 들어서니 아담한 연못에 ‘함월정(涵月亭)’이라는 현판을 단 정자가 눈에 띄었다. ‘달빛에 젖다’라는 뜻의 함월은 최응성의 호다. 이렇게 운치 있는 이름이라니! 수백 년 전 이곳에서 달을 보며 술잔을 기울였을 장면을 상상하니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듯하다.
네모난 안채 마당 한구석의 우물은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안채의 방들은 옛 가구와 병풍 등으로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다. 최근에 보수 공사를 마치면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는 한옥 민박으로 운영되고 있다. 안채와 사랑채까지 손님이 머물 수 있는 방은 모두 7개. 최대 40명까지 숙박이 가능하다. 단체가 숙박을 할 경우에는 마당에서 국악 공연을 열기도 한다고.
숙박 대신 차를 한잔 마시며 고택을 둘러볼 수도 있다. 즉석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바비큐 점심도 가능하다(인원수가 맞아야 하므로 예약은 필수다). 안채 옆으로는 항아리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가, 건물 밖에는 토끼와 염소, 개, 고양이와 함께 놀 수 있는 미니 동물농장이 있다. 장독대 옆 헛간 주위로 옛 농기구와 살림살이들이 있어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기도 좋다.
<여행정보>
새터농원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팔봉로 1225
△문의: 010-3432-2986
△관람시간: 상시 개방하나 예약 필수
최응성고가
△주소: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중원대로 2220
△문의: 010-5485-7744
△관람시간: 상시 개방하나 가끔 문을 닫는 일도 있으니 미리 연락할 것
필자 구완회는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여성중앙’, ‘프라이데이’ 등에서 기자로 일했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여행출판팀장으로 ‘세계를 간다’, ‘100배 즐기기’ 등의 여행 가이드북 시리즈를 총괄했다. 지금은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역사와 여행 이야기를 쓰고 있다.
구완회 여행작가
writer@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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