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독일은 유럽 물류의 관문이자 중심지로 불린다. 유럽 경제의 중심이자 경제 대국이고, 국경에 인접한 국가가 9개나 되어 유럽에서 가장 인접국이 많다. 이는 화물 유통에서 최적의 지리 조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독일은 근방 500km 내에 약 2억 5000만 명의 소비자에게 접근할 수 있고, 어떤 물건이든 유럽 어느 지역이든 하룻밤 사이에 목적지에 배송할 수 있다. 항공, 해상, 육로 및 내륙 수로 등 다양한 물류 인프라가 갖추어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독일은 유럽연합 내 최대 물류 시장을 선도하게 되었다.
이는 공식적인 평가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독일은 2007년부터 2018년을 통틀어 세계은행이 선정한 물류 퍼포먼스 지수(LPI)에서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교통 인프라, 국제 접근성, 물류 시스템, 화물 추적 시스템, 타임라인, 고객 만족도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 결과였다.
이렇게 전 세계 물류를 이끄는 독일에서 지난 13~14일에 물류 서밋(Logistics Summit)이 열렸다. 작년에는 함부르크, 올해는 베를린에서 개최되었다. 공교롭게도 2020년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행사가 출범해, 물류 산업의 호황과 더불어 디지털화와 혁신을 고민하는 관련 업계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기존에 익숙한 대규모 박람회가 아니라 소규모 토론, 강연, 네트워킹이 주가 되는 물류 전문가들을 위한 행사라는 데에 차별점이 있다.
이번 서밋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물류에 혁신을 가져다 줄 스타트업들이다. 기존 물류 기업에서는 스타트업의 새로운 솔루션에 주목하여 미래 물류를 점쳐보기도 했다. 독일 물류 서밋에서 ‘물류의 미래’로 선정된 스타트업 어워즈를 수상한 신생기업을 소개한다.
#건축자재 주문 앱, 슈트플릭스(Schüttflix)
슈트플릭스는 모래, 자갈 등의 건축자재를 휴대폰 앱을 통해서 주문, 판매, 운송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했다. 쉽게 말해서 건축자재를 위한 ‘우버’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독일 귀터슬로(Gütersloh)에서 설립됐다. 처음에는 귀터슬로가 속한 독일 서부 지역만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2021년 현재 전 독일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독일 전역에 약 3500곳의 파트너사를 보유하였다.
슈트플릭스 앱에서는 공급 업체, 공급 가격, 도달 시간 등을 한 번에 보여주기 때문에 소비자가 비용, 시간, 제품을 비교·선택해 주문할 수 있다. 원하는 시간을 지정하여 배송받을 수도 있고, 급하게 필요한 경우 4시간 안에 배송받을 수 있는 옵션도 선택할 수 있하다. 당연히 앱을 통해 현재 배송 상태 추적도 가능하다.
단순 소매품이 아니라 건축자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고 혁신적이다. 또 주문서나 송장 같은 문서가 필요 없이 모든 과정이 100% 디지털화 되어 있다. 건축자재는 주로 큰 회사들에서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재를 제공하고 공급받는 건축 관련 기업들이 주요한 고객이다. 즉, B2C와 B2B 모델이 동시에 적용되며,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크고 작은 개인 자영업자를 모두 연결해주고 있다.
유럽 최대 건설회사 중 하나인 스트라백(Strabag SE)이 고객사인 것도 특징이다. 스트라백은 2021년 말까지 독일 전역에 있는 건설 현장 200곳에서 슈트플릭스 앱을 사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1만 5000개 이상의 화물트럭, 2800곳의 파트너가 배치되었다. 슈트플릭스는 2022년에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 시장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CEO 크리스티안 휠제비히(Christian Hülsewig)는 33세의 젊은 나이지만,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서 글로벌 유통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등 물류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 밖에 독일의 유명 배우 소피아 토말라(Sophia Thomalla)가 주주이자 홍보대사로 참여한 덕분에 일반인들에게도 빠르게 알려졌다.
#웨어러블 스캐너 개발·관리, 님스타(NIMMSTA)
님스타는 손등에 찰 수 있는 웨어러블 스캐너를 개발하고 이를 관리하는 소프트웨어도 개발한다. 스캐너의 생김새는 ‘스마트워치’와 비슷한데, 손목 대신 손등에 차고 주문처리, 발송, 배송 등 상품을 스캔한다. 물류 창고부터 배송 기사까지 전 물류 과정에 사용할 수 있으며, QR코드와 바코드 등 다양한 방식의 코드를 스캔할 수 있고, 스캔 후 처리되는 정보들이 작업자가 사용하는 기기에 저장된다. 저장되는 데이터는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기기에 적합하게 개발된 님스타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
님스타 스캐너는 약 45g의 무게이고, 기존 스캐너에 비해 빠른 속도가 특징으로 1초당 약 4개를 스캔할 수 있다. 최대 4m 떨어진 곳의 물건도 스캔을 할 수 있는 고성능이지만, 기존 스캐너 대비 오류율은 35%나 줄였다.
님스타는 개발자 출신의 안드레아스(Andreas Funkenhauser)와 플로리안 룰란트(Florian Ruhland)가 2019년 뮌헨에서 설립했다. 물류센터 직원들이 손에 태블릿 PC나 레이저 스캐너를 들고 불편하게 일하는 환경을 관찰하고는 웨어러블 스캐너 아이디어를 바로 실현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결합된 솔루션을 통해 인트라 물류 프로세스에 혁신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점이 스타트업 어워즈 선정의 이유가 되었다.
#유휴공간 거래 플랫폼, 브라운필드24 (Brownfield24)
귀터슬로 출신의 또 다른 물류 스타트업 브라운필드24가 독일 물류 스타트업 어워즈 3위를 차지했다. 물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창고, 물류센터 등 물리적 공간이다. 브라운필드24는 독일의 공장, 창고, 물류센터 부지를 온라인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폐창고, 폐교, 폐물류센터 등 유휴 공간을 중점적으로 거래한다. 공장 건설 후 오염된 부지를 재사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간 컨설팅도 해준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은 대형 부지를 새롭게 개발하기보다 유휴지의 개보수를 통한 재사용에 정책의 초점을 맞췄다. 유럽연합은 2050년까지 ‘토지 소비 순제로’를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독일에서는 오염된 산업부지(Brownfield)를 재활용할 수 있도록 이해관계자들이 모여 만든 독일 브라운필드협회(DEBV) 등의 활동도 활발한 상황이다.
이와 같은 정책적 지지에 브라운필드24도 물류 부동산 시장의 어려움을 해결할 혁신적인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지난 5월 디지털 이노베이션 아워(Digital Innovation Hour)에서도 주목받는 스타트업으로 선정됐다. 유휴 공간에 대한 관심은 독일뿐만 아니라 인접 유럽 국가에서도 굉장히 뜨거운 주제다. 벨기에에서는 ovam.be라는 플랫폼이 큰 성장을 거두었고, 영국에서는 브라운필드 연구 및 혁신 센터(BRIC)가 있을 정도로 유휴 공간 연구와 산업 분야가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지역 활성화와 디지털화 추세가 동시에 반영된 결과다.
물류 서밋에서는 전통 물류 산업에서 본 비즈니스 모델 이외에도 기존 물류를 보완해주는 다양한 스타트업의 솔루션이 선보였다. 예를 들어 저먼아우토랩스(German Autolabs)는 택배 기사 등 물류 현장에서 직접 배송하는 노동자들을 도와주는 물류 전문 인공지능 음성 비서 서비스를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알렉사나 시리보다도 훨씬 더 고도화된 질문을 분석하고, 적합한 해결책을 제시할 뿐만 아니라 물류 배송 맞춤형 음성 지원으로 물류에 특화된 것이 특징이다.
그날 배송지에 대한 자동 경로 추천, 일정 작성 및 내비게이션 안내, 배송 시 장애 보고 등 배송 기사가 수동으로 입력하거나 알아야 할 정보를 모두 음성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운전하면서도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기술을 통해 저먼아우토랩스는 유럽 최대의 물류 회사인 DHL에 소프트웨어를 제공했고, 폭스바겐 크래프터(VW Crafter)에 차세대 음성 지원 솔루션으로 탑재가 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택배, 하루 배송, 10분 배송이 생활이 된 요즈음, 물류는 전문가의 영역이지만 소비자의 일상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쇼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물류 산업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시시각각 혁신이 등장하는 이때, 산업과 일상이 맞닿은 영역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다양한 물류 스타트업을 보면서 우리 일상에서 벌어질 크고 작은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필자 이은서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향수병에 못 이겨 다시 베를린에 와 살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독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독일 기업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이은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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