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경영의 선두를 자처하던 롯데케미칼이 환경·사회 부문에서 엇박자를 보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수소 펀드에 14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탄소중립 성장을 앞세우면서도 초대형 석유화학단지를 조성하는 해외 사업에 1조 4000억 원을 출자한다. 올해 6월 대기오염물질 불법 배출 사실이 드러나 관할 지자체에서 조업 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식사예절, 근무 외 시간 중 업무 협력 등 구시대적인 평가 항목을 포함한 인사 지표가 논란이 됐다.
환경·사회·지배구조 가치를 기업 경영 활동에 깊이 고려해 지속가능발전을 이룬다는 ESG는 재계 전반의 생존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롯데케미칼을 비롯한 롯데그룹 화학BU(Business Unit)도 이 흐름에 맞게 2021년을 ESG 경영의 원년으로 삼는다는 계획이었지만, 최근 보여준 행보로 ESG 리스크가 커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신사업 비중 커진 경쟁사, 롯데케미칼은 기존 석유화학 사업에 무게
10월 21일 롯데케미칼은 수소사업과 석유화학 공장단지 증설에 각각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 롯데케미칼은 수소 사업을 선점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글로벌 수소 투자 펀드에 약 1억 유로(약 1400억 원)를 투자한다. 펀드의 이름은 ‘클린 H2 인프라 펀드(Clean H2 Infrastructure Fund)’. 수소 경제 글로벌 기업 협의체 ‘수소 위원회’의 공동 의장사 에어 리퀴드와 회원사 토탈이 공동으로 주도해 만든 2조 원 규모의 펀드다. 전 세계 수소 저장, 유통 인프라, 수소 차량 활용 분야와 신재생 에너지를 연계한 수소 생산 등의 프로젝트에 전략적으로 투입될 예정이다.
롯데케미칼은 아시아 화학사 중 유일하게 설립 초기부터 핵심 투자자로 참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글로벌 수소 기술 동향 파악과 함께 관련 산업 신규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국내 수소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나간다는 계획이다. LG화학은 배터리·첨단소재, 한화솔루션은 태양광 등 경쟁사들이 신사업 발굴을 통해 사업 다변화에 나선 가운데 롯데케미칼은 수소를 기반으로 친환경 전환을 꾀하는 모습이다.
수소 펀드 투자는 지난 7월 발표한 친환경 수소 로드맵에 따른 것이다. 당시 롯데케미칼은 2030년까지 수소 사업에 4조 4000억 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린수소 밸류체인을 완성하고 블루수소와 그린수소를 각각 16만 톤, 44만 톤 생산하는 것이 목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번 투자를 단행하며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과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그룹 계열사들의 수소 역량 강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환경과 사회에 기반한 ESG경영을 토대로 국내 수소 산업 발전을 선도하는 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이사회에서는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조성 사업인 ‘라인 프로젝트(LINE Project)’ 추진도 최종 확정됐다. 연산 에틸렌 100만 톤을 생산하는 나프타 분해시설을 신설하고 기존 폴리에틸렌(PE) 공장과의 수직계열화를 추진하는 것이 프로젝트의 골자다. 사업 주체인 롯데케미칼 인도네시아 법인이 총 1조 4331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고 롯데케미칼과 자회사인 롯데케미칼 타이탄이 각각 7022억 원, 7309억 원을 출자한다.
에틸렌은 ‘석유화학의 쌀’이라고 불린다. 합성수지, 합성원료, 합성고무 등 다양한 물질을 만드는 데 기초가 되는 석유화학산업의 핵심원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료인 나프타의 열분해 과정과 메탄 등 부생가스를 연소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가를 발생한다. 이번 프로젝트가 ‘그린 전환’ 구상과 모순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석유화학 사업은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사업이다.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는 규모에 투자하기 위해 증자한 것이고, 수소 펀드는 미래를 내다보는 차원의 투자”라고 말했다. 수소 사업은 특성상 투자 기간이 길고 단기간 성과를 내기 어렵다. 안정적인 사업 운영을 위해 두 가지 사업을 전략적으로 꾸려나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환경부문 B+⟶B, ‘행동평가 지표’도 논란
지난 7월 9일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롯데케미칼의 환경 부문 등급을 전년도 ‘B+’에서 ‘B’로 하향 조정했다. 대기오염물질 불법 배출 등 환경 관련 사건·사고가 반복된 점이 이유로 꼽힌다. 전라남도는 지난 6월 롯데케미칼 여수공장이 대기오염물질을 불법 배출한 사실을 적발해 조업 정지 10일 처분을 내렸다. 오염물질을 방지시설로 거르지 않고 공기를 희석해 내보내는 이른바 ‘가지 배출관’을 불법 설치한 것. 또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른 자가측정 의무를 기피한 사안에 대해서는 경고 처분을 받았다. 롯데케미칼은 환경부문 등급 강등에 따라 통합 등급도 ‘A’에서 ‘B+’로 한 단계 내려앉았다.
최근에는 사내 문화와 관련해서도 잡음이 일었다. 이번 달 초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롯데 신입사원 역량 평가표’를 고발하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10개 영역, 총 40개 행동지표 중 논란이 된 항목은 △복장/외모 △음주/회식 △식사예절 △비상호출 △사택/개인생활 등 4개 영역, 18개 지표다. 구체적으로는 △먼저 테이블 세팅한다(숟가락/젓가락/주류/물 등 배치여부) △선임자 식사 전에 먼저 취식을 하지 않는다 △주말/퇴근 후 비상연락이 올 경우 바로 회신한다 △특별한 사유 없는 비상호출 근무를 거부하지 않는다 △잦은 외출과 사택 주변 배회를 하지 않는다 등이 평가 항목으로 적혀 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그 평가지표를 통해 실제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 참고 수준으로 남아 있던 자료”라며 “수정·보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화학업계뿐만 아니라 재계 전반이 ESG의 가치를 강조하는 상황에서 구시대적 인사평가 항목, 오염물질 불법 배출 등의 논란은 ESG 경영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제는 기업이 이윤을 많이 내는 것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사회라는 큰 조직 안에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과 상생,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건전한 지배구조가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며 “ESG 경영 이전에 운영하던 사업의 방향을 한 번에 바꾸거나 줄일 수는 없지만 기존 사업 흐름에서 ESG와 맞지 않는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수정·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수소 사업 외에도 친환경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CCUS(탄소 배출단계에서 포집·저장·활용하는 친환경 기술), C-rPET(폐PET를 화학적으로 재활용하는 기술), 분리막 기술 등을 적용해 탄소 발생량을 상쇄하는 전략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안정적인 사업 영위를 위해 기존 사업 분야에 투자하면서도 수소 등 친환경 사업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핫클릭]
·
[글로벌 핫클릭] 모더나·얀센 부스터샷, CDC 최종 승인만 남았다
·
'20% 상한' 사라지고 호실적, 4대 금융지주 연말 고배당 기대감 커지네
·
농림부 길고양이 중성화 2차 개정안, 이번엔 혹서기·혹한기 논란
·
정기선호 닻 올린 현대중공업, 대우조선과 결합 EU 장벽에 '시계제로'
·
'한정판 컬래버'로 되살아난 유니클로…휠라·코오롱도 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