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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위한 관행" '운임 담합' 제동 건 공정위에 해운사 집단반발 까닭

해운사 "해운법 적용되는 합법행위" 전문가 "공정거래법과 해운법 관계 정립 필요"

2021.10.01(Fri) 13:40:46

[비즈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 담합’을 이유로 국내외 해운사에 8000억 원의 과징금을 예고한 가운데, 해운협회가 국정감사장에 오른다. 업계 관행으로 여겨온 운임 공동행위를 두고 해운사들을 총괄·관리하는 해운협회가 증인으로 서는 것. 이에 따라 해운선사 간 운임 공동행위를 담합으로 규정한 공정위 제재의 적정성이 올해 국감의 주요 이슈로 다뤄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임 담합’을 이유로 해운사에 대한 제재를 예고하면서 해운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월 25일 부산신항 4부두에 정박한 HMM 프라미스 호.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공정위는 국내 12개 선사와 해외 11개 선사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동남아 노선 운임과 관련해 부당한 공동행위를 했다며 해운사 23곳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보냈다.

 

심사보고서에 따르면 과징금은 15년간 발생한 매출액의 8.5~10% 규모로 책정됐다. 조사 대상 23곳 중 △HMM △SM △장금 △동영 △범주 △동진 △남성 △팬오션 △천경 △고려 △흥아라인 △흥아해운 등 국내선사 12곳이 물어야 할 과징금은 최대 5600억 원에 달한다. 각 업체가 사전 통보받은 과징금은 최소 31억 원에서 최대 23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외국 해운사 11곳의 경우 사전 통보액 규모는 최소 4억 원, 최대 278억 원 수준이다. 다만 이는 확정된 금액이 아니며 공정위와 해운사가 참석하는 전체회의에서 최종 제재 수준이 결정된다. 

 

공정위의 심사보고서를 받은 해운업계는 모처럼 맞이한 호황기에 문재인 정부의 ‘해운재건’ 기조를 무색케 하는 과도한 조치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국회는 해운협회 임원을 불러 공정위 조사에 대한 해운업계의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9월 28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림수위)는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부회장과 김재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안을 의결했다.

 

#“공정거래법 아닌 해운법 적용해야” vs “해운법 공동행위 요건도 미준수”

 

해운사의 운임 공동행위를 ‘담합(부당한 공동행위)’으로 판단한 공정위와 ‘해운법상 합법 행위’로 보는 해운업계의 신경전은 치열하다. 쟁점은 ‘운임 공동행위를 어떤 법으로 해석하는가’다.

 

공정위는 △해운법 절차 충족 미흡 △관할 부처 신고 미비 △화주단체와의 협의 부족 △자유로운 입·탈퇴 보장 미흡을 지적했다. 특히 법이 규정한 공동행위의 요건과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15년간 이뤄진 운임 공동행위 대다수를 관할 부처인 해양수산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 이 기간 동안 해운사들이 139차례의 운임 공동행위를 했는데, 이 중 122건의 공동행위는 신고하지 않고 19건만 해수부에 신고했다는 판단이다.

 

해운업계는 해수부에 운임 협약 내용을 신고했고 화주와 사전 협의를 진행하는 등 적법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공정거래법 적용을 예외해야 한다고 반박한다. 관련 협회들은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부산항발전협의회,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등 해운 관련 단체들은 9월 8일 공정위 규탄 1인 릴레이 시위를 진행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6월 8일 한국해운협회는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해운기업 공동행위 조사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운사의 공동행위는 해운법에서 허용되는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당시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은 “공정거래법은 타 법에 의한 정당한 행위의 경우 법 적용을 제외하고 있다”며 “해상·선박 관련 법 체계는 특수 환경을 반영해 구축됐다. 해운산업 내 공동행위는 해운법에 따라 규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가격 담합은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로 여겨지지만, 해운업 특성상 출혈경쟁을 막기 위한 관행이라는 설명이다.

 

해운법 제29조는 외항화물운송사업자는 다른 외항화물운송사업자와 운임·선박배치, 화물의 적재, 그 밖의 운송조건에 관한 계약이나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공정거래법 제58조는 부당한 공동행위를 금지하지만 다른 법에 의한 정당한 행위는 법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국해운협회를 비롯한 부산항발전협의회, 인천항발전협의회,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한국해기사협회 등 해운관련단체들이 9월 8일 서울과 부산, 인천 등 3개 주요 도시에서 공정위 규탄 1인 시위를 가졌다. 사진=한국해운협회

 

공정위는 해운사들이 해운법 29조의 하위 조항을 지키지 않아 예외 적용이 불가하며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재반박했다. 공정위는 “해운법이 모든 공동행위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재 대상 해운사들은 해운법상 공동행위로 인정받기 위한 요건을 따르지 않았다”며 “일부 공동행위를 인정하고 있는 보험이나 항공 분야에서도 항공 운임 담합, 긴급 출동 서비스 유료화 담합 등 요건을 어긴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제재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 공동행위를 공정거래법으로 제재할 수 없도록 하는 해운법 개정안의 입법 여부도 주목된다. 지난 7월 위성곤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은 ‘소급 조항’이 새롭게 추가된 안으로 9월 28일 국회 농림수위 소위를 통과했다. 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는다면 공정위의 제재 절차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해운사의 담합 행위만을 예외로 하는 법이라 다른 업계와의 형평성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앞으로 농해수위 전체회의, 법사위, 본회의 등 입법 절차가 남아 있어 최종 결론 또한 불투명하다.

 

해운법 전문가인 김인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사안은 관할 부처인 해수부와 공정위의 시각 차이에서 시작된 갈등이다. 해수부는 부속협의 신고를 운임 공동행위의 필수 요건으로 보지 않는 반면, 공정위는 법적 담합 요건을 기반으로 해운사 간 공동행위를 해석한다”며 “근본적으로는 해운법과 공정거래법의 관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무적으로 관행이 지속돼 왔음에도 해수부와 공정위 사이에 조율이 부족했고 계도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던 점이 아쉽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두 법안의 관계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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