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제조업 메카로 꼽히는 인천 남동공단의 분위기가 1년 새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만 해도 공단을 찾는 신규 사업체의 상당수가 마스크 제조업이었다. 우후죽순 생겼던 마스크 제조업체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대부분 짐을 쌌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에는 밀키트(Meal Kit) 업체가 사업장을 확대하고 있다.
#과도한 경쟁·브로커 사기 등에 마스크 공장 줄도산
코로나19 확산으로 마스크 공급이 부족해 ‘마스크 대란’이 일어났던 지난해 초. 제조업 메카로 꼽히는 인천 남동공단에는 마스크 제조업체가 줄지어 들어왔다. 공단 내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 중인 A 씨는 “하루에 마스크 공장 관련 전화 문의가 5~7통씩 왔다. 임대나 매매를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었다”며 “공장 문의 90% 이상이 마스크 업체 관계자였다”고 말했다.
지난해 마스크 수급이 어려워지자 가격이 급등하는 상황이 이어졌고, 이를 노린 업자들이 마스크 제조에 뛰어들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37개였던 마스크 제조업체는 6월에는 238개로, 12월에는 928개로 늘었다.
하지만 신규 업체가 늘면서 공급이 안정됐고, 마스크 생산량도 줄었다. 지난해 8월 마스크 총생산량은 2억 7368만 개로 코로나19 확산 이후 가장 많은 숫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에는 1억 7149만 개, 올해 9월에는 7396만 개로 감소 추세다.
가격도 대란 당시와 비교해 4분의 1가량 줄었다. 지난해 3월 개당 4525원까지 올랐던 KF94 가격(온라인 기준)은 올해 9월 543원으로 떨어졌다. 마스크 대란 당시 최고점을 찍었던 가격은 꾸준히 내림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스크 제조업체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공단 내 부동산중개소 관계자 B 씨는 “작년에 하루가 멀다 하고 생기던 마스크 공장이 올해 초부터 문을 닫기 시작했다”며 “작년에 공단에 들어왔던 마스크 제조업체 10곳 중 9곳은 공단을 떠났다”고 전했다.
B 씨는 “마스크 생산량이 늘면서 원자재인 부직포 공급이 부족해졌다. 자연히 원자재 가격이 올랐는데, 마스크 단가는 시장 경쟁으로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었다”며 “팔수록 손해 보는 상황이었다. 올 초에 상당수가 공장을 정리했고, 버티던 업체들도 여름에 임대료를 못 내 쫓겨나는 상황을 겪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부동산중개사 C 씨는 “문을 닫은 마스크 공장이 많았던 이유는 상당수가 사기 피해자였기 때문”이라며 “마스크 대란 당시 브로커들이 중국산 마스크 생산 기계를 팔기 위해 ‘공장 설비를 갖추면 억 장 단위 계약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을 꼬드겼다. 꼬임에 넘어간 사람들이 공장을 갖추고 기계를 샀지만 주문은 받지 못해 줄폐업했다”고 말했다.
마스크 공장은 일반 공장보다 초기 투자비용이 크다. KF94 마스크 생산을 위해선 클린룸 시설 등을 갖춰야 해 설비 투자에 많은 돈이 들어간다. 부동산중개사 B 씨는 “마스크 제조업체는 초기 투자비용을 많이 쏟아부었는데 매출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운영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건 올리면 3분 만에 나간다’ 두 달 전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밀키트 제조업체
‘마스크’ 사업 열기는 올해 ‘밀키트’로 옮겨갔다. 마스크 대란 당시 빗발쳤던 마스크 공장 문의만큼이나 최근에는 식품제조공장에 대한 문의가 많이 늘어난 상황이다.
공단 인근 부동산중개소 관계자는 “2개월 전부터 밀키트 공장 문의가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다. 요즘은 전화 문의의 60~70%가 밀키트를 위한 식품제조공장을 찾는 것”이라며 “보통 330~660㎡(100~200평) 규모의 공장을 찾고, 1652㎡(500평) 이상의 대규모 공장을 문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외식이 크게 줄고, 캠핑족이 늘면서 밀키트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100억 원 규모였던 밀키트 시장은 2020년 2000억 원대로 성장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2019년 9월 10개였던 밀키트 브랜드는 2020년 10월 61개로 늘었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업체도 밀키트 사업에 뛰어들자, 공장 선점을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특히 식품 사업은 물류비용 등을 고려해 교통이 좋은 곳을 선호하다 보니 인천 남동공단 쪽으로 수요가 몰리는 상황이다.
안산 반월·시화공단에서 부동산중개소를 운영하는 D 씨는 “식품 제조 공장은 인천 남동공단 선호도가 높다. 한창 화성 쪽의 인기가 높았는데 접근성이 떨어지고 물류비용도 많이 들어 상당수가 인천 등으로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인천 남동공단을 찾는 식품 관련 업체 중에는 밀키트 사업에 새롭게 도전하는 신규 사업자도 상당하다. 부동산중개소 관계자 A 씨는 “얘기를 나눠보면 밀키트 사업을 새로 시작하는 분들이 상당수다.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라 초기 투자비용을 많이 들이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다”며 “초기 투자비용이 들지 않는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인증 공장을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HACCP 인증 공장의 매물이 몇 개 없어 줄을 서는 상황”이라며 “온라인에 매물을 올리면 3분 내로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밀키트 소비가 늘자 기존 사업장을 확장하는 이들도 있다. 한 밀키트 업체는 “처음에는 99~132㎡(30~40평)에서 시작했다가 264㎡(80평)으로 규모를 확장했다”며 “최근 주문량이 많이 늘어 660㎡(200평)대로 이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올해 밀키트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전문몰·전문 매대 등이 확대돼 구매가 쉬워졌으며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상품도 다양해졌다”며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간편식) 같은 경우는 가공이 많이 된 상품인데 밀키트는 신선한 원물 그대로 들어 있어 인기가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내년에도 밀키트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외식 문화가 축소되고 집밥 문화가 확대됐고, 특히 HMR에 집중됐던 수요가 밀키트로 옮겨가는 흐름이다”라며 “장기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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