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초기 중소기업을 위한 증권시장 ‘코넥스(KONEX)’에 상장한 기업이 ‘코스닥 전학’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9월에도 이어졌다. 올해 이전 상장이 완료된 기업 수로만 보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코넥스 시장 대표 기업 ‘툴젠’ 등 주목할 만한 기업이 코스닥 이전 상장을 선언했다. 굵직한 코넥스 상장기업들은 탈출하는 반면 신규로 시장에 들어오는 기업은 극히 드물어 ‘코넥스의 위기’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닥으로 탈출하는 대장주, 신규 상장은 해마다 감소
지난 14일 바이오 기업 툴젠은 코스닥 이전 상장 예비심사 청구서를 한국거래소에 제출했다. 2014년 코넥스에 상장한 툴젠은 유전자 가위 기술을 기반으로 치료제를 개발 중이며, 27일 종가 기준 코넥스 시가총액 1위(약 9986억 원)다. 툴젠의 코스닥 시장 도전은 이번이 네 번째다. 앞서 2015년과 2016년에는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하지 못했고, 2018년에는 서울대학교와 유전자 가위 특허권 문제가 발생해 상장예비심사를 자진 철회했다.
드라마 제작사 ‘위지윅스튜디오’의 자회사 ‘래몽래인’도 17일 예비심사 청구서를 내며 코스닥 이전 상장에 나섰다. 툴젠과 마찬가지로 2014년에 코넥스에 입성한 래몽래인은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산후조리원’의 제작사로 유명하다. 래몽래인의 시가총액은 1129억 원으로 133개의 코넥스 상장 종목 중 10위권이다. 래몽래인은 앞서 2월에 코스닥 이전 상장을 추진하다가 기업가치를 올려 추후 상장을 재추진하겠다며 자진 철회한 바 있다.
2015년 코넥스에 상장한 대형 법인보험대리점(GA) ‘인카금융서비스’ 역시 13일 코스닥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2018년과 지난해 인카금융서비스는 실적 하락, 증시 조정 국면 등 이슈에 맞물려 코스닥 예비심사 청구서를 제출했다가 자진 철회했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3010억 원)과 영업이익(146억 원)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 500% 성장하며 코스닥 입성을 다시 노린다.
코넥스의 8월 마켓브리프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올해는 7개의 기업이 코스닥 이전 상장을 완료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각각 12개(스팩합병 포함)였다. 올해 코스닥 이전 상장 기업의 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대장주 툴젠을 비롯해 크고 작은 기업들이 이전 상장을 노리고 있기에 코넥스 시장의 영향력이 더욱 약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코넥스 신규 상장이 승인된 기업은 2개에 불과하다. 코넥스 신규 상장기업은 2017년 29개, 2018년 21개, 2019년 19개, 2020년 12개로 꾸준히 줄었다. 코스닥 진입 문턱이 완화되면서 코넥스를 거치지 않고 코스닥으로 바로 향하는 기업들이 늘어났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당국은 적자기업이라도 성장성이 있으면 코스닥 상장을 허용하는 ‘테슬라 요건 상장’, 수익성이 부족해도 기술력이 우수한 기업들에 상장 진입을 완화해주는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두고 있다.
#‘꿈은 컸지만…’ 공모가보다 주가 대폭 하락 사례도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의 이전 상장 성공 사례가 나온다면 코넥스 시장 신규 진입이 늘 수도 있다. 중소·벤처 기업들이 코스닥 시장으로 가기 위한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한다는 당초 코넥스의 장점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 흐름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 규모가 커져서 코스닥으로 향하는 기업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코스닥 문턱이 완화돼 이전 상장을 하려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결국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가가 중·장기적으로 오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업황의 영향도 있지만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기업 중 눈에 띌 만하게 주가가 오른 기업은 많지 않다. 오히려 하락한 기업이 적잖다. 가령 올해 코스닥에 입성한 로봇 제조 전문기업 ‘에브리봇’은 코스닥 공모가 3만 6700원에서 9월 27일 종가 2만 4800원으로 1만 1900원(약 -32%) 떨어졌다.
스팩합병으로 상장한 의료용 바이오 신소재 전문 기업 ‘원바이오젠’은 상장 전날인 2월 8일 3400원에서 9월 27일 2755원으로 645원(-19%) 하락했다. 다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 기업 ‘피엔에이치테크’와 인공지능 영상분석 기업 ‘씨이랩’은 공모가 대비 각각 110%, 73% 오른 3만 7800원과 6만 800원에 27일 거래됐다.
지난해 이전 상장한 기업 가운데는 공모가 대비 27일 종가 기준 2차전지 소재 기업 ‘이엔드디’가 1만 4400원에서 3만 9500원으로 174%, 수소연료전지 기업 ‘비나텍’이 3만 3000원에서 5만 3300원으로 61% 오른 것을 제외하면 대다수 기업이 소폭 오르거나 하락했다. 대표적으로 헤어케어 업체 ‘TS트릴리온’은 스팩 상장 전날인 지난해 12월 29일 2920원에서 9월 27일 1015원으로 65% 떨어졌다. 체외진단 의료기기 전문기업 ‘미코바이오메드’는 1만 5000원의 공모가에서 27일 1만 750원으로 28% 주가가 내렸다.
아예 상장 폐지된 기업도 있다. 2016년 12월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코썬바이오(옛 현성바이탈)’는 불성실 공시 등을 이유로 지난해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코넥스에서 코스닥으로 이전 상장한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이전 상장에 따른 효과 연구’ 보고서는 “코넥스시장에서 코스닥시장으로 한 종목은 상장일 이후 오히려 주가가 하락 반전하는 양태를 보였지만 거래량은 유의미하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결국 코넥스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시장 제도 자체를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지용 교수는 “코넥스에 상장하려는 기업은 수수료를 내야 하고 매년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 투자자들도 최소 3000만 원의 예탁금이 있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차라리 수수료 부담이 없는 장외주식시장으로 향하거나 문턱이 낮아진 코스닥 직상장을 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그러나 실적이 좋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바로 코스닥으로 향하면 결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본다. 특히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변동성이 심하다. 미국 나스닥만큼 코스닥이 크지 못하는 이유도 종목들의 질 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라며 “거래소를 구분화해 계층화하는 건 좋은 방법이지만, 벤처들이 코넥스에서 자금 조달을 하고 인지도를 높여 정말로 기업 가치가 커졌을 때 코스닥으로 가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지게 해야 한다. 우선 수수료나 예탁금 등을 손봐 코넥스 진입 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거래소도 코넥스 시장 활성화를 위해 노력은 기울이고 있다. 코넥스에 신규 상장한 바이오, 미래차, 비메모리 반도체 및 벤처기업은 외부감사인 수수료, 지정자문인 상장지원수수료 및 상장유지지원수수료 등 코넥스 상장비용의 50%를 정부 예산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코넥스에서 1년 이상 거래한 기업을 대상으로 코스닥 심사 기간을 45일에서 30일로 단축하는 신속이전 상장(패스트트랙) 제도도 운용 중이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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