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최고의 댄스 크루를 찾기 위한 서바이벌 프로그램, m.net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스우파)의 인기가 장안의 화제다. 요즘 SNS에서는 ‘스트릿 우먼 파이터’ 관련 게시물과 각종 패러디 영상이 주목받고 있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댄서들의 과거 공연 영상까지 ‘역주행’ 인기몰이 중일 정도로 그 인기가 뜨겁다.
‘스우파’의 인기가 흥미로운 이유 중 하나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참가자들이 그간 대중문화계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대체 어떤 이들이 출연하느냐고? 다름 아닌 유명 K-POP 스타들의 안무를 만들고 K-POP 가수들의 뒤에서 춤을 추는 ‘백업댄서’들이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다.
여기에서 더 흥미진진한 건 이들 출연진이 보여주는 캐릭터 면면의 기운이다. 세상 기 센 언니들의 격돌이라 생각했던 여성 랩퍼들의 서바이벌 오디션이었던 ‘언프리티 랩스타’의 매운맛은 저리 가라할 센 캐릭터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어서다. 맛으로 따지자면 단순 매운맛이 아닌, ‘마라급 매운맛’의 센 캐릭터들의 향연. 특히나 1 대 1 배틀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약체 대상’으로 상대를 지목해 춤으로 배틀을 하는 장면들에선 서로를 잡아먹을 것 같은 몸의 기운과 춤의 현란함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 ‘스우파’가 더 주목받고 빛날 수 있었던 건, 이런 서슬 퍼렇고 긴장감 넘치는 신경전으로 프로그램의 진행이 그치지 않고,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스트리트 댄스의 다채로움과 자신이 추는 춤에 진심을 다한 댄서들의 멋짐에 방점이 있어서다. 더 재미난 건,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 견제하며, 잡아먹을 것 같은 이들 댄서들이 경연이 끝나면, 서로를 응원하는 관계로 바뀐다는 것. 보여주는 재미만 더하는 단순한 기싸움이 아닌, 진정한 실력전을 보는 재미가 ‘스우파’의 진정한 재미이자 케미다.
지금까지 프로그램 방영분 중에 ‘스우파’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배틀은 ‘홀리뱅’의 리더 허니제이와 ‘코카N버터’의 리더 리헤이의 격돌이었다. 이들은 과거 같은 크루로 7년간 함께 한 가족 같은 팀이었지만 성격차이로 돌연 결별했고, 스우파를 통해 5년 만에 재회하게 된 사이다. 서로 싸늘하게 등 돌린 관계가 된 이들의 사이는 댄서씬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스토리였다고 한다. 그런 최고조의 긴장감 때문일까. ‘스우파’에서 1대 1 배틀로 마주하게 된 이들 두 사람의 댄스 배틀은 방영 당시, 시청률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내기도 했다.
모두의 기대와 긴장감 속에서, 이들의 댄스 배틀은 모두의 환호를 불러 모을 만큼 뜨거웠다. 결국 프로그램 심사위원 3인의 재대결 요청까지 이어졌을 정도니 말 다했다. 특히 더 놀라웠던 건, 이들 두 사람이 재대결 무대에서 마치 배틀이 아닌 한 팀으로 팀을 맞춘 듯, 똑같은 안무를 선보였다는 것. 이들의 배틀 댄스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댄서 중 한 명은 “어떻게 똑같은 박자에 똑같은 안무를 하나, 말도 안 된다. 이런 무대는 처음 본다”며 “같이 한 세월은 못속인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악연의 배틀 상대라 칭했던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배틀 댄스가 끝이 났고, 심사위원들의 결론은 후배이자 제자였던 리헤이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가슴 뭉클하게도 선배인 허니제이가 자기를 이긴 리헤이에게 먼저 다가가 포옹을 청한다. 더불어 그렇게나 싸늘하게 댄스 배틀을 함께 했던 사람인가 싶게, 리헤이 또한 그런 허니제이의 포옹을 받아들이고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댄스 배틀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허니제이는 “포옹을 했는데 그 순간에 울컥하더라.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는데 늘 그리운 마음이 많이 있었던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뒤이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덤덤히 말했다.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고 춤을 췄지, 마주 보고 춘 적은 없다. 이렇게 마주 보고 춤을 춘 게 처음이다. 그동안 리혜이가 자기 색깔을 많이 찾은 것 같다. 멋있어 졌다.” 애증이 가득한 대상이었을 리혜이에게 스승답게 선배다운 말을 남긴 허니제이. 실력으로 경쟁하고, 댄스를 통해 교감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멋진 배틀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은, 프로그램 속 명장면 중 하나였다.
‘스우파’를 통해 솔직할 정도로 속내를 밝힌 허니제이의 인터뷰 내용을 들으면서 그녀가 한 말 중, “항상 같은 곳을 바라보고 춤을 췄지, 마주 보고 춘 적은 없다” 는 말이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무대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긴 시간 함께 땀을 흘렸을 정도로 끈끈했던 사이였지만, 이들에게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별까지 하게 된 걸까. 그리고 더 나아가 항상 같은 목표로 같은 꿈을 꾸고 한 방향을 바라봤던 이들이 오늘처럼 서로 마주 보고, 서로를 제대로 살펴보는 기회를 얻어봤다면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나아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간에 큰 갈등이 생기기 이전, 이들이 같은 방향이 아닌, 서로 마주 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은 다른 결론이 생기지 않았을까.
순간 우리의 일반적인 인간관계도 이와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었다. 우린 같은 팀이니까, 혹은 가족이니까,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던 사이가 틀어지는 건, 그렇게 같은 방향만 무심하게 바라보기에, 마주 보는 배려의 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같은 방향에 서서 함께 바라보기까지, 같은 호흡과 방향을 쳐다보기 이전에 마주 봤던 시간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어찌 보면 그 마주 보며 맞춰나갔던 시간이 있었기에 같은 방향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같은 방향의 내 편이라 생각되는 이가 요즘 버겁거나 함께 하기 힘들다면, 멈추고 시간을 내어 마주 보고, 상대의 상태를 천천히 바라보길 권한다. ‘스우파’의 멋진 댄서들처럼 마주 보고 춤추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왔다는 신호가 온 거다. 그렇게 멈춰서 상대를 천천히 바라보다 보면, 꼬인 혹은 답답한 관계의 해답이 힌트처럼 뾰족 얼굴을 내밀지 않을까. 허니제이와 리헤이의 ‘스우파’ 댄스배틀의 소회처럼 말이다.
필자 김수연은?
영화전문지, 패션지, 라이프스타일지 등, 다양한 매거진에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글밥 먹고 살았다. 지금은 친환경 코스메틱&세제 브랜드 ‘베베스킨’ ‘뷰가닉’ ‘바즐’의 홍보 마케팅을 하며 생전 생각도 못했던 ‘에코 클린 라이프’ 마케팅을 하며 산다.
김수연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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