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내가 지금껏 최고로 꼽는 영화 장면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콘택트(Contact)’의 오프닝 시퀀스다. SF 장르는 물론 모든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영화 오프닝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지구를 떠나 먼 우주로 날아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배경 음악으로 라디오로 듣는 음악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지구가 멀어지면서 배경에 나오는 음악은 점점 더 옛날 노래로 바뀐다. 지구는 사방으로 다양한 전파를 내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신호들은 빛의 속도로 퍼져간다. 더 먼 곳에서 지구의 신호를 듣는다면 그만큼 과거의 신호를 뒤늦게 듣게 된다. (엄밀하게 보면 이 오프닝 장면은 과학적으로 잘못되었다. 1광년도 넘지 못하는 태양계 행성들까지 날아간 순간에 이미 수년 전의 노래가 들리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청각적으로 풍성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해주자.)
인류가 안테나를 짓고 사방의 우주 공간으로 전파 신호를 흘려보내기 시작한 건 대략 125년 전부터다. 따라서 지구에서 가장 멀리까지 날아간 인류의 전파 신호는 빛의 속도로 125년 정도 걸려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 125광년 거리까지 날아갔다. 이렇게 지구를 중심으로 인류의 전파 신호가 가장 멀리까지 퍼질 수 있는 구의 영역을 라디오 버블(Radio Bubble)이라고 한다. 현재 라디오 버블은 지름 250광년 정도다. 이 범위에 들어오는 별들에서는 지구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치지직 거리는 우주의 잡음 속에서 희미하게 들리겠지만….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별들이 우리 지구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을까? 어쩌면 인류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는 별들의 수를 헤아리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되었다.
과연 지구는 얼마나 많은 외계행성들에게 발견될 수 있을까? 지구의 안타까운 존재감에 대해 알아보자.
#지구에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우주에서 지구를 찾는다면
현재 인류가 다른 별 곁의 외계행성을 찾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별 앞으로 행성이 가리고 지나갈 때 별빛이 살짝 어두워지는 트랜짓(Transit) 현상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 방법을 통해 앞선 케플러 우주 망원경은 8년 사이에 3000개가 넘는 외계행성을 찾아냈고 뒤이어 우주로 올라간 TESS 망원경도 똑같은 방식으로 더 많은 외계행성 후보들을 찾아냈다. 만약 다른 별에 살고 있는 외계인 천문학자들이 있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트랜짓을 활용해서 또 다른 외계행성들을 찾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별 곁을 맴도는 외계행성의 공전 궤도가 우리의 시야에서 봤을 때 충분히 누워 있을 때만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외계행성의 궤도가 너무 크게 기울어져 있다면 아무리 외계행성이 별 곁을 돌아도 우리의 시야에서는 그 외계행성이 별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현상을 볼 수 없다. 외계행성이 충분히 별 얼굴 앞을 가리고 지나갈 수 있는 아주 좁은 각도 범위에서만 이 트랜짓을 활용할 수 있다. (이런 엄청난 한계에도 트랜짓을 통해 4000개 가까운 외계행성이 발견되었다는 건 정말 엄청나다!)
지구를 찾는 외계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살고 있는 별에서 봤을 때 지구의 궤도가 태양 앞을 가리고 지나갈 수 있는 곳에서만 우리 지구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다. 이처럼 지구가 태양 앞을 가리고 지나가는 모습이 관측될 수 있는 제한된 영역을 지구 트랜짓 존(ETZ, Earth Transit Zone)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은하 속 별들은 한 자리에 가만히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함께 은하를 맴돌면서 각자 고유한 방향과 속도로 움직인다. 시간이 흐르면서 별들의 공간적 위치가 조금씩 바뀐다. 그래서 지금은 지구가 태양을 가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던 별이 시간이 흐른 뒤에는 지구에 의한 태양 트랜짓이 보이는 자리로 이동할 수 있다. 그 반대 역시 가능하다.
천문학자들은 가이아 위성을 통해서 우리 은하 속 별들이 각자 정확히 어떤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있다. 이 가이아 데이터를 활용해서 천문학자들은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부터 5000년 후에 이르는 만 년 범위 사이에서 잠시라도 지구에 의한 태양 트랜짓을 목격할 수 있는 별들의 수를 헤아렸다.
그 결과 5000년 전 과거에서 5000년 후 미래 사이에 트랜짓 기법으로 지구를 목격할 수 있는 별 2034개를 걸러냈다. 그리고 이 별들 중에서 반경 100광년 크기의 라디오 버블 안에 들어오는 별은 117개다. 이 중에서도 현재까지 그 주변에 외계행성의 존재가 발견된 곳은 단 네 곳뿐이다.
만약 이 네 곳의 별 주변에 단 한 곳에라도 외계 문명이 살고 있다면 그곳의 외계인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존재, 그리고 지구의 전파 신호까지 엿듣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을거나 나중에 알게 될지 모르는 이 외계행성들은 어떤 곳일까?
네 별 중 가장 가까운 곳 Ross128은 태양에서 열세 번째로 가까운 별이다. 이곳은 태양에서 11광년 거리에 있다. 이 별 곁에는 골디락스 존 안에 들어오는 외계행성이 하나 존재한다. 하지만 이 별에선 기원전 1036년부터 기원후 1121년까지 지난 2158년 동안 지구의 트랜짓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지구의 트랜짓이 보이지 않는 위치로 이동했다. 우리보다 최소 천 년 앞서서 과학이 발전한 외계 문명이 있었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천 년 전에 이 외계인들이 트랜짓 기법으로 우리 지구를 발견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에는 지구에서 그 어떤 전파 신호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태양에서 스물다섯 번째로 가장 가까운 별, 12.5광년 거리의 티가든(Teegarden) 별이 있다. 지금쯤 이 별에선 아이유의 ‘좋은 날’ 노랫소리가 담긴 전파가 스쳐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별 곁에서는 지구와 비슷한 암석 행성 두 개가 발견되었다. 아직 이 별에선 지구의 트랜짓이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29년 뒤부터 410년간 지구의 트랜짓을 목격할 수 있다. 아마 이곳의 암석 행성에 외계인 천문학자들이 있다면 아직은 지구의 존재를 모르겠지만 30년 정도 후부터는 지구를 발견하고 또 지구의 전파 신호까지 듣게 될지 모른다.
별 GJ9066은 태양에서 14.6 광년 거리에 있다. 지금쯤 이 별에선 이제 막 전파를 탄 원더걸스의 ‘텔미’ 노랫소리가 스쳐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이 별 곁에는 외계행성이 하나 존재한다. 이 별도 아직은 지구의 트랜짓을 볼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 846년이 지난 후부터 932년간 지구의 트랜짓을 목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구에서 40.7광년 거리에 떨어진 트라피스트-1 별이 있다. 지금쯤 이 별에선 산울림의 ‘청춘’이 지구의 가장 최신곡으로 들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 별 곁에선 외계행성이 무려 일곱 개나 발견되었다. 그 중에는 지구처럼 골디락스 존에 들어오는 곳도 4개 존재한다. 이 별도 아직은 지구의 트랜짓이 보이는 위치에 있지는 않다. 앞으로 1642년이 지난 뒤부터 2371년간 지구의 트랜짓을 볼 수 있다. 먼 미래 이런 별들에 사는 외계인 천문학자들에게 지구와 인류의 존재가 발견되기 위해선 우리가 앞으로 2000년은 망하지 않고 잘 살아남아야 할 것이다.
지구의 트랜짓을 관측할 수 있는 자리에 있으면서 지구의 라디오 버블 안에 들어오는 별 네 곳 중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을 만한 곳은 아쉽게도 하나도 없다. 이 네 곳은 이미 한참 전에 지구의 트랜짓을 봤거나 한참 후에 보게 될 위치에 놓여 있다.
이처럼 우리가 다른 외계인들에게 발견되고 또 충분히 많은 관심을 끌기 위해선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한다. 지구의 트랜짓이 보이는 위치의 별이라 하더라도 라디오 버블 바깥에 놓인 별에선 지구에서 아무런 전파 신호를 포착할 수 없다. 지구의 전파가 도달한 라디오 버블 안에 들어오는 별이더라도 지구의 트랜짓이 보이지 않는 방향에 놓인 별이면 애초에 지구란 행성의 존재를 알 수 없다. 지구의 트랜짓이 보이는 방향에 있는 동시에 라디오 버블 안에 들어와야만 지금 이 순간 우리 지구를 눈여겨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우주에선 남들에게 발견되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이다.
#실제 외계문명과의 조우는 SF와는 다르다
지금까지 인류의 전파 신호가 퍼져나간 지름 250광년 크기의 라디오 버블은 지름 10만 광년 크기의 우리 은하 전체에 비하면 턱없이 작다. 우리 은하 전체 지도 위에 라디오 버블을 그려보면 그저 작게 찍힌 작은 점처럼 보일 뿐이다. 이 작은 영역 안에서 지구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 모르는 별은 단 네 곳뿐이다. 만약 우리 은하 전역에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다른 외계 문명들이 살고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좁은 영역에만 자신의 흔적을 퍼뜨린 인류의 존재를 과연 그들은 알고 있을까? 우리는 아직 그 누구에게도 존재가 발견되지 못했을 확률이 높다. 아직 충분히 멀리까지 신호를 보내지 못했기에 의도치 않게 은하계 은둔자로 살고 있는지 모른다.
흔히 많은 SF에서 인류가 훨씬 발달한 다른 고등 외계 문명에게 발견되는 상황을 그리곤 한다. 인류 역사에서도 상대적으로 원시적인 문명이 더 발전한 다른 문명의 방문자에게 발견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그래서 얼핏 생각하면 우리가 다른 존재를 발견하는 것보다 우리가 더 발전한 다른 이들에게 발견되는 것이 당연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행성 규모에서 대륙 간 문명들이 조우하는 상황과 아예 행성을 벗어난 별과 별 사이 이 광활한 우주적 규모에서 벌어지는 문명 간의 조우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같은 하나의 행성 안에서 대륙과 바다를 가로지르는 것 정도는 충분히 현실적인 이동 거리다. 따라서 이 현실적인 범위 안에선 먼저 이동 수단을 발전시킨 고등 문명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원시적인 문명을 발견하는 ‘능동적인 조우’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주는 이와는 차원이 다르다. 빛의 속도를 넘어 수백 광년의 별까지 날아간다는 건 단순히 산을 넘고 대륙을 가로지르는 것과는 수준이 다른 문제다. 비바람을 견뎌내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 기술과 끈기의 문제라면, 빛의 속도를 넘고 시공간을 접어 다니는 건 애초에 넘을 수 없는 물리 법칙의 한계이자 넘을 수 없는 벽의 문제로 느껴진다. (물론 정말 똑똑한 외계 문명이라면 이런 물리 법칙의 한계까지 극복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별과 별 사이 외계 문명끼리의 조우는 직접 돌아다니는 이동 주체에 의해 능동적으로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신 반대로 멀리서 날아온 고등 문명의 전파 신호를 포착하는 방식의 ‘수동적인 조우’가 먼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더 오래전부터 기술 문명에 도달해서 더 많이 발전된 고등 문명일수록 더 먼 거리까지 자신의 전파를 흘려보낼 것이다. 즉 라디오 버블의 크기가 더 클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들어오는 별들의 개수도 많다. 결국 라디오 버블이 더 큰 더 발전된 고등 문명일수록 오히려 다른 별, 외계 문명에게 발견될 확률이 높아진다.
지구의 역사에서는 더 발전한 문명이 직접 돌아다니면서 다른 원시적인 남의 문명을 발견하고 돌아다니는 입장이었지만, 우주적 규모에선 더 발전한 문명이 오히려 다른 남들에게 더 쉽게 발견되는 처지에 놓이는 셈이다. 우주적 규모의 조우는 같은 행성 안에서 벌어지는 조우와는 정반대가 되는 것이다.
SF 영화에서 지구를 외계인들의 침공 대상, 방문지로 삼는 건 어쩌면 지구의 존재감을 과대평가한 셈일지 모른다. 아직 우리 지구는 남들에게 침공 대상으로 여겨지기는커녕 애초에 그 존재 자체가 발견되었다고 보기 민망할 정도로 좁은 영역에만 우리의 흔적을 남겨놓았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서는 사방의 우주 공간으로 전파가 빛의 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매순간 조금씩 조금씩 지구의 라디오 버블의 영역도 넓어지고 있다. 과연 저 먼 거리에서 이제 막 도착한 지구의 옛날 라디오 방송 신호를 엿듣고 있는 외계 문명들이 존재할까?
다음 링크를 클릭하면 정확히 ‘콘택트’의 오프닝 시퀀스와 같은 경험을 해볼 수 있다(http://www.lightyear.fm/). 지구를 떠나 빠르게 거리가 멀어지면서 계속 지구의 신호를 듣는다고 했을 때 우주선 라디오에서 지구의 어떤 노래를 듣게 될지를 체험해볼 수 있다! 먼 우주에서 지구의 노랫소리를 엿듣고 있을지 모르는 외계인이 되는 경험을 해보자!
참고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1-03596-y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1-01692-7
https://arxiv.org/ftp/arxiv/papers/2107/2107.07936.pdf
필자 지웅배는? 고양이와 우주를 사랑한다. 어린 시절 ‘은하철도 999’를 보고 우주의 아름다움을 알리겠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현재 연세대학교 은하진화연구센터 및 근우주론연구실에서 은하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진화를 연구하며, 강연과 집필 등 다양한 과학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하고 있다. ‘썸 타는 천문대’, ‘하루 종일 우주 생각’, ‘별, 빛의 과학’ 등의 책을 썼다.
지웅배 과학칼럼니스트
galaxy.wb.zi@gmail.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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