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지식재산권은 상표·특허·디자인 같은 산업재산권과 문학·음악·미술 작품 등에 관한 저작권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4차 산업의 부상으로 중요성은 커졌지만 여전히 전문 영역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지식재산권의 ‘존재를 증명’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혹은 개인이 자신의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와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최신 트렌드를 소개한다.
의류 관리기 ‘LG스타일러’는 2011년 제품 출시 이후 현재까지 누적 생산량이 100만 대가 넘었다. 보통 새로운 제품이나 기술이 시장에 출시되면 이를 모방하거나 유사하게 따라 하는 제품들이 곧 등장하게 되는데, 의류 관리기의 경우는 좀 달랐다. 삼성의 의류관리기인 ‘에어드레서’는 LG스타일러 출시 이후 무려 7년 6개월이 지난 2018년 8월에서야 비로소 출시됐다. 또한 삼성 에어드레서는 LG의 스타일러와 의류관리기라는 점에서만 동일할 뿐, 그 내부 구성은 큰 차이가 있다.
먼저 LG와 삼성의 의류 관리기의 기술을 살펴보자. LG스타일러는 행어를 흔들어 의류의 먼지 등을 털어내는 기술(무빙행어), 물통의 물을 끓여 내부에 스팀을 공급하는 기술(트루스팀), 옷감 손상 없이 습기를 제거할 수 있는 기술(저온제습), 바지의 칼주름을 잡아주는 기술(칼주름기)를 주요 기술로 보유하고 있다.
이에 반해 삼성의 에어드레서는 행어를 흔드는 대신 제트에어를 공급하여 옷의 먼지를 털어내고 물통이 아닌 파이프에 열을 가해 내부에 스팀을 공급하며, 내부 제습이 아닌 외부 공간을 제습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고, 칼주름 대신 바지에 무게추를 장착하여 주름을 잡는다.
삼성은 왜 LG의 무빙행어, 트루스팀, 저온제습이나 칼주름기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안 했던 게 아니라 못 했던 것이다. 삼성은 LG스타일러의 기술을 사용할 수 없었다. 바로 특허 때문이다. LG스타일러는 스타일러 자체만으로 100개가 넘는 특허를 확보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주요 기술들에 관해서도 모두 특허로 보호받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이 LG스타일러의 기술을 따라 하게 되면 특허 침해가 성립하게 되고, 결국 LG의 특허 기술을 침해하지 않도록 회피하여 에어드레서를 제작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기존 등록된 특허의 기술을 피해 새로운 방법의 기술을 고안해 내는 것을 ‘회피설계’라고 한다. 삼성의 에어드레서를 보면 회피설계를 위한 삼성 엔지니어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엿보인다. LG스타일러 특허 기술을 분석하고, 이를 회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투자가 이루어졌을까. 행어를 흔들지 않고 먼지를 털어낼 수 있는 방안, 물통을 끓이지 않고 스팀을 공급할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해 다양한 연구와 논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 투자 끝에 삼성의 에어드레서가 탄생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리 새로운 제품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제품의 대부분은 없던 것을 창조해냈다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기술을 조합하거나 존재하는 구성을 변경해 새롭게 잘 표현해 낸 것이 대부분이다. LG스타일러도 마찬가지인데, 기존 구성을 조합하거나 변경해 새롭게 잘 표현했다면 이를 특허로 확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이 의류 관리기에 대해 LG가 삼성의 시장 진출을 7년이나 늦출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다.
공우상 특허사무소 공앤유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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