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유동닉’이란 인터넷 게시판에서 로그인하지 않고 익명으로 활동하는 이용자를 말한다. 게시판에 글을 남기면 IP 주소의 전부 또는 일부가 표시되는데,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IP 주소는 대부분 유동 IP여서 때마다 표시되는 IP 주소가 다르다. 즉 닉네임이 유동적이라는 의미에서 유동닉이라고 부른다.
인터넷 게시판에 게시된 명예훼손, 모욕성 게시글의 작성자는 유동닉인 경우가 많다. 유동닉은 행위자(피고소인) 특정이 어려운 면이 있고, 그래서 유동닉은 악플을 달더라도 처벌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 회원으로 접속된 상태에서 활동하는 고정닉은 해당 인터넷 서비스의 서버에 저장된 회원정보와 게시물이 모두 확인되므로 행위자 특정이 용이하다.
그러나 유동닉은 게시판에 닉네임과 비밀번호만을 입력하여 게시물을 작성하기 때문에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는 IP 주소밖에 없다. IP 주소마저 접속할 때마다 변경되므로, 행위자를 특정하기가 어렵다.
행위자 특정이 어렵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유동닉은 악플러로 진화할 가능성이 내재돼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고정닉보다 유동닉이 많은 것이 친목질을 방지하고 게시판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보고 유동닉 활동을 권장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있다.
유동닉이 악플을 남길 경우, 그 유동닉을 형사고소해서 처벌받도록 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에 대해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굳이 답변하자면 처벌 가능성이 있다.
우선 유동닉을 고소하는 경우 고소장에는 피고소인이 IP 주소의 일부로 특정된다. 고소장만으로는 도대체 누구를 고소하겠다는 것인지, 악플로 특정된 게시물과 피고소인이 어떠한 관련성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간단히 말해서 고소장 자체의 완결성이 필연적으로 부족하고 향후 수사에 의해 규명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밖에 없다. 격무에 시달리는 경찰 입장에서는 이러한 고소장이 달가울 리 없다. 특히 여러 명을 고소했는데 수사 결과 그 작성자가 전국에 산재해 있는 경우 고소사건이 이송돼 전국 경찰서로 떠돌아다니게 될 가능성도 있다. 원칙적으로 경찰의 수사 관할은 피의자의 주소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동닉에 대한 처벌이 법령의 절차상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다. 관련 법령 및 당국의 규제로 우리나라의 모든 인터넷 사업자(정보통신사업자)는 접속(로그) 기록을 일정 기간 보관해야 하고 최근 그 기간이 6개월에서 1년으로 연장됐다. 따라서 △경찰이 고소장을 접수하고, △고소인의 참고인 진술을 받은 후 이에 근거해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며, △그 영장을 근거로 해 접속 기록이 입수되는 경우, 경찰은 유동 IP가 언제 접속해 어떠한 글을 작성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개인이 유동 IP를 추적해 접속지 주소 등을 특정하기는 불가능하지만, 경찰 등 수사기관이라면 통신사에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통신사가 보관하는 유동 IP의 접속 이력을 입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맥(MAC) 주소, 접속자 주소, 접속자의 통신사 가입정보도 확인 가능하다.
결국 국내에서 국내 통신사가 제공하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에 가입해 국내 사업자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에 악플을 남기는 경우, 유동닉이라고 해서 추적을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단지 그 과정이 복잡하고 악플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지 않아 수사기관의 결단을 끌어내기 어려울 뿐이다.
인터넷상에 공유되는 고소 대응 가이드라인 식의 문서를 보면, ‘유동 IP의 추적 결과는 특정 사람이 아니라 그 유동 IP가 언제, 어디서 활동했는지만을 알려줄 뿐이다. 어떤 사람이 그 유동 IP로 접속해 악플을 작성했다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 시각 집안에서 다른 사람이 컴퓨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으로부터 피의자 신문을 받을 때 자백하지 말고,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면 처벌을 피할 수도 있다’는 등의 조언이 있다.
논리적으로 볼 때 IP 추적은 ‘유동 IP’를 추적하는 것이지 ‘작성자’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므로, 위와 같은 조언에 근거가 없진 않다. 그러나 유동 IP 추적을 통해 네트워크 접속 내역이 전부 드러났고, 해당 게시물(악플)의 내용상 특정 연령대와 성별의 접속자로 쉽게 추측되는 상황에서 수사기관으로부터 작성자로 지목된 경우, 무조건 혐의를 부인하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오히려 수사기관에 안 좋은 의미로 직권발동을 촉구하는 행동이 되어,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해 컴퓨터를 모두 압수한 후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여죄를 밝혀낼 수도 있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아 체포·구속 사유가 성립할 수도 있다.
악플을 달았다고 해서 체포·구속까지 당하는 것은 파멸적인 결과가 아닐까. 따라서 위와 같은 조언은 실제 사건을 겪어본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동닉을 고소할 때 어떠한 점을 유의해야 할까? 인터넷 사업자와 통신사 로그 기록 등을 보관하는 기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가급적 신속하게 고소하고,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또 고소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 수사기관이 진지하게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가급적 비난 가능성이 높은 게시물만 모아야 한다. 게시물을 캡처할 때는 일시가 표시되도록 해 범죄 일시를 특정할 필요가 있다. 주기적인 캡처를 통해 침해의 정도가 심각함을 강조해야 한다.
위의 내용을 보면 유동닉에 대한 고소에서 한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동닉 추적은 대부분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영장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서버가 외부에 있거나 국내에 지사가 없어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되기 어려우면 추적에 더욱 난항을 겪는다. 유저 입장에서 볼 때 인터넷 서비스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유동닉 추적은 국적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데, 앞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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