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식품 특화그룹이자 제분업계에서 CJ제일제당, 대한제분의 뒤를 이어 3위 자리를 탄탄하게 지킨 동아원그룹은 50년 넘게 식품업에 종사하며 성장한 튼튼한 중견기업이었다. 다른 대기업에 비해 사세는 작았지만 정·재계와 이어진 혼맥 덕에 유명해졌다. 특히 ‘전두환 사돈 기업’으로 알려지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오너 일가가 본업인 식품업과 관련 없는 업종에 투자하며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1956년 설립한 호남제분이 그룹 주춧돌
1915년생인 이용구 창업주는 20살에 경성고무 대리점을 개업해 17년 동안 일하다가 1951년 이만수 경성고무 사장에게 눈에 들어 전무로 자리를 옮겨 경영 전반에 대해 배운다. 1956년까지 전무로 일하던 그는 적산으로 정부에 몰수당한 군산의 한 창고를 인수해 인근에 제분회사를 설립했다. 이 제분회사가 호남제분으로 추후 운산그룹(동아원그룹)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기업으로 성장한다.
기존 설비 덕에 호남제분은 설립 1년 만에 하루 생산능력 130톤을 기록할 수 있었으며 성장세를 이어가 1966년 700여 명의 직원과 전국 주요 도시에 점포망을 갖추게 된다. 다만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목포로 공장을 이전하게 된다. 목포로 이전한 호남제분은 공장을 증설해 하루 1000톤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며 대한제분, 동아제분과 함께 국내 3대 제분업체로 자리 잡았다.
이용구 창업주는 1958년 제일사료를 시작으로 원미섬유공장, 제일산업 등 계열사를 늘려나가기 시작했으며 1970년대 말 7개의 계열사를 두게 됐다. 승승장구하던 호남제분은 전두환의 신군부 정권에서 위기를 맞게 된다. 1980년 3월 이용구 창업주는 증권거래법 위반 및 공갈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경쟁사인 대한제분의 주식을 증권거래소 밖에서 매입해 경영권을 빼앗으려 했다는 혐의다. 결국 그해 4월 이용구 회장이 대한제분 주식을 매각하며 일단락된다.
이후 전국 시장을 목표로 1990년 7월 운산그룹을 출범하고 그룹 대표 계열사인 호남제분의 이름을 한국제분으로 변경했다. 하지만 3년 후 이용구 창업주가 사망하면서 해외에서 시장개척을 위해 힘쓰던 차남 이희상 씨가 그룹을 이끌게 된다.
#페라리, 와인 좋아해 사업으로 확장했다 결국…
이희상 회장이 운산그룹을 이끄는 가운데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외환위기 극복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00년 목포시가 삼학도 복원사업을 발표한 것. 한국제분은 미처 대체 부지를 찾기도 전에 내쫓기게 됐다. 이희상 회장은 이를 타개할 방안으로 당시 신동아그룹이 해체되며 매물로 나온 동아제분을 인수했다.
이후 운산그룹은 동아제분이 소유한 인천 공장을 거점으로 삼고 충남 당진에 제분 공장을 착공했다. 외환위기와 함께 여러 문제를 이겨내며 운산그룹은 탄탄한 기업으로 입지를 다졌다.
운산그룹은 대기업으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혼맥을 자랑해 정‧재계에선 꾸준히 언급됐다. 이희상 회장은 슬하에 1남 3녀를 두었는데, 장녀 이윤혜 씨는 1995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3남 전재만 씨와 결혼했다. 차녀 이유경 씨는 고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 일가로 시집 갔다. 3녀 이미경 씨는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의 아내가 되었다. 조현준 회장의 사촌동생인 조현범 한국앤컴퍼티 대표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로 운산그룹과 연이 닿아 있다.
운산그룹은 2009년 그룹명이 사업영역을 아우르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사명을 ‘동아원그룹’으로 변경했다.
이희상 회장은 2005년 782억 원을 투자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밸리에 와이너리 ‘다나 에스테이트’를 세우고 2007년 페라리와 마세라티 수입‧판매사인 FMK(포르자모터스코리아)를 설립해 화제가 됐다. 이뿐만 아니라 에너지 사업, 패션 사업 등에도 진출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꾸준히 해왔다. 2014년 기준 운산그룹은 29개의 계열사를 두었고 매출은 제분 부문 41%, 사료 부문 36%, 나머지 20% 정도로 분산됐다.
사업영역을 넓게 펼치며 다각화를 시도한 동아원그룹은 결국 자금난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2014년 동아원그룹 부채비율은 연결기준 789%를 웃돌았고, 당기순손실 744억 원을 기록했다. 조류독감과 구제역 등으로 농가가 큰 피해를 입는 바람에 사료 사업이 부진한 것도 한몫했다.
이런 와중에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동아원이 자사주 매각을 위해 주가 조작한 것을 묵인한 혐의로 이희상 회장이 기소됐다. 2015년 7월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억 원, 추징금 4억 2000만 원이 선고됐다.
이희상 회장은 자금난을 탈피하기 위해 2015년 3월 FMK를 사돈그룹인 효성에 200억 원에 매각했다. 강남구에 위치한 운산빌딩, 포도플라자 등 2개의 부동산도 각각 392억 원, 150억 원에 매각했다. 신사업으로 준비한 당진탱크터미널도 1000억 원에 매각을 준비했고 친환경 유기농 사업체인 해가온, 인천에 갖고 있던 2만 6440㎡ 규모의 제분 공장도 매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동아원그룹은 2015년 12월 회사채를 갚지 못해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그룹의 뿌리인 한국제분과 동아원, 해가온 등은 사조그룹에 팔렸으며 대부분의 계열사들도 매각‧청산 과정을 밟았다.
#반려동물·와인 사업, 이번엔 다를까
워크아웃과 함께 재계에서 자취를 감춘 이희상 회장의 근황이 최근 공개됐다. 지난 4월 효성그룹의 동일인(총수)이 조현준 회장으로 바뀌었는데, 조 회장의 장인 이희상 전 동아원그룹 회장의 회사들도 효성그룹 계열사 명단에 포함된 것이다.
이희상 전 회장은 반려동물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퍼플네스트, 대산앤컴퍼니와 와이너리 사업을 영위하는 로터스원유한회사를 운영했다. 퍼플네스트는 2019년 영업적자 10억 원, 대산앤컴퍼니도 20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다가 반려동물 사업을 정리해 지금은 부동산 임대사업만 하고 있다.
한편 이 전 회장은 동아원그룹이 해체되면서 사조그룹에 넘어간 미국 와이너리 회사 ‘코도’를 로터스원을 통해 530억 원에 재매입해 미국 나파밸리에서 브랜드명 ‘다나’로 와인 제품을 출시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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