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을 위해 아파트 단지 내 전기차 충전시설 보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적은 주차면을 갖고 있거나 세대 수가 적은 아파트도 전기차 충전시설을 확충해야 하는 게 골자다. 정부가 전기차 충전시설 부족을 인식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대목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며 좀 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월 27일(금)부터 10월 6일(수)까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친환경자동차법) 시행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입법 예고 기간에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 예고 이후 규제심사·법제처심사·국무회의 등을 거쳐 2022년 1월 28일부터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는 전기차 충전시설 의무설치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아파트의 경우 ‘500세대 이상’에서 ‘100세대 이상’으로, 공중이용시설·공영주차장은 ‘100면 이상’에서 ‘50면 이상’으로 확대했다.
전기차 충전시설 비율도 늘리기로 했다. 법 시행일 이후에 건축 허가를 받은 신축시설은 총 주차 면수의 5%에 전기차 충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이는 현행 0.5%에서 10배 늘어난 수치다. 시행일 이전에 건축 허가를 받은 건물은 총 주차 면수의 2%를 전기차 충전시설로 사용하도록 시행령을 강화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정부가 전기차 충전시설 부족을 인지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전기차 이용자들은 늘어나는 전기차 보급량에 비하면 충전시설이 부족하고, 체감 충전시설은 더 부족해 세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전기차 이용자는 “단지 내 전기차 보급 대수가 갈수록 늘고 있다.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초조하다. 아파트 주차장 내 충전기를 선점하지 못할 것 같아서다. 그래서 약속이 있어도 차를 집에 두고 나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출근 시간까지 차를 충전하지 못한 상태로 둬야 하기 때문”이라며 충전시설 부족한 현실을 설명했다.
게다가 충전시설을 설치해도 모두 다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고정형 충전기보다 이동형 충전기를 선호하는 공동주택이 늘고 있다. 고정형 충전기는 설치 공사에 추가 비용이 들고, 전기차 전용 주차면으로 할당해야 하는 등 불편함이 있지만 이동형 충전기는 콘센트에 전기차 충전 식별 장치(RFID 태그)만 부착하면 된다. 그러나 차단기별로 이동형 충전기 1대만 사용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즉 아무리 콘센트가 많아도 차단기 하나에 1대만 충전할 수 있어 동시 충전이 불가하다.
물론 전력 증설을 통해 해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입대위)에 건의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전기차 몇 대를 위해 이 같은 절차와 비용을 사용할 리 없는 셈이다. 또 증설 전까지는 먼저 이동형 충전기를 등록한 입주자에 충전 우선권이 있다. 내가 먼저 전기차를 충전하고 있었어도 해당 입주자가 충전을 시작하면 충전 대기 상태로 전환된다. 충전기가 있어도 충전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다른 전기차 이용자는 “지하 주차장에 이동형 충전기를 위한 콘센트는 여섯 개인데 한 차단기로 운영된다. 내가 보유한 전기차만 3대라 한 차가 완충되면 다른 차들을 충전하는 식으로 사용했다. 하루는 충전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충전이 중단됐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주차장으로 가 보니 다른 이용자가 내 이동형 충전기를 뽑고, 자신의 차량을 충전하고 있더라”며 “상대는 퇴근 후에 차량을 충전해야 하는데 항상 내 차가 충전 중이라 그랬다고 한다. 차량이 3대라 당사자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전기증설을 위해 관리사무소에 요청해야 한다는 말밖에 못 해 답답했다”고 말했다.
완충 후 빼지 않는 전기차들도 골칫거리다. 또 다른 전기차 이용자는 “전기차 충전구역을 주차 목적으로 사용한다든지, 충전이 다 됐는데도 차를 빼지 않고 버티는 이용자도 있다. 이동형 충전기를 위한 콘센트가 있는 자리는 일반 주차 구역이다 보니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하는 경우도 많다. 일일이 전화해서 차를 빼달라고 하기에는 죄송하고, 그렇다고 충전을 안 할 수도 없어서 딜레마”라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는 충전이 끝난 후 5분 후에도 충전기가 연결돼 있다면 이용자에게 분당 500원의 점거 수수료를 부과한다. 만약에 해당 시설에 테슬라 전용 급속 충전기인 ‘슈퍼차저’가 만석이라면, 수수료는 분당 1000원으로 늘어난다. 산업부는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충전구역에 전기차가 충전하지 않고 장기간 주차하면 충전방해행위로 포함해 단속할 예정이다. 이전에는 충전방해행위에 포함되지 않아 단속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정해진 게 없다.
산업부가 설치시한에 유예기간을 두기로 해 이 같은 체감 충전시설은 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시설의 경우 법 시행 후 1년 내로 충전시설을 구해야 하지만, 아파트는 충전기 설치시한을 3년으로 했다. 수전 설비의 설치 등 충전시설 설치에 시간이 필요할 경우 시·군·구청장과 협의해 법 시행 후 최대 4년까지 기한연장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턱대고 전기차 충전시설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아파트마다 주차장 주차 면수나 계약 전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청주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요즘에는 가구당 차량 2대 이상을 보유하는데, 주차장은 주차 면수를 세대당 1대로 계산하다 보니 주차할 곳이 늘 부족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신축급인데도 이중 주차가 불가피하다”며 “전기차 충전시설을 위해 주차 면을 내주면 주차난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 전기차 충전시설을 늘리려면 아파트 주차난부터 해소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아파트마다 전력량이 정해져 있는 것도 문제다.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세대당 전용면적이 60㎡ 이상인 경우 3kW, 이를 초과하는 10㎡마다 0.5kW씩 추가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가전제품이 대형화, 다양화하면서 전기사용이 꾸준히 늘어 오래된 아파트 단지들은 열대야나 한파 시 전기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정전 사고가 빈번하다. 전기차 충전기의 경우 완속 기준 충전용량이 3~7kW 수준이다. 충전 시간은 4~5시간 이상으로, 한 번에 여러 대를 충전하면 과부하가 올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있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앞으로 전기차 충전시설이 늘어나면 건물마다 전기 설비 증축이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에 따른 지원 정책은 전무하다. 우리보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설치해도 문제다. 심야 시간에 전기차를 충전하는 경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피크 타임에 전기차 충전 수요가 급증할 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정전, 화재 등 혹시 모를 사고를 위한 대책 역시 전무할 것”이라며 “이번 개정안으로 오래된 아파트나 상가에도 전기차 충전시설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곳들은 전력량 자체가 적어 과부하가 걸릴 수도 있어 충분한 연구가 필요하고, 구축 건물일수록 충전 설비 조건을 더욱 엄격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번 개정안은 겉보기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으나, 디테일이 너무 떨어진다. 충전시설만 확충한다고 능사가 아니다. 충전기 설치부터 아무 주차 면에다가 해서는 안 된다. 실차 면적을 고려해 충전시설을 갖추고 주차 면을 확보해야 실수요를 늘릴 수 있다. 건물 유형이나 용도에 따라 고정형과 이동형 중 어떤 충전기를 설치하는 게 유리한지도 연구해야 한다. 그래야 주차난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찬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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