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집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전세마저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민간임대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건설사도 사업성을 고려해 분양보다 민간임대로 사업계획을 변경하는 분위기다. 분양을 기다리며 내 집 마련을 기대하던 무주택자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다.
#민간임대 인기 높아지니 분양에서 임대로 사업계획 변경
최근 민간임대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공급된 ‘신광교 제일풍경채’는 임대주택임에도 1766세대 모집에 2만 6033명이 몰려 평균 14.74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공급된 민간임대아파트 ‘안중역 지엔하임스테이’의 평균 경쟁률은 286 대 1, ‘신아산 모아엘가 비스타2차’는 187 대 1을 기록했다.
민간임대는 시세보다 저렴한 전셋값에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고, 주택 수 및 소득 수준 등과 상관없이 만 19세 이상 세대주면 청약이 가능하다. 8~10년의 임대 기간 이후 임차인에게 우선 분양권을 준다는 점도 매력 중 하나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은 “예전에는 민간임대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전세 물량이 부족해지면서 민간임대의 인기가 높아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민간임대에 대한 수요자 관심이 높아지자 건설사도 분양보다 임대를 선택하고 있다. 전주시의 ‘마지막 로또아파트’라며 관심을 받았던 ‘전주 에코시티 데시앙 15블록’은 최근 일반분양에서 민간임대아파트 분양을 추진해 논란이 됐다. 무주택자의 강한 반발이 일었고, 전주시에서는 민간임대 대신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으로 승인했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에 들어서는 롯데건설의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 엘’도 올 초 민간분양으로 사업승인을 받았지만, 지난 6월 민간임대로 사업계획을 변경했다.
건설사는 분양 대신 임대를 선택하면 분양가 심사를 피할 수 있다. 분양의 경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가 심사를 받아야 해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기가 어렵지만, 임대는 보증금 등에 대한 제재가 없다. 사업자가 원하는 액수의 보증금을 책정할 수 있으며 분양전환 희망자에게는 매매예약금 등의 추가금까지도 받을 수 있다.
한 지자체 주택과 관계자는 “민간임대주택의 경우 정해진 법령에 맞는 서류만 준비해 제출하면 된다. 별도의 승인이나 사업 심사 등의 절차가 없다”면서 “분양가에 대한 심사나 제재 또한 없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도 “지금처럼 시세와 차이가 현격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가격상승전망이 우세한 시점에서는 임대 이후 분양을 하면 더 높은 가격으로 분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분양가 심사 피하려 임대 후 분양 선택…시세차익 보려는 투기꾼들 몰려
분양가처럼 심사를 받지 않다 보니 일부 임대보증금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됐다는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10년간 거주가 가능한 장기일반민간임대주택인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 엘은 전용면적 84㎡로 구성된 715가구가 공급된다. 임대보증금은 층수에 따라 8억 5000만~8억 9000만 원대로 책정됐다. 월 임대료는 100만 원이다. 9억 원 가까운 보증금을 낸 뒤 10년간 월세 100만 원씩을 다달이 내야 하는 것이다.
임대보증금이 시세 대비 저렴하지 않은데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관심이 매우 높다. 당첨 후 임차권 양도 등으로 시세차익을 내려는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근 기업형 임대주택 신광교 제일풍경채의 임차권이 3억 원대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 중이므로 그만큼의 시세차익을 낼 수 있다고 예상한다.
A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신광교 제일풍경채의 경우 8년 거주 후 분양전환이 가능하다. 분양 후 1년 후부터 입주 전까지 2번의 임차권 명의변경이 가능한데 현재 ‘피(프리미엄)’가 3억 5000만~3억 9000만 원대로 형성돼 있다”며 “7월만 해도 2억 원 중후반대였는데 계속해서 오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수지구청역 롯데캐슬 하이브 엘은 공고문에 분양전환에 관한 내용이 없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은 향후 당첨자 대상의 분양전환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신광교 제일풍경채가 비슷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신광교 제일풍경채는 지난해 모집 공고에서는 임대 모집만 진행하며 ‘임대 기간 종료 후 임차인에게 분양전환 우선권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모델하우스 상담 시에는 임대차계약과 매매예약제 등 2가지를 공지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광교의 한 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신광교 제일풍경채의 사례를 보고 매매전환을 기대하고 청약한 사람들이 많다”며 “분양가가 13억~14억 원 선으로 나올 것이란 예상이다. 청약 신청자 중 상당수는 당첨 후 ‘초피(초기 프리미엄)’만 붙여 팔겠다는 마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임대주택에 거주하며 향후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노리던 무주택자들은 낙심하는 분위기다. 용인시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 씨는 “일반분양은 경쟁률이 너무 높아 가능성이 없고, 전세 구하기도 쉽지 않다. 민간임대에 살며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만들려고 했는데, 임대보증금이 너무 높다”며 “투기꾼이 끼어들어 경쟁률을 높이면 건설사는 배짱 임대를 할 것 아닌가. 임대보증금이 높은 아파트만 나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책임연구원은 “민간임대의 경우 기업에 주어지는 별도의 혜택(세금경감 등)을 반영한 수준에서 임대료 변화가 가능하다. 그렇지 않은 순수 민간임대는 민간사업자의 사업적 판단에 따라 운영된다”며 “보증금이 과도하다고 느껴지는 민간임대가 늘어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박해나 기자
phn0905@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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