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MZ세대는 1980~1994년 사이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5년 이후에 태어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주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변화에 민감’, ‘신흥 소비권력’, ‘워라밸’ 같은 단어로 소개된다. 하지만 이들은 플랫폼 경제로의 전환, 젠더 문제, 코로나19 시대, 유례없는 저성장과 높은 실업률의 한가운데 서 있기도 하다. 부유(浮遊)하는 단어를 바닥으로 끌어 내리기 위해 용어와 통계가 생략한 MZ세대의 현실을 전한다. 이들은 MZ세대를 대표할 수도 있고, 그 중 일부일 수도 있다.
5년 차 직장인 A 씨는 최근 협업 툴 ‘노션’을 이용해 개인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퍼스널 브랜딩’ 관련 온라인 강의에서 알려준 방법이다. 강사는 “평소에 업무 경력과 강점을 디지털에 정리하면서 ‘나’를 브랜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 씨는 “어느 순간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본업 외의 ‘살길’에 대해 고민하고 있더라. 막연히 때가 되면 이직을 해야지 생각하고 있다가 본업과 부업, 퇴사와 이직 사이의 고민을 실천으로 옮기는 직장 동료들을 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됐다”고 말했다.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퍼스널 브랜딩이란 자신을 브랜드화해 특정 분야에서 먼저 자신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을 뜻한다. 이들은 본업 외에 부업이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혹은 개인 SNS 채널을 활용해 퍼스널 브랜딩을 한다.
퍼스널 브랜딩에 대해 고민하는 직장인 두 명과 프리랜서 한 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재의 직업이 갖는 전문성과 영속성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동시에 끊임없이 개인을 채찍질하는 자기 착취의 분위기에 피로감을 느끼기도 했다. 인터뷰는 대면 또는 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Q.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소개해주세요.
A 씨(33): IT 회사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는 5년 차 직장인입니다. 브런치에 마케터의 일상에 관한 글을 쓰고, 최근에는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책을 출간했습니다.
B 씨(29): 핀테크 업체에서 개발 업무를 하는 2년 차 직장인입니다. 회사 밖 친구들과 함께 사이드 프로젝트로 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C 씨(26): 저는 프리랜서 방송인이고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고 광고를 받는 방식으로 부수입을 내고 있습니다.
Q. 본업 외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요?
A 씨: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지인들과 매주 뉴스레터를 발행해요. 평일의 대부분은 직장에 묶여 있다 보니 퇴근 후 혹은 주말을 이용합니다. 본업인 마케팅 업무를 살려 관련 정보나 에세이를 전달합니다. 정기적으로 글을 쓰면 내 생각을 정리하고 업계 트렌드를 빠르게 쫓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불특정 다수에게 글을 보냄으로써 ‘나’라는 사람에 대해 마케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요.
B 씨: 회사 업무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갈증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운동시설 위치 알림 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됐어요. 회사 안에도 업무 외 별도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구성원이 많다고 알고 있어요. 업무에 지장이 없다면 회사도 그다지 터치하지 않고요. 앱 개발이 완료되고 반응이 좋으면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거나 투자를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은 저 개인의 개발 업무 능력 향상에 더 목표를 두고 있어요.
C 씨: 브이로그와 뷰티 정보 전달 형태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구독자는 지난달 4만 명을 넘겼어요. 대학생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했고, 글에 다 담지 못하는 내용을 영상으로 전달하기 위해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취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유튜브 영상을 위해서 새로 나온 화장품을 산다거나 특정 장소에 방문하는 등 꽤 많은 시간을 쓰고 있어요. 광고나 협찬도 들어오고요. 이렇게 꾸준히 영상을 만들면서 나를 브랜딩 한 경험이 방송 업계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퍼스널 브랜딩’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A 씨: ‘나를 판매하기 위한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마케팅 업계는 트렌드가 너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거기에 발맞춰 공부하지 않으면 뒤처지거든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만큼 하나의 직장에 속한 평상시에도 나에 대해 탐구하고 능력 향상을 위해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 거라는 불안감이 늘 있어요.
B 씨: ‘이직을 위한 준비’라고 봐요. 개발자로서 지금 회사에서 나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기반으로 연봉을 높여서 더 좋은 회사에 가고 싶은 욕심도 있거든요. 회사에서의 포지셔닝에 더해 나의 강점을 살린 사이드 프로젝트를 어필하는 게 유리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대부분의 개발자가 끊임없이 공부를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고민해요. ‘개발자는 많은데 잘하는 개발자는 드물다’는 말이 업계에 괜히 있는 게 아니거든요. 연봉 차이도 점점 커지고 있어요. 잘하는 개발자의 연봉은 천정부지로 뛰고, 계속해서 유입되는 그저 그런 개발자 연봉은 점점 낮아지죠.
C 씨: ‘전문 분야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방송 업계는 프리랜서가 많다 보니 계속해서 자기를 어필해야 일이 들어와요. SNS와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데 돈과 시간을 쏟는 이유죠. 내가 특별히 어디에 강점이 있고 혹은 얼마나 대중적으로 알려졌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해요. 직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N잡러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퍼스널 브랜딩에 대한 중요도도 높아진 것 같아요.
Q. 개인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2030 특정 세대의 분위기라고 보시나요?
A 씨: 어떤 직업군에 속하든 불안함을 느낀다는 게 우리 세대의 주된 분위기 같아요. 정규직일지라도 끊임없이 성과를 내야 하고 이런 분위기는 자기착취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회사, 월급, 자격증 그 무엇도 나를 온전히 책임져주지 않으니 나를 포장해 판매하기 위해 취업을 한 뒤에도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거죠. 나를 살피거나 잠시 쉬어갈 여유가 없어요.
B 씨: 개인이 진행하는 공부, 프로젝트, SNS 등 회사에서 주어진 업무 외 모든 활동이 이젠 퍼스널 브랜딩으로 귀결된다고 봐요. 이전 세대가 회사 안에서의 성공을 최고로 쳤다면 우리 세대는 회사보단 ‘내’가 중심이 되어 더 좋은 기회를 만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차이인 것 같아요. 다만 주변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에서 걱정이 돼요. 누구보다 열심히 본업과 부업을 병행하다가 갑자기 번아웃이 와서 회사를 그만둔 동료도 있어요. ‘무엇을 위해서’라는 목표를 명확히 세우지 않으면 반드시 이 사례처럼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게 되는 것 같아요.
Q.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A 씨: 사실 잘 그려지지 않아요.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정말 나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사례는 극히 일부니까요. 모든 직장인의 꿈이 퇴사와 유튜버라고 하지만, 실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운이 좋으면 돈을 좀 더 많이 주는 회사로 가고 좀 더 운이 좋으면 나의 지향과 맞는 회사나 동료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요. 강의를 들으면서 인상 깊었던 건 ‘퍼스널 브랜딩이 단순히 직업적 측면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라 개인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는 부분이었어요. 살아온 궤적을 정리하면서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최종적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하는 것도 퍼스널 브랜딩이 될 수 있다고 해요. 저는 책을 소개하는 뉴스레터를 운영하는데, 나중엔 직접 독립서점을 내고 싶어요.
B 씨: 디지털 노마드로 사는 꿈을 꿔요. 단순히 코드를 짜고 기존의 업무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이용자와 개발자 모두에게 편안한 좋은 개발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싶어서 나를 브랜딩 해나가는 것 같아요. ‘어떤 회사에 속해 있냐’보다는 나 자체로 어떤 개발자인지를 말하는 법에 대한 고민을 해요. 완전히 분리시킬 순 없겠지만 10년 뒤에는 하나의 회사에 속하지 않고 프로젝트 중심으로 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봐요. 그때를 위해 지금 퍼스널 브랜딩을 하고 있어요.
C 씨: 처음엔 프리랜서의 삶을 살면서도 하나의 회사에 속한 정규직을 준비했는데, 어느 정도 적응한 뒤부턴 오히려 자유로움이 편안하다고 느꼈어요. 아직은 포트폴리오를 보내고 면접을 보면서 계속해서 나를 증명해나가야 하지만, 노하우와 경력이 쌓인 뒤에는 좀 더 수월하지 않을까 기대해요. 프리랜서에게는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지, 필수인 능력이에요.
일각에선 퍼스널 브랜딩이 개인의 열정을 생계 수단으로 발전시킨다는 의미의 ‘열정 이코노미(Passion economy)’와 온라인 플랫폼의 발달로 비정규직 프리랜서 근로 형태가 일상화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가 반영된 문화 현상이며, 이를 종용하는 분위기가 불안감을 증폭시키면서 너도나도 뛰어든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대해 B 씨는 “세대의 특성이라기보단 사회구조적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발버둥”이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A 씨는 인터뷰 말미에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의 긍정적인 면만 부각되는 듯하다. 나는 오히려 불안감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퇴근 이후에도 쉬지 못하고 공부하는 우리 세대의 슬픈 단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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