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위드 코로나(코로나19를 독감처럼 관리하고 방역 강도를 낮춰 일상을 되찾자는 의미)’로의 전환 논쟁이 한창이다. 일일 신규 확진자는 꾸준히 발생하고 있지만 중증 환자와 사망자가 줄어들고 있어, 위 중증·사망률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방역 정책을 전환하자는 이야기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백신 수급이 안정치 않은 데다 2차까지 접종받은 사람의 비율이 약 23%라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우리에게는 없는 ‘백신 주권’이 발목을 계속 잡고 있다. 상당한 연구 기간이 소요되지만 들이는 비용 대비 손실이 커서 백신 개발에 소홀했던 제약사, 그리고 이들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 정책의 미비가 화를 불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연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해외 제약사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국내 제약 산업에는 무엇이 절실할까. 제약 산업 발전의 기틀이 된 ‘R&D(연구개발)’와 ‘M&A(인수합병)’ 중 지금 시점에서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제약 산업 우선순위 두고 갈린 의견
이 논쟁은 지난 16일 국민의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인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희숙 의원이 ‘국민의 삶과 국가의 역할’을 주제로 벌인 정책 토론 자리에서 촉발됐다. 토론 마지막 즈음 사회를 맡은 서민 단국대 교수가 “백신을 만들 능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질문을 던지자, 최 전 원장과 윤 의원의 답은 각각 ‘R&D’와 ‘M&A’로 갈렸다.
우선 최 전 원장은 R&D에 방점을 찍었다. “의료 산업 분야는 R&D 투자가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 R&D 관련 세액 공제를 늘리고 연구진의 위험부담을 완화할 수 있게끔 지원을 강화하면 백신을 비롯한 바이오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도 국가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 기술이나 연구의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반면 윤 의원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식음료 산업에 가깝다. 상위권에 속한 기업들이 박카스나 비타500 같은 제품을 내놓고 있다. R&D를 안 해도, 제네릭(복제약)만 만들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도록 정부가 많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R&D에 돈을 투자해봤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제약사 간 M&A가 선행돼 큰 폭의 구조조정이 있어야 한다. 오히려 M&A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R&D와 M&A 중요성 부각되는 까닭
둘의 주장은 모두 일리가 있다. 국내 제약사가 글로벌 신약을 내놓지 않는 이상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기업으로 크기는 어렵다. 국내 시장은 기본적으로 인구가 작기 때문에 국내 환경만 공략했다간 매출 성장 면에서 한계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많은 국내 제약사가 R&D 역량을 강화하는 이유다. 실제로 유한양행, 녹십자 등 상위 제약사들은 매출 대비 10% 안팎의 R&D 비용을 매년 투입하고 있고, 그를 바탕으로 파이프라인을 넓히거나 기술수출로 자금을 마련하기도 한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R&D도 활발하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R&D 정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꾸준히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제약사의 매출이 1조 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다국적 제약사의 연 매출은 몇십조 원에 달한다. ‘임상3상’이라는 산을 넘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몇천억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백신 역시 임상3상에만 통상적으로 2000억 원가량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해외 시장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M&A 역시 제약기업 성장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식품첨가물 제조사였던 화이자가 업계 1위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던 것도 여러 M&A를 통한 파이프라인 확대의 역할이 컸다. 현재 국내 제약사들 역시 M&A에 관심이 많다. R&D 비용을 많이 투입하고도 임상에 실패할 수 있는 데다 M&A를 통해 여러 신약후보물질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약 기술을 보유한 국내 및 해외 바이오벤처 인수 사례도 속속 등장하는 이유다.
#실질적으로는 R&D 지원이 도움되겠지만, M&A 활성화돼야 할 시점
그렇다면 업계에서는 현재 시점에서 획기적인 기술을 보유한 제약·바이오 기업을 많이 찾기 위해서는 M&A와 R&D 중 무엇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할까. 두 대선주자가 선후관계를 따진 것과는 다르게, 업계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꼽기 어렵다고 본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글로벌한 신약 및 기술 탄생을 위해) R&D와 M&A 모두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한쪽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부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는 분야는 R&D라는 평이 많다. 신약개발기업 관계자는 “R&D가 선행돼야 기업가치가 높아져 M&A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본다. M&A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어떠한 정책으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고 말했다.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임상시험 시료 제작과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에 대한 지원 등 임상시험 과정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지원해주는 방안이 실질적으로는 유용하게 작용할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무조건적인 R&D 투자 강화에는 반대 목소리가 있다. 정부가 제약 산업 성장을 위해 지원을 해왔지만 실질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이 더러 있었다는 것. 국내에서는 정부 지원을 토대로 1999년부터 지난 3월까지 총 33개의 국산 신약이 나왔지만 생산 실적이 100억 원도 안 되는 약이 대다수다. 아예 허가가 취소된 약도 있다. 이 때문에 신뢰할 만한 약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M&A가 현재 시점에서는 더 중요하다는 반응도 없지 않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M&A가 더 중요하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R&D는 상당히 성숙돼 있다. 국산 신약을 내놓거나 특허를 지닌 기업도 많고, 벤처들도 기술 이전을 하고 있다. SK바이오팜 같은 기업은 해외에 나가서 현지화 전략을 펼치기도 한다”며 “따라서 이제는 우리가 가진 자산을 어떻게 전략적으로 출구전략을 펼칠지가 중요한 시기가 됐다. 다만 제네릭 난립 문제를 막기 위해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흘러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제약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제약업계 M&A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앞서의 신약개발기업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대부분 다른 기업에 인수됨으로써 엑시트(exit)하는 경로를 선호하지 않는다. 그러나 해외 기업들의 경우 완전 인수로 말끔히 털고 다른 아이템으로 재설립하는 기업들도 많다. M&A 시장에 기술력이 좋은 회사가 많이 등장해 M&A를 활발하게끔 하고, 궁극적으로 산업이 선순환되도록 하는 점도 중요해 보인다”고 의견을 표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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