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기업들은 때론 돈만 가지고는 설명하기 어려운 결정을 한다. 그 속에 숨어 있는 법이나 제도를 알면 더욱 자세한 내막을 이해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비즈니스 법률’은 비즈니스 흐름의 이해를 돕는 실마리를 소개한다.
어떤 기업이 다른 기업을 매수하는 경우, 매수된 기업을 해체하지 않고 자회사로 두는 경우를 ‘인수(Acquisition)’라고 한다. 이와 달리 매수된 기업을 해체해 자신의 조직으로 흡수하는 경우를 ‘합병(Merger)’이라고 한다. M&A란 Merger과 Acquisition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따라서 M&A를 직역하면 합병·인수가 되어야 할 텐데, 어째서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인수·합병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M&A의 방식(거래구조)에는 △주식인수 △영업양수 △자산인수 △합병 등이 있다. 방식마다 장단점이 있으므로 M&A의 목적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을 선택하든지 대상 기업의 가치와 위험성을 평가하는 ‘실사(Due Diligence)’를 반드시 거치게 된다. 실사란 M&A에 따르는 위험 또는 문제점들을 파악하는 절차로 대상 기업에 대한 재무, 영업, 법적 현황 및 활동 등을 조사하는 작업을 말한다.
실사를 통해 대상 기업의 가치가 낮게 평가되거나 거래에 내재한 위험성이 확인된다면,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대금의 감액이나 진술 및 보장을 요구할 수 있다. 그 위험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본다면 M&A 자체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
‘진술 및 보장(representation and warranty)’이란, M&A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실과 상황 등을 공개하고, 그러한 사실·상황 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진술 및 보장을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수인은 M&A에 필요한 모든 법적·사실적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매도인은 대상 기업에 관한 모든 조세를 납부했다는 점 등을 각자 확인하고, 그 진술이 사실이 아닐 경우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처럼 실사를 통해 드러난 사정은 M&A의 진행과 조건에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적정 수준의 실사는 필요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일정을 지나치게 촉박하게 정하거나 보수를 다소 인색하게 책정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실사는 ①협상 이슈 파악, ②실사 일정 수립, ③자료 요청, ④관련 자료 공유(Virtual Data Room 업로드), ⑤인터뷰 실시, ⑥실사보고서 작성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매수인은 매도인에게 정형적인 양식과 목록에 따라 실사에 필요한 문서를 요청한다. 가령 소송 등 분쟁 사항과 관련해, 최근 5년간 발생했거나 발생이 우려되는 소송사건의 목록, 진행 경과 등의 내역을 요구하고 판결, 결정, 조서, 변호사 등 전문가의 회신서·의견서 등을 요구하는 것이다.
매도인은 매수인의 요청에 따라 관련된 문서를 제시하는데, 그 방식은 ‘Virtual Data Room’에 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영업비밀 등이 기재되어 공개가 극히 어려운 문서의 경우에는 ‘Physical Data Room’ 즉, 실물을 눈앞에서 제시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이때 매도인이 문서 제시를 거부하기는 상상하기 어렵다. 매도인과 매수인 모두 사전에 비밀유지협약(NDA)을 체결하므로, 영업비밀 보호만으로는 명분이 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사를 거부한 것으로 간주해 M&A 자체가 파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사의 영역은 매우 넓어 회사와 관련된 모든 사항이 조사 대상이 된다. 실사에는 재무·회계실사, 사업부문실사, 법률실사 등이 있다. 그 중 법률실사의 대상에는 회사의 모든 법률적 이슈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주주총회 및 이사회는 적법하게 설립·운영되었는지, △정관·약정 등에 M&A를 방해하는 조항이 있는지, △주요 거래처와 체결된 계약조건은 적정 수준인지, △현실적·잠재적 분쟁·소송이 존재하는지, △사업 수행에 필요한 인허가는 모두 취득했는지, △근로·산업 안전상 이슈는 없는지 등을 조사한다.
이처럼 모든 문서, 모든 업무가 실사 대상이다 보니, 실사의 방식과 절차는 종종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즉 매도인은 “실사는 대상 기업의 현황을 파악하는 범위 내에 국한돼야 하나, 매수인의 실사는 그 목적을 넘는 부당한 것이므로 실사에 협조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최근 A 그룹(매수인)이 B 항공(대상 기업)을 인수하는 사안에서, 매도인은 매수인의 재실사 요구는 유리한 인수조건을 얻어내거나 인수 포기로 가는 수순에 불과하다면서 재실사를 거부했다. 그러다 결국 M&A가 무산됐다.
매수인은 매도인이 제시한 문서를 검토한 후 대상 기업에 방문해 관계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는데(이는 일반적으로 매수인이 선임한 공인회계사, 변호사 등을 통해 진행된다), 이때 문서에는 나타나지 않은 회사의 구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대상 회사의 건물에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임직원의 현수막이 게시되어 있는 경우, 화학적 결합은 고사하고 사후통합도 불투명해 보이므로, 근로관계와 집단적 노사관계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사무실에 공실이 많고 주차장에 회사의 업무와 무관한 외제차가 다수 주차돼 있으며 회사의 경영진이 친인척, 지인 등으로 구성된 경우, 방만한 경영이 의심되므로, 계약체결·의사결정과 관련된 문서를 다시금 철저히 검토하게 된다.
가로수길 매장에 방문해 30분 동안 앉아 있는데 내방 고객이 거의 없고, 창고에 재고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경우, 사업의 유지나 회사의 존속 가능성이 불확실하므로 담당자를 상대로 의사결정의 배경과 사업계획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심지어 대상 기업의 임직원이 답변을 회피하거나 잠깐 확인해보겠다고 하면서 한참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있다. 이는 대상 기업에 불리하여 답변이 곤란하기 때문인데, 이러한 모든 사정은 실사의 강도와 범위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종국에는 실사보고서에 낱낱이 기재되어 향후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상 기업의 관계자는 범위 제한 없이 모든 업무를 조사받게 되므로 실사가 매우 고역일 것이다. 그러나 매수인을 대리하여 실사를 수행하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보면 마음만 먹으면 회사의 모든 사정을 조사할 수 있다. 또 변호사 업무란 것이 대체로 조사의 대상이 되어 결정권자에게 읍소하는 것인데 실사 작업만큼은 조사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조사의 범위, 방식 및 결과를 결정할 수 있으므로,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업무가 되기도 한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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