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김향수 아남그룹 창업주는 1970년대 주변의 극심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처음 반도체 사업을 실시했다. 결과적으로 반도체는 아남그룹의 고속성장의 발판이 됐고, 1997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30대 기업집단에 아남그룹이 포함되는 쾌거를 이룬다. 특히 김향수 창업주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을 권할 정도로 반도체에 자신감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남그룹은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자전거부품 수입 판매 무역회사에서 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한 ‘아남그룹’
1912년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향수 창업주는 일본대학에서 법과전문부를 수료한 후 1935년 한국으로 귀국했다. 1939년 김향수 창업주는 자전거를 수입 판매하는 일만무역공사를 세워 사업의 길로 들어섰다.
김향수 창업주는 광복 후 일만무역공사의 상호를 아남산업공사로 바꾸었고, 자전거 부품생산 판매업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돌연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돼 정계에 진출했다. 하지만 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에는 사업구상에 힘쓴다.
김향수 창업주는 이 때 일본과 미국을 다녀오며 첨단기술산업에 눈이 트였고, 한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가족 및 친지들은 당시로선 생소한 반도체 산업에 반대가 심했다. 김향수 창업주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도체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했다. 이후 1968년 1년 정도의 해외여행을 끝마치고 귀국해 아남산업의 사업목적에 전자부품제조업을 추가했다.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긴 쉽지 않았다. 공장부지, 생산시설 마련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화양동에 520평의 낡은 공장을 매입하고 미국에서 설비 기계(와이어 본더 3대, 다이 본더 2대)를 들여와 공장을 구동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공장은 2년 동안 돌아가지 않았다. 물건을 사줄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심한 손해를 입던 김향수 창업주는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장남 김주진 씨와 반도체 사업에 대해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고, 김주진 씨가 사업에 참여하며 상황은 변하기 시작한다.
김주진 씨는 사표를 제출한 후 가장 먼저 미국 내에 반도체판매회사인 앰코코리아를 설립해 판매를 담당했다. 이후 1970년 초 미국에서 아남에 반도체 샘플 200개를 제작해달라는 주문을 받았고, 7명의 직원들이 밤낮을 세워가며 제작에 성공했다. 한국에서 최초로 반도체 제작에 성공한 아남은 이후 사세가 급속도로 성장했다.
7명의 직원밖에 없던 아남은 1972년 한해 21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종업원 1000명 넘게 거느리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반도체 개발 및 수출에 기여한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는 등의 영예를 안았다.
한편 김향수 창업주는 사람을 크게 아낀 것으로 알려졌다. 1972년 말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해 반도체 사업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인원 감축을 하지 않고 고용을 유지했다. 이러한 경영 방식 덕에 직원들도 1972년 대홍수로 인해 성수동 아남 공장이 물에 잠겨 생산라인 작동이 불가능해지자 헤어드라이어로 기계를 말려가며 납기일을 맞췄다.
#반도체 산업 선구한 아남그룹, 뿔뿔이 흩어지다
아남산업은 전자산업에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1974년 일본 마쓰시타 기술을 도입해 국내 최초로 컬러TV, 1977년 당시 유명 손목시계 ‘알팩스’를 생산했다. 1980년대 초반 김향수 창업주는 이병철 삼성 회장을 만나 “삼성 같은 대기업이 컴퓨터의 주력 메모리로 사용되는 D램 산업을 해야한다”고 권유하는 등 한국의 반도체, 전자산업 발전에 공을 세웠다.
아남산업은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982년 뉴코리아 전자공업을 흡수·합병, 1988년 반도체공장과 시계종합공장 준공, 1990년 시계사업과 반도체 정밀사업을 영위하는 아남인스트루먼트를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니콘사와 제휴해 광학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뿐만 아니라 1986년 태경종합건설을 인수해 건설업에도 진출했다.
아남그룹 사세확장 후 1992년 김향수 창업주는 명예회장으로 물러나며 장남 김주진 씨에게 회장직을 물려줬다. 이후 김주진 회장도 6년 동안 아남그룹의 성장을 이어갔다. 아남그룹은 1998년 재계 21위의 거대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김주진 회장은 그룹의 주춧돌인 아남산업을 ‘아남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하고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조직 개편과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특히 김주진 회장은 반도체조립 산업에 한계가 있다고 느끼며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과 관련한 투자에 힘썼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며 반도체 산업 전반이 불황의 늪에 빠지며 아남그룹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대부분의 계열사들은 청산, 폐업했다. 주력 사업으로 꼽았던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동부그룹에 넘어갔고, 아남그룹을 성장궤도에 올린 반도체 패키징 사업부문은 미국에서 판매 영업을 담당하던 앰코테크놀로지에 역으로 인수됐다. 사명도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로 변경됐다.
다만 앰코테크놀로지는 김주진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어 그룹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앰코테크놀로지는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시장에서 세계 2위일 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 등에 11개의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수잔 김 앰코테크놀로지 이사회 부의장은 김주진 회장의 딸이다. 김향수 창업주는 2003년 별세했다.
한편 네오위즈의 창업자 중 한 명인 나성균 씨가 김향수 아남그룹 창업주의 외손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나성균 씨는 1997년 네오위즈 창립멤버로 2020년 3월부터 네오위즈홀딩스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정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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