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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진의 계정공유] 결과보다 과정의 즐거움을 보여주는 '슈퍼밴드2'

즐거운 음악 천재들이 밴드로 하나되는 여정…'악마의 편집' 대신 음악에 온전히 집중

2021.08.16(Mon) 11:55:07

[비즈한국] 2년 전 ‘슈퍼밴드’를 처음 볼 때 놀라움이 생각난다. 세상에 이렇게 천재들이 많단 말이야? 오디션 프로그램 너무 질렸는데 이렇게 신선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이 있었으니, 내 주변의 몇몇을 빼고는 이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이었다. 2% 시청률로 시작한 ‘슈퍼밴드’ 시즌1은 최고 시청률 3.7%로 나쁘지 않은 숫자를 기록하긴 했으나 ‘보는 사람들만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후배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선배가 하도 재밌다고 해서 한 번 보긴 했는데요··· 근데 제 주변에서 이거 보는 분들 보통 40대 이상이에요.”

 

시즌1과 달리 논란 끝에 여성 참가자들을 받아들이며 훨씬 다채로워진 ‘슈퍼밴드2’. 싱어 위주인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다채로운 악기 연주자들을 볼 수 있어 즐겁다. 가요, 록, 클래식, 전자음악, 국악, 힙합 등 다양한 장르는 덤. 사진=JTBC 제공

 

지난 6월 28일 시작한 ‘슈퍼밴드2’는 초반부터 시즌1보다 시청률이 좋다. 4회에서 4%를 기록하고 월요 예능 화제성 1위를 연속 차지하는 등 기세가 좋다. ‘어떻게 이렇게 매 오디션 프로그램마다 음악 천재들이 나오는 건가, 정말 음주가무의 민족이라서 그런 건가’ 놀라게 하는 실력 있는 참가자들이 많은 것이 첫 번째 이유일 것이고, 시즌1과 달리 논란 끝에 여성 참가자들을 받아들인 것이 결정적으로 유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청자들을 질리게 만드는 ‘악마의 편집’ 같은 연출 방식없이 정면으로 밴드를 결성해가는 뮤지션들과 그들의 음악에 집중한 점도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프로듀서라 불리는 심사위원들. 시즌1의 윤상과 윤종신에 유희열, 이상순, CL이 합류했다. 밴드로 활동한 경력이 이상순 외에는 적다는 논란이 있지만 워낙 오랜 경력을 지니고 예능에도 친숙한 얼굴들이라 좋은 선택으로 보인다. 다만 퍼포먼스 등 무대 경험 분야를 자신 있게 이야기해줄 CL이 다른 심사위원들에 눌려 너무 소극적인 평을 내놓는 것이 안타깝다. 사진=JTBC 제공

 

무엇보다 경쟁을 기반으로 한 오디션 프로그램이지만 ‘음악 동료를 찾으러 나왔다’는 의도에 어울리게 참가자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반하고 진심으로 흥분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미덕이다. 몇몇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악마의 편집만큼이나 가끔 거슬렸던 것이, 진심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방송을 의식해 다른 참가자에게 입에 발린 칭찬을 하는 장면들이었는데(내가 꼬였나?), ‘슈퍼밴드’에서는 그런 거슬림이 없다. 음악적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심사위원으로 등장하는 뮤지션들이나 알겠지만 ‘막귀’인 문외한이 들어도 반할 만큼 모두가 다채로운 실력과 그 실력에 어울리는 열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반하는 것처럼 시청자들도 그들에게 반하고 있는 중이다.

 

거문고 연주자로 국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박다울. 시즌1에서도 국악 연주자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밴드에 거문고가 이처럼 힙하게 어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 박다울의 노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사진=슈퍼밴드2 화면 캡처

 

‘슈퍼밴드’를 좋아하는 건 내가 ‘옛날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앞서 후배가 말한 것처럼 공교롭게도 ‘슈퍼밴드’는 내 주변에서는 내 또래 몇몇이나 즐겨 보곤 한다. 보다 다채로운 그림이 펼쳐지고 있는 ‘슈퍼밴드2’는 화제성이나 시청률이 시즌1보다 좋아진 것 같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밴드’를 만들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인 만큼 ‘가수’를 뽑는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진입장벽은 있어 뵌다. 하긴 밴드라는 것 자체가 요즘 각광받는 주류는 아니지 않은가. 뮤지션인 동시에 ‘옛날사람’들인 심사위원들(여기서는 프로듀서라 칭한다)-윤상, 윤종신, 유희열, 이상순이 이 프로그램에서 보이는 표정과 반응을 보면 나와 내 또래 몇몇이 왜 ‘슈퍼밴드’를 좋아하나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우리 때 들었던, 혹은 우리보다 조금 윗 세대가 즐겨 들어 익숙한 음악들이 우리를 추억에 잠기게 하고, 참가자들이 그 음악을 멋지게 편곡해 새로운 감성으로 들려주는 맛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물론 ‘이 곡은 이런 맛이 아니야!’라고 분개할 때도 있지만).

 

기타리스트 정나영과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 ‘슈퍼밴드2’는 보컬과 건반이 아닌 영역의 실력 있는 여성 연주자들을 여럿 보여주며 보는 재미를 한껏 늘렸다. ‘마룬파이브’ 같은 파급력 강한 남성 밴드를 K-밴드의 모델로 생각했던 제작진의 기획의도를 변경한 것이 신의 한 수. 사진=슈퍼밴드2 화면 캡처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나 퀸의 ‘Bohemian Rhapsody’, 신중현과 엽전들의 ‘미인’ 같은 곡이야 워낙 명곡이라 자주 들을 수 있다지만, 엘라니스 모리셋의 ‘You Oughta Know’나 크랜베리스의 ‘Zombie’,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진주의 ‘난 괜찮아’처럼 90년대 즐겨 들었던 명곡들이 흘러나올 때면 나도 심사위원들처럼 ‘이 노래 진짜 오랜만인데!’ 하고 흥분하며 (MC 전현무의 표현처럼) 자동차의 불도그 인형마냥 고개를 까딱까딱 헤드뱅잉하며 즐기게 되는 것이다. 시즌1의 심사위원이었던 윤상과 윤종신에, 이번 시즌 합류한 유희열과 이상순이 크게 나이 터울 지지 않는 연령대인 데다 서로 친분이 두터운 만큼 이 ‘아재들’이 심사위원이라는 권위를 내려놓고 뮤지션이자 청자로서 즐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다. 하다 못해 윤상은 ‘내가 조금만 더 젊었으면 이들과 함께 공연을 할 텐데’라며 대놓고 부러워했을 정도.

 

윤종신과 유희열은 각자 오디션 프로그램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으나 비슷한 포지션인 때문인지 함께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4회에서 프런트맨 양장세민이 이끄는 팀에 대해 서로 격렬한 반대 의견을 내놓으며 부딪치는 모습도 보여줬다. 공교롭게도 4회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사진=슈퍼밴드2 화면 캡처

 

7화까지 방영한 ‘슈퍼밴드2’는 프로듀서 오디션과 1:1 장르전과 라이벌 지목전을 거쳐 본선 3라운드를 향해 가고 있다. 밴드로 출전해 연속으로 자체 밴드로 무대를 보여온 ‘크랙샷’이 다음 화에서는 드디어 찢어져서 각자도생해야 할 것으로 보이며, 거문고 줄을 끊는 퍼포먼스가 아니어도 존재 자체로 좌중을 압도하는 독특한 카리스마의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은 이번에 어떤 팀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7화에서 심사평을 포기할 만큼 극찬을 이끌어낸 여성 3인조 밴드 린지(보컬), 정나영(기타), 은아경(드럼)이 과연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계속 같은 팀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 ‘로파이베이비’로 활동하는 황현조와 양서진이 다음에 보일 무대는 어떤 것인 것 등 기대되는 팀이나 인물이 한둘이 아니다.

 

밴드로 참전해 최초로 전원 합격해 지금껏 흩어지지 않고 같은 멤버로 무대에 오른 4인조 밴드 ‘크랙샷’. 다음 회차에서는 멤버가 흩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 밴드가 탈락자없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 사진=JTBC 유튜브 화면 캡처

 

시즌1 결선에서 우아한 첼리스트 홍진호에 반해 ‘호피폴라’를 응원했던 기억이 선연한데, 이번에는 매력 쩌는 인물들이 너무 많아 과연 결선에서 어떤 팀이 만들어지고 그중 누구를 선택할지 벌써부터 오리무중이다. 분명한 건 ‘슈퍼밴드’는 누가 우승하느냐보다 그 과정의 즐거움이 훨씬 큰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 즐거운 음악 천재들이 합을 맞추며 얼마나 더 큰 즐거움을 줄지 기대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슈퍼밴드2’는 매주 월요일 JTBC에서 방영하며 티빙에서 다시 볼 수 있다. 

 

필자 정수진은?

여러 잡지를 거치며 영화와 여행, 대중문화에 대해 취재하고 글을 썼다. 트렌드에 뒤쳐지고 싶지 않지만 최신 드라마를 보며 다음 장면으로 뻔한 클리셰만 예상하는 옛날 사람이 되어버렸다. 광활한 OTT세계를 표류하며 잃어버린 감을 되찾으려 노력 중으로, 지금 소원은 통합 OTT 요금제가 나오는 것.

정수진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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