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공공재개발 1호 사업지인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흑석2재정비촉진구역)이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다. 흑석2구역은 공공재개발 사업 후보지 8곳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준강남 주거벨트’로 기대를 모으는 흑석뉴타운의 유일한 공공재개발 사업지다. 이 같은 상징성 때문에 정부가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흑석2구역에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용적률 상향 등 각종 혜택을 적용해 주민 동의를 이끌어내고 있지만 상가 소유주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다.
올해 초 정부는 공공재개발 사업의 닻을 올렸다. 공공재개발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시행사가 사업성이 부족하거나 주민 간 갈등으로 추진되지 못하는 재개발사업에 참여해,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도심 내 주택공급을 촉진하는 사업이다.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방안으로 정부가 꺼내든 공급 확대 카드 중 하나다. 정부는 서울 동대문구 용두1-6구역, 신설1구역 등 서울에 위치한 기존 정비구역 8곳에서 4800여 가구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민간재개발보다 사업성,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 분양가상한제 적용 제외, 용적률 상향, 사업비·이주비 융자,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의 지원을 제시했다.
공공개발반대비상대책위원회(상가 세입자 대표회)가 내건 현수막들. 사진=강은경 기자
조합설립추진위원위 사무실 앞에 부착된 공공재개발 홍보물. 사진=강은경 기자
#추진위·상가소유주·세입자 각자 현수막 신경전
8월 11일 찾은 흑석역 일대. 방학과 코로나19 확산으로 평소보다는 한적했지만 유동인구가 끊이지 않는 여느 대학가 풍경이었다. 하지만 흑석역 4번 출구 인근부터 흑석 시장, 중대 병원까지 건물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들이 행인의 시선을 끌었다. 공공재개발 찬성과 반대 각각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구였다.
재개발 착수 후에는 당장 영업을 중단해야 하는 상가 세입자들도 “수십 년 닦아온 내 가게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 “상가 세입자는 쫓겨날 수 없다. 생존권 보장하라”와 같은 현수막을 걸었다.
흑석2구역에서 7년째 빵집을 운영하는 A 씨는 재개발 사업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A 씨는 이전에도 재개발로 인해 운영하던 가게를 접은 경험이 있다. 과거 아현동에서 가게를 운영했는데, 재개발 후 해당 지역 아파트 상가에 들어갔지만 상권이 바뀌어 영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재개발이 확정되면 또 다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 재개발로 임차 상인들은 사업을 접어야 하는데 정확한 계획이나 일정을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주체는 상가 소유주를 중심으로 구성된 공공개발반대비상대책위원회다. 비대위는 ‘소형, 임대 너무 많은 공공개발 결사반대’, ‘SH 물러가라! 우리는 민간개발 원한다!’와 같은 문구를 내세우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비대위 관계자는 “대형 상가 소유주나 현재 상권에 만족하는 분들은 주상복합 상가를 분양받을 경우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재산권을 침해하는 공공개발에 저항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면적요건 없이 토지 등 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만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조합설립추진위원위에 따르면 공공재개발에 대한 주민동의율은 59.2%다. 비대위는 동의 의사를 밝힌 주민들이 실제로는 흑석2구역 토지면적 3만1107㎡ 중 4079㎡(13.1%)만을 소유하고 있어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다수결이란 이름을 내걸고 상가소유주를 몰아내려 한다는 것이다.
공공재개발 사업의 경우 도시재정비촉진을위한특별법 제15조를 적용해 면적요건 없이 토지 등 소유자 과반수의 동의만으로 추진할 수 있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제35조에 근거해 토지 소유자 4분의 3 이상 동의, 토지 면적의 2분의 1 이상 토지주의 승낙이 있어야 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민간 재개발보다 완화된 조건이다.
2008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흑석2구역은 이듬해 조합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됐으나 도정법에 따른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조합설립이 무산돼왔다. 이후 국토교통부가 공공재개발 계획을 발표하자 추진위가 참여 의향서를 제출하고 1호 후보지로 선정됐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이 구역에 주상복합아파트 3채를 세워 1323가구와 복리 부대시설을 공급할 예정이다. SH가 주민들에게 배포한 설명자료에 따르면 용적률 600%, 층수는 최고 49층으로 제안됐다. 분양가는 주변 시세의 70~75%를 반영한 3.3㎡당 4000만 원선을 제시했다. 정부가 기존에 내놨던 ‘용적률 480%, 최고 40층, 분양가 주변 시세 60~65%’ 안에 비해 상당 부분 개선된 것이다. 사업성을 두고 이견이 발생해 사업 철회 가능성까지 언급됐지만 정부가 주민 의견을 일부 수용하면서 갈등을 잠재웠다.
하지만 비대위는 7월 14일 서울시청 본관 앞에서 공공재개발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시에 공공재개발구역 해제를 주장하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강경대응하고 있다. 비대위는 “낙후돼서 재개발을 하는 게 아니라 신축을 막으니 낙후되는 것이다. 재정비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신축행위가 활발했을 지역이 오히려 계속 낙후된 지역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대위 측은 정비구역지정을 해제해 민간개발을 열어두고, 특성화지역으로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주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추진위 측은 일부 상가 소유주 외에는 다수 주민이 찬성하고 있다며 사업 추진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계획 발표 후 의향서 제출까지 짧은 기간 동안 확보한 의견이기 때문에 실제로 찬성하는 주민이 더 많다는 것. 추진위 관계자는 “오랫동안 재개발 사업 진척이 없었는데, 분양가상한제, 낮은 용적률 등 공공 주도 개발의 단점으로 꼽히던 문제들이 완화돼 주민들이 호응하고 있다”며 “1구역부터 11구역까지(지정 해제된 10구역 제외) 전면 개발되는 흐름에 맞게 2구역도 쾌적한 환경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발 사업에서는 지주와 주민 동의가 중요하다. SH도 공공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과의 계속해서 소통해나가겠다는 입장이다. SH 관계자는 “현재 동작구청에 사업시행자 지정동의서를 제출했으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가 나오는대로 상가 소유주들을 설득하고 주민들과 소통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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