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3년 전 의약품 사업에서 손을 뗐던 CJ그룹이 신약 개발 기업에 다시 손길을 내밀었다. 아직 국내에서 미개척 분야로 알려진 ‘마이크로바이옴(장내 미생물) 신약’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것. 안 그래도 신약 개발 시장은 성공과 실패에 대한 예측이 어렵기로 유명한데, 미지의 영역에 뛰어든 이유가 궁금하다.
#CJ헬스케어 매각 후 3년 만…‘제네릭 올인’ 전략은 버렸다
지난 21일 CJ제일제당은 마이크로바이옴 전문 기업 천랩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천랩 최대주주인 천종식 대표와 중국 분자진단기업 상하이 ZJ바이오테크가 보유한 보통주 지분 62만 5233주(15.99%)를 양도받는 계약이다. CJ제일제당은 천랩의 기존 주식과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신주를 합쳐 258만 157주(43.99%)를 소유하게 되면서 천랩의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인수 소식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CJ그룹의 제약·바이오 사업 방향성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은 그간 전통 제약사들이 내세운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 올인’ 전략은 채택하지 않았다. 대신 바이오의약품, 그 중에서도 마이크로바이옴 분야에 눈길을 줬다. CJ제일제당은 인수 계약 체결 전인 1월에 천랩과 마이크로바이옴 신약 개발을 위한 연구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고, 2019년에는 또 다른 마이크로바이옴 기업인 고바이오랩에 40억 원을 투자했다.
CJ제일제당의 기존 바이오 사업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CJ제일제당 바이오 사업 부문(사료·축산 부문 포함) 매출은 2020년 5조 1950억 원으로 4조 7562억 원을 기록한 2019년보다 9.2% 성장했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10% 정도에 달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이전까지는 화이트바이오(친환경 소재)와 그린바이오(사료용 아미노산, MSG 등)에 집중했다면 쌓아온 바이오 역량을 바탕으로 레드바이오(의약품) 분야로 넓히는 것으로 풀이된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기존 헬스케어 사업은 화학기술 기반 합성의약품 중심이었지만 최근 확대하는 레드바이오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의 바이오 신약 개발 기술 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2018년부터 바이오사업 부문 내에 레드바이오 담당 조직을 갖추고 연구개발을 지속했다”고 말했다.
CJ그룹이 의약품 사업에 발을 들이는 건 3년 만이다. 2018년 CJ그룹은 CJ헬스케어 지분 100%를 한국콜마에 팔고 약 1조 3000억 원을 챙겼다. CJ헬스케어는 CJ제일제당의 제약사업 부문을 2014년 물적 분할한 회사로, 제네릭이 주력 분야였고 ‘컨디션’ 등 숙취해소음료도 사업군에 속했다.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은 제약 분야보다 식품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CJ그룹이 내린 결단이었다.
#생소한 마이크로바이옴 시장, 성공 가능성은?
전략을 바꾼 CJ제일제당이 관심을 두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에 존재하는 세균, 바이러스, 곰팡이 등 모든 미생물을 포괄하는 용어다. 대부분 장 등 소화기관에 있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인체 면역 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해서 ‘제2의 기관’으로도 불린다. 소화 기능을 돕는 정도로만 여겨지다가 영양분 흡수, 약물 조절 등의 역할도 한다고 밝혀지며 7~8년 전부터 마이크로바이옴에 대한 연구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장내 유익균을 이용해 질환을 치료하거나 장내 미생물군집의 종류나 구조를 바꿔 유익한 미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대사질환, 소화기질환뿐 아니라 감염성질환, 신경계질환과의 연구도 활발하다.
제약업계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은 유망하다고 보는 편.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에 따르면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 규모는 2025년 7억 8880만 달러(약 9087억 원)에서 연평균 21.5% 증가해 2028년에 14억 1630만 달러(약 1조 6315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해 12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제품화 지원팀을 따로 꾸리고 임상 가이드라인과 허가 심사 기준 마련에 나섰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질병을 앓고 있지만 항생제 등 기존 약에 부작용이 생긴 사람들에게 또 다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장내 미생물이 질병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악해 부작용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 부작용은 장내 미생물과 높은 연관성을 지닌다. 항생제 오남용과 부작용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는 상황에서 시장성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업체 관계자는 “이미 장내 미생물 군집을 환자에게 투여하는 치료가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의약품이라고 해서 의료기관에서 꺼릴 일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아직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는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업화되지 않은 초기 단계다. 미국과 영국 등에서 여드름, 요로감염 등을 적응증으로 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5개가 임상3상 진행 중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중 미국 세레스 테라퓨틱스가 가장 앞서 있다. 세레스 테라퓨틱스는 감염성 장염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의 임상3상을 지난해 마무리했다. 임상3상에서 투약 8주 차 질환 재발률을 위약보다 약 30% 낮춰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현재 상업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
국내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주로 바이오 벤처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이 인수한 천랩이 간암, 대장암 종양 형성 억제 효과를 보이는 균주에 대해 전임상을 마치고 임상1상을 준비 중이고, 고바이오랩은 궤양성 대장염 치료제로 개발 중인 마이크로바이옴 신약후보물질의 임상2a상 시험계획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상태다. 지놈앤컴퍼니는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면역 항암치료제 임상2상 승인 신청을 식약처에 접수했다고 지난 30일 공시했다.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섣불리 추측하기는 어렵다. 또 기존 임상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지금의 의약품 시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약 개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무리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라도 희소 질환을 타깃으로 하지 않는 이상 임상 과정이 대폭 단축될 리 없다. 국내에서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를 개발 중인 곳은 중소기업인데, 대기업과 손을 잡는다고 해도 임상에 필요한 환경이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 아니냐는 의문도 있다.
반면에 CJ제일제당의 전략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나온다. 제약업계에서 지위는 공고하지 않지만 의약품 사업에 진출할 활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의 제약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바이옴 기술의 진보 속도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시장에서는 대형 제약사들이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기존 의약품이 아닌 효소와 미생물 등 바이오 분야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CJ제일제당의 경우 신약 개발뿐 아니라 식품 등과 연계한 바이오 사업 확장성을 노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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