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흐름을 잘 탔다. 갑작스럽게 닥친 코로나19와 가속이 붙은 기후 위기는 대체육 시장이 성장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완전 채식인 비건(vegan)뿐만 아니라 건강과 환경에 관심 많은 일반 대중까지 대체육을 찾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고기 대신 대체육을 먹어볼까?’ 하고 생각했던 게 ‘맛있네’로 이어지는 식이다.
물론 준비가 되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구인컴퍼니의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 이야기다. 비건의 존재 자체가 생소한 한국에서 대체육, 그러니까 콩고기는 절이나 요양원 같은 특수 시장에서나 쓰이는 음식이었다. 그 속에서 맛과 식감, 비주얼에 중점을 둔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가 등장했다.
언리미트를 만든 지구인컴퍼니의 민금채 대표를 7월 30일 오후 2시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위해 점심으로 언리미트의 대표 제품 ‘슬라이스’로 볶음 요리를 만들어 먹고 간 참이었다. 진짜 고기 같은 단면 색깔과 고기인 듯 고기 같지 않은 식감까지, 묻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어떻게 이런 식감을 만들었나요?’, ‘재료는?’, ‘제품 개발 기간은?’ 몰아치는 질문에도 민 대표는 턱턱 망설임 없이 답을 내놓았다.
#잡지사, 카카오커머스, 배민쿡 거쳐 푸드테크 스타트업 창업
Q. ‘지구인컴퍼니’의 뜻은 무엇인가.
A. 20대 시절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하던 모임 ‘지구인 프로젝트’에서 이름을 따 왔다. 당시에 “우리는 지구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야.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지구가 되게 건강할 텐데!”라고 말하며 그 이름을 지었다. 셰프, 농부, 기자 등 여러 직업군의 사람이 모여 캠핑을 하고 쓰레기를 줍는 모임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회사를 설립하고 이름을 지을 때 문득 다시 떠오르더라.
Q. 창업 전 여러 회사를 거쳤는데.
A. 잡지사 연예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내가 환경과 음식에 관심이 많구나’ 알게 됐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명품이 아닌 프라이탁, 탐스, 파타고니아 같은 친환경 브랜드 제품을 샀다. 그러한 가치 소비와 개발·제작 프로세스에 흥미가 많았던 것 같다. 현장 중심으로 활동한 기자 경험은 인생의 토대가 됐다.
좀 더 속도감 있는 현장을 경험하고 싶어서 카카오로 옮겼다. 카카오가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을 막 시작하던 참이었는데, 개발자와 합을 맞춰 콘텐츠 프로세싱을 하는 PD로 들어갔다. 지금은 없어진 스토리볼이라는 서비스를 담당했다. 이후 다음과 카카오의 합병 후처리 과정에 담당하던 파트가 없어지고, 커머스 사업부로 옮기면서 마케팅을 총괄하게 됐다. 그때 귤, 감자 등을 농부님과 교류하며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판매하는 작업을 했다. “부모님의 귤 농사가 올해 너무 풍년이라 가격이 폭락하고 잘 안 팔리던 와중에 카카오톡 선물하기 입점으로 살았다. 감사하다”는 전화를 받고 뿌듯했던 기억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다음엔 배달의민족에서 배민쿡, 밀키트 사업부를 담당했다. 그때 재고 농산물 처리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농가에서 판매를 할 수 없는 못생긴 감자나 고구마를 구매해서 그걸로 매시포테이토를 만들어 키트로 꾸미거나 레시피 콘텐츠를 만드는 식이었다. 2년 정도 하니 수익성을 따져 (밀키트 사업부가) 정리됐다. 이런 경험을 밑천 삼아서 2017년에 푸드테크 스타트업인 ‘지구인 컴퍼니’를 차렸다.
#못생긴 농산물 구조하다가 대체육 브랜드 출시한 이유
Q. 대체육 브랜드 ‘언리미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지구인컴퍼니의 시작은 ‘못생긴 농산물’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원물로 팔고 남은 걸 거래처 농부들에게 사서 잼이나 병조림, 퓨레, 스무디 등으로 재가공해서 판매했다. 2년여 간 53개 거래처로부터 포도, 복숭아, 감자 같은 걸 1020톤 사서 구조했다.
곡물 재고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대체육 버거인 ‘임파서블 버거’를 맛본 게 상품 개발로 이어졌다. ‘한국 사람의 입맛에 맞는 대체육을 개발해보자. 기왕이면 버려지는 농산물로 만들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1년간 개발했다.
못생긴 농산물과 대체육 사업은 필요한 역량이 완전히 다르다. 못생긴 농산물 사업은 소싱(재료 선택)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이 MD(상품 기획), 물류인데, 대체육은 R&D(연구·개발)가 핵심이다. 그만큼 제품 출시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미국의 유명한 대체육 브랜드들은 버거용 패티 중심인데, 한국 사람들은 주식이 밥이다 보니 ‘슬라이스’ 제품 개발에 공을 많이 들였다. 언리미트의 대체육 제품들은 곡물류를 사용해 모양과 맛을 낸다. 구워서 먹고 볶아서도 먹을 수 있다. 고기와 유사한 식감이나 모양을 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지금은 슬라이스가 대표 제품이 됐다.
Q. 국내 대체육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보나.
A. 비건 카테고리가 자리 잡은 미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이제 막 일반 대중 사이에 ‘그런 게 있어?’ 하고 인식되는 정도다. 실제 우리 제품의 구매 비중을 보면 비건과 관계없는 구매자가 60%, 비건 또는 비건에 관심 있는 구매자가 40%다. ‘저칼로리에 단백질 함량이 높으니 한번 먹어보자’는 미식의 개념으로 접하는 사람이 빠르게 늘었다. 육류 섭취를 줄이는 과정에서 대체육을 접하기도 하고.
그동안 국내에는 절이나 요양원 같은 특수시장을 상대하는 콩고기 회사는 있었지만 대체육 시장은 거의 없었다. 콩고기와 대체육은 다르다. 콩고기는 90% 이상의 대두단백으로 구성돼 식감이 푸석하고 ‘고기’의 모양새와는 거리가 멀지만, 대체육은 식감과 질감에서 훨씬 고기와 유사하다.
코로나19와 이상기후 현상이 관심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비건에 관심이 생겨서, 건강을 위해서 한번 먹어보는 소비자가 작년에 비해 올해 훨씬 많이 늘었다. 예상보다 성장세가 빨라졌다. 작년에만 해도 글로벌 프랜차이즈나 리테일 측 바이어 미팅을 가면 “한국 시장 규모가 얼마나 크겠어요?” 혹은 “누가 살 것 같나요?”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요즘엔 그런 질문을 받지 않게 됐다. 다들 동의하고 가는 거다.
Q. 지구인컴퍼니의 과제는.
A.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대체육 개발을 3년간 계속해왔고, 시장의 변화에도 빠르게 반응했다. 같이 일했던 김봉진 배달의민족 대표가 그런 말을 했다.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르니 항상 준비해두고, 운이 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기회를 놓치지 말고 폭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지금의 ‘슬라이스 구이용’ 제품은 2.0단계다. 내년 초에 3.0 버전을 출시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지금의 텍스처와 맛이 끝이 아니라 좀 더 고기에 가깝게, 맛있게 만들기 위해 업데이트를 하고 있다. 식감은 단백질 성분 압축술을 통해 조직감을 만들어 해결한다. 다음 버전에서는 슬라이스에 마블링을 넣어서 지방을 함유하려 한다. 반도체처럼 계속해서 고도화가 가능하다. 지금은 일부지만 버려지는 농산물을 더 많이 활용해 제품을 만드는 것도 계속해서 해나갈 과제다.
글로벌 기업 비욘드미트나 임파서블푸드엔 없는 슬라이스 제품의 기술력만 봐도 우리 제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활용도 면에서 아시아 사람들에게 경쟁력이 있다. ‘K-푸드’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기술 고도화와 함께 수출을 더욱 활발하게 해 세계에 우리 제품을 알리는 게 목표다.
민 대표는 과거에 육식주의자였다. 지금은 외부 약속이 아니면 굳이 고기를 찾지 않지만,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 비건은 아니다. 언리미트의 제품들도 ‘비건용’임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체육 시장이 주류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묻자 민 대표는 “‘좀 더 안전하고 맛있는 음식’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빠르게 다가온 지구의 위기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해 만족스런 선택지를 하나 더 늘려놓고 싶다”고 명쾌하게 답했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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