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25억 원 졸겐스마(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5억 원 킴리아(항암제) 등 첨단바이오의약품(혁신 신약)이 속속 등장하면서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초고가 의약품 건강보험 급여 적용을 어떤 방식으로 해주느냐는 것이다. 대체 의약품이 없는 등 꼭 필요한 약만 신속하게 건강보험 적용을 해주는 방향은 맞지만 건강보험 재정도 생각을 안 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현재 체계로 운영하되 몇몇 지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말한다.
고가 신약을 둘러싼 급여 논의를 촉발한 건 지난 14일 킴리아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제5차 암질환심의위원회에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면서다. 암질환심의위원회는 급여 평가 관문의 첫 단계다. 6차 위원회는 9월에 개최될 예정이라 건강보험 등재는 2개월 더 늦어지게 됐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건강보험 등재는 생명줄과도 같다”며 “신속한 건강보험 등재를 위해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정부와 제약사를 상대로 싸울 것”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환자들이 유독 빨리 건강보험 급여를 해달라고 절실히 외치는 건 이 약이 재발 또는 불응성 말기 급성림프구성 백혈병 및 림프종 환자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른 약이 듣지 않는 재발·불응성 환자의 생존 기간은 3~6개월 정도다. 킴리아는 외부 물질을 가져다 쓰는 기존 항암제와 달리, 자기 몸속 T세포를 개조해 암을 치료해 일부 환자의 수명을 연장한다. 맞춤형 의약품인 만큼 가격은 높다. 우리나라에서 킴리아 비급여 약값은 약 4억 6000만 원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난해 8월과 지난 6월 국내 허가된 킴리아와 졸겐스마를 이은 새로운 고가의 혁신 신약들이 미충족 수요를 겨냥하며 나올 예정이다.
과연 이들 의약품의 급여 적용은 어떻게 해줘야 할까. 우선 전문가들은 신속하게 논의해 급여를 등재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심평원 약제평가위원회가 한 달마다 열리는데 심사 물량이 꽤 밀려 있는 것으로 안다. 기존 건강보험 체계 안에서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신속 등재 제도를 도입해 시간을 단축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신약 급여는 120~150일 정도 시간이 걸리는 급여적정성 평가와 60일가량의 공단 약가 협상, 30일간의 복지부 상한금액 고시 등을 모두 거쳐야 한다. 1년 넘게 건강보험 등재 결정이 안 나는 약도 있다.
그러나 먼저 급여를 적용해주고 이후 평가를 진행해 효과가 없으면 급여에서 퇴출하는 ‘선 등재 후 평가’ 제도에는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관계자는 “모든 복지 영역에서 줬다 뺏는 것만큼 갈등을 유발하는 건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비용 효과성을 높인 급여 제도를 만들려면 몇몇 부분에서 보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건강보험 재정은 건강보험 가입자들의 세금으로 이뤄진 데다, 자칫 잘못 운영하면 의약품 급여를 기다리는 다른 환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정부는 2013년 대체 치료법이 없는 고가 의약품에 급여를 적용하고 제약사가 수익 일부를 환급해 위험을 부담하는 ‘위험분담제도’를 도입했는데, 이를 손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권혜영 목원대 의생명보건학부 교수는 “의약품 효과가 생각보다 안 나는 경우 지금은 제약사가 일부 책임을 진다. 그러나 약을 처방한 의사에게 주어지는 페널티는 없다. 실제로 의원에서 고가 의약품들이 말도 안 되게 많이 쓰이는데, 의사들은 처방만 하면 끝이다. 진료 행위에 대한 수가를 보류하고 있다가 환자가 효과가 없을 때 지급하지 않는 식의 연대 책임 구조로 가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권 교수는 “단 한 명의 국민이라도 살릴 수 있다면 약을 경제적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옳고, 한 제약사가 공급을 독점한 경우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다만 신약이 ‘마법의 탄환’처럼 여겨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킴리아 JULIET 임상2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투약 3개월 후 약에 반응한 환자는 53%다. 이 환자 중 암세포가 사라진 환자는 39.1%였다. 모두에게 ‘원샷 치료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6개월 생존이 예상됐던 환자의 40%가 1년 반~2년 생존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결과라는 반론도 있다.
위험분담제도 역시 제약사가 결정한 가격 구조 아래에서 진행된다고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김준현 건강정책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제약사가 독점적 권한을 지닌 비대칭적인 구조다. 정부가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할 수 있게끔 제약사가 제시한 나라별 의약품 비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는다. 그 상태에서 제약사가 결정한 가격을 기반으로 실시되는 위험분담제도는 제약사에 유리하다. 저개발 국가가 오히려 선진국보다 의약품 가격이 높게 책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제약사가 제시하는 비용이 적절한지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동근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정책팀장은 “제약사가 의약품 개발에 들인 원가와 개발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 등을 명확히 제시해, 그걸 토대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소장은 “개발비가 반영돼 약가가 높아진다면 보조금을 별도로 주는 등 약가를 별도로 접근하는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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