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대기업 수사를 보려면 이제 공정거래위원회를 봐야 합니다. 최근 검찰에서 대기업 수사한 것 잘 분석해보면 공정위가 고발한 건이 대부분입니다.” (대검찰청 관계자)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주춤하다지만,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여전히 수사를 하고 있다. 최근 법원에서 결심까지 진행된 이해욱 DL그룹(옛 대림) 회장 사건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이 회장이 그룹 호텔 브랜드인 글래드(GLAD)의 상표권을 자신과 아들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에 넘겨주고, 자회사가 사용하게 하는 수법으로 수익을 챙겼다고 보고 기소했다.
하지만 이 사건의 시작점은 검찰이 아니라 공정위였다. 공정위는 2019년 5월 이 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하며 대림산업과 오라관광, APD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13억 500만 원을 부과했다. 이처럼 최근 검찰이 대기업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범죄 첩보보다는 공정위 고발에 따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공정위가 검찰의 기업 수사를 주도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전자도 고발…기존 특수수사와 차별화
최근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삼성웰스토리에 대해 ‘삼성그룹 내부의 일감 몰아주기 없이는 자생하기 힘든 기업’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삼성전자와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등 4개사(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가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물량을 100% 몰아주고 높은 이익률이 보장되도록 계약을 한 것이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첩보로 검찰이 대기업 수사를 하는 관행이 사라지면서 공정위와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공조부)가 대기업 수사 공식 루트가 되어가고 있다. 원래 대기업 관련 비리 수사는 반부패수사부의 역할이었지만, 특수 수사를 제한하는 분위기 속에서 기업 수사는 ‘공정위 고발→서울중앙지검 공조부 수사’가 유일해지고 있다.
고발된 범위에 한해 수사를 한다는 점에서 기존 기업 수사와는 분명 다르다. 2015년 공조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특수부 사이에서 ‘공정위 하청을 맡아 처리하던 곳’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이제는 검찰에서 대기업에 철퇴를 가하는 거의 유일한 조직이 됐다.
문재인 정부가 △공정위에 힘을 실어주려 한 점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엄벌 방침 △직접수사 제한 속 ‘고발 사건’만 전담하는 공조부 특성이 맞물리다 보니 만들어진 새로운 분위기라는 평이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검찰 힘을 빼려고 한다지만, 공조부는 공정위와 함께 수사를 하는 곳이다 보니 잇따른 개혁 대상에서 늘 제외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대기업을 수사하는 거의 유일한 부서가 됐다”고 평가했다.
#성과는 상당…수년 동안 여러 대기업 기소
성과는 상당하다. 서울중앙지검은 공정위가 고발한 사건들을 차분하게 처리했다. 지난해부터 LS그룹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정몽진 KCC 회장의 차명회사 자료 누락,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의 계열사 부당지원 등을 잇달아 수사했다. 최근 횡령,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의 계열사 부당지원 사건 역시 공조부가 수사를 하다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에 이첩했다.
다음 수사 대상으로는 하이트진로가 거론된다. 지난 6월, 공정위는 공시대상기업집단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이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를 제출하면서 친족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와 친족 등을 고의로 누락한 행위를 적발해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박문덕 회장이 해당 지정자료 허위제출에 대한 인식 가능성이나 행위의 중대성이 상당하다고 보고 고발을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이 공정위 고발-서울중앙지검 공조부 수사의 단계를 피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공정위에서 조사를 할 때부터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검찰의 수사 및 형사 처벌은 피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며 “그러다 보니 전과 달리 이제 공정위 조사 때부터 로펌 등을 선임해서 매우 적극적으로 변론을 하려는 게 최근 몇 년 사이 만들어진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차해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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