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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거리가게' 갈등으로 청량리역 버스정류장 가로막은 80m 울타리

노점 대신 도입했지만 상가 사유지서 갈등 커져…서울시 "최선 방안, 협의해나갈 것"

2021.07.15(Thu) 11:32:16

[비즈한국] 노점과 지자체의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상인들은 노점 영업이 생계수단이라고 호소하지만 지자체는 시민의 통행을 보장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시행착오 끝에 서울시가 최종적으로 내놓은 대안이 ‘거리가게 허가제’다.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노점이 운영되던 공간에 판매대를 마련하고 노점상을 구청의 관리‧감독 하에 둔다는 취지다.

보도 곳곳에 무허가 노점이 깔려 있는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일대도 거리가게 정책이 추진되는 곳이다. 동대문구는 청량리역 광장 인근에 37개소, 청량리역을 둘러싸고 있는 왕산로 일대에 총 390개소의 노점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9년 거리가게 허가제 협약을 체결한 이후 노점을 가로 3m 또는 2m 규격의 판매대로 바꾸고 있다. 10년간 운영한 뒤 철거해야 하고, 기존 노점 상인 외에 신규 진입은 불가하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거리가게’를 둘러싼 잡음은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거리가게로 인해 사유지를 침해당했다는 상가 소유주들까지 가세해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청량리역 4번 출구와 5번 출구 사이에는 포장마차 노점들이 즐비하다. 사진=강은경 기자


#천막 노점‧거리가게 여전히 혼재

 

청량리역 4번 출구를 나서면 각종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다. 노점 뒤로는 청량리 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공사가 한창이다. 포장마차 한가운데에 ‘청소년 유해환경을 근절합시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지만 대낮에도 테이블 곳곳에는 술병이 놓여 있었다.

반면 5번 출구와 6번 출구 사잇길, 1번 출구 주변에는 천막 노점이 자취를 감췄다. 대신 거리가게들이 영업 중이다. 상인들은 매대에 의류와 생활용품, 과일 등을 진열해두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일부 상인은 보도 중간까지 상품을 깔아두기도 했지만 대부분 매대 안에서만 물건을 판다는 원칙을 지키는 듯했다. 상인들은 구청 직원이 매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점검을 나온다고 말했다.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에는 400여 개의 노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동대문구는 2019년 거리가게 허가제 협약을 체결하고 노점을 거리가게로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동북부 교통의 요충지로 꼽히는 청량리역은 노후했던 과거 모습을 버리고 탈바꿈 중이다. 서울 3대 집창촌으로 성업했던 ‘청량리 588’ 일대를 철거하고 재개발 사업을 통해 지역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역사 주변 노점상들을 정비하는 절차가 필수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3m 폭의 보도 절반 이상을 노점들이 점유한 상황에서 보행 편의와 위생 문제를 개선하는 문제가 시급하다는 시각이다.


#“거리가게가 사유지 침해” 길 한복판에 등장한 울타리

 

청량리우체국 맞은편에 위치한 주상복합건물 현대코아 앞에 설치된 철제 울타리도 거리가게 갈등의 부산물이다. 현대코아 측은 상가 소유의 땅에 거리가게 판매대가 설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12월 소유지 경계에 길이 약 80m, 높이 약 1.2m의 울타리를 세웠다.

 

청량리역 인근 주상복합건물 앞에는 상가 측이 거리가게 설치를 막고 사유지를 구분하기 위해 설치한 철제 울타리가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상가 앞 노점을 대상으로 거리가게 사업이 추진되기 시작한 건 작년 7월부터다. 구청은 상가 앞 도보에 8개 매대를 설치해 일부 상인들이 기존 자리에서 계속 영업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매대의 경우 인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노점들이 점유하던 보도 일부가 상가 소유지였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상가 측은 20여 년 동안 노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주장한다. 건물 설립 전 인근에 있는 노점상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철거했지만, 상가 관리가 소홀한 틈을 타 새로운 노점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는 것. 상가관리단 측은 지속적으로 구청에 철거를 요구하는 민원을 넣었지만 해결이 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복선 현대코아관리단 관리위원회 위원장은 “구청과 합의를 진행하기로 한 전날, 구청이 먼저 거리가게를 설치하려고 했다. 이를 막기 위해서 게릴라식으로 측량을 진행하고 울타리를 설치했다”며 “우리는 24년 만에 상가 땅을 되찾은 것뿐”이라고 말했다.

 

버스 정류장을 가로막고 있는 80m 길이의 철제 울타리로 인해 시민들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강은경 기자

 

구청, 노점, 상가의 ‘3자 갈등’이 야기한 피해는 시민들이 떠안게 됐다. 울타리로 인해 버스 정류장쪽 보도가 좁아지자 구청은 차선폭을 줄이고 보도블록을 깔아 길을 넓혔다. 그 덕에 25개 노선이 지나가는 정류장은 더욱 복잡해졌다. 또 80m 길이의 울타리가 버스 정류장과 보도를 가로지르는 탓에 울타리를 빙 둘러야만 버스를 탈 수 있게 됐다. 울타리 양 옆으로 자전거나 리어카까지 묶여 있어 통행에도 방해가 된다.

종종 상가 앞 정류장을 이용한다는 하 아무개 씨(57)는 “방금 상가 1층 마트에서 나오다가 버스 한 대를 놓쳤다. 주변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르신들은 더 힘들 것 같다”며 “시민들에게 불편을 전가하는 방식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상가 측은 이 같은 비판을 인지하고 있다며 “앞으로 울타리 중간을 개방해 통행을 원활하게 할 계획이 있다”고 전했다.

 

#거리가게 본질 두고 지자체-상가-노점연합 입장 차 

 

지자체와 상가, 노점은 ‘거리가게 허가제’를 두고 선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상가 측은 ‘무허가 노점의 영업권을 지자체가 보호하는 게 맞냐’며 지자체가 노점 상인의 생존권만 보호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점상들로 이루어진 민주노점상권연합(민노련)도 거리가게 제도에 반대한다. 거리가게 제도가 근본적으로는 노점상을 감축하기 위한 정책이라는 이유에서다. 민노련 관계자는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이 자리에서 영업자가 죽거나 그만두면 다른 상인이 들어올 수 없고 노점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청량리 지역 노점상들은 대부분 고령인데 10년 후면 자연스럽게 노점상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추진하는 정책이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거리가게 허가제’가 시민의 보행권과 노점의 운영권을 보장하는 상생 정책이라고 설명한다. 사진=강은경 기자

 

서울시는 이 같은 해석을 경계하며 노점의 생존권만 보호하려는 정책도, 노점 죽이기 정책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노점을 철거해 보행 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지자체의 의무와, 영업을 포기하지 않는 노점 사이에서 찾은 최선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서울시 보행정책과 관계자는 “정책 도입 배경에는 강제 철거가 어렵다는 전제가 있다. 철거가 가능했다면 이렇게 갈등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보도폭을 늘려 보행권과 미관을 개선하는 게 목적이고, 합의점을 찾기 위해 내놓은 상생 정책이다. 새로운 노점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동대문구청은 상가가 제기하는 사유지 침해 문제는 협의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동대문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는 “상가 관리단과 아파트 입주자 대표 측 모두 처음에는 거리가게 사업에 찬성을 했다. 이후 입장을 바꿔 반대하고 있지만 계속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사유지지만 공유지로 사용되는 성격이 있다. 교통방해가 성립되는지 확인해 울타리를 철거하는 안까지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전했다.​

강은경 기자

gong@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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