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1. 한 임산부가 식당 종업원에게 배를 걷어차였다는 글을 맘카페에 올리면서 전국적으로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경찰이 조사하면서 임산부의 말이 상당 부분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지만 해당 가게는 문을 닫았고 채선당은 회복할 수 없는 이미지 타격을 입었다. 2012년 ‘채선당 임산부 폭행 사건’이다.
#2. 배달 앱 ‘쿠팡이츠’를 통해 새우튀김을 주문한 한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자 이를 응대하던 점주가 뇌출혈로 쓰러져 사망했다. 바로 며칠 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통해 김치찜을 주문한 소비자가 음식에서 목장갑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오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점주는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배달 앱 측은 ‘손님 리뷰를 지울 수 없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2021년 소비자 갑질은 주로 배달 앱을 경유해 이뤄진다.
10여 년의 시차를 둔 두 사건은 소비자 갑질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과거엔 가게에서의 분쟁으로,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슈가 확산됐다면 이젠 ‘배달 앱 댓글’로 번진 양상이다. 정의당 6411민생특별위원회와 정의정책연구소가 지난 4월 16일부터 한 달여간 수도권 자영업자 183명을 대상으로 배달 앱 이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골목상권 업체 사장들의 74.3%가 ‘배달 앱 리뷰가 주문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했다. 또 별점 테러나 악성 리뷰로 인한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63.3%에 달했다.
고객 우선주의 마케팅 사례는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형마트들이 오프라인 매장 운영의 주요 전략으로 꼽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맛 없으면 100% 환불’ 전략도 소비자에게 구매 후 번복 가능성을 주며 ‘고객이 항상 옳다’는 프레임에 기여한다. 프랜차이즈 산업 규모가 큰 한국의 특수한 상황도 한몫한다. 하나의 매장이 타깃이 되면 전체 매장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번지게 되니 본사 입장에선 사실관계가 밝혀지기 전에 우선 숙이도록 종용할 수밖에 없다.
민동원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2013년 국제마케팅연구저널에 기재된 논문 ‘Is Power powerful? Power, confidence, and goal pursuit(힘은 위력적인가? 힘, 자신감, 목표 추구)’을 통해 이러한 고객 우선주의 마케팅의 부정적 영향을 꼬집었다. 이 논문은 “기업은 종종 ‘고객은 왕이다’, ‘고객이 항상 옳다’와 같은 문구를 통해 고객이 힘이 있다고 느끼도록 유도하지만 이런 전략은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객이 스스로 힘이 있다고 생각하면 규정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특별대우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서비스를 받으려면 지켜야 하는 ‘규정’ 같은 정보를 처리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해도 돼서 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이라기보다 특정한 사람들의 일탈이나 비뚤어진 인식에서 비롯된 사건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몇몇의 악질적 행태가 여러 가게를 향하고, 그로 인한 자영업자의 괴로움은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태가 계속됐다. 소비자는 가게를 괴롭힐 무수히 많은 방법이 있지만 이들로부터 자영업자를 보호하는 방법은 제대로 논의된 적 없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건 코로나19를 기회 삼아 급격히 성장한 배달 앱의 리뷰 시스템이다. 배달 앱 내 리뷰나 별점의 영향력은 큰 데 비해 점주가 악성 리뷰와 과도한 서비스 요청에 대응할 수단은 사실상 전무하다. 배달 앱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는 상황에서 점주에겐 소비자와 배달 앱 플랫폼, 두 개의 갑에 둘러싸인다.
한 자영업자는 “소비자는 필요에 의해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고 기업은 요청에 의해 활동을 하는 건데, 현실에선 대등한 관계로 여겨지지 않는다. 배달 앱 측이 쌍방의 평가 항목을 만들지 않고 소비자만이 점포를 평가할 수 있도록 만들면서 위계 관계가 더욱 뚜렷해졌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비대면 서비스의 확장이 이러한 소비자 갑질 행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동원 교수는 비즈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정반합의 토론보다 개인이 선호하는 정보만을 찾게 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혼자만의 생각과 행동이 검증이나 검토 없이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온라인을 통해 더 많은 정보에 노출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장이 마련됐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려는 경향이 강해지기도 했다. 몇몇 이슈가 된 사건에는 제동이 걸리는 모습이 가시적으로 보여져야 이러한 소비자 갑질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현 기자
kbh@bizhankook.com[핫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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