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한국]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직원들이 다시 전면파업에 나섰다. 2월과 6월에 이은 세 번째 파업이다. 지난달 파업으로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가 조성됐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건보공단 측은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파업을 접고 사무논의협의회에 참여해 논의할 것을 촉구한다”며 유감을 밝혔다. 여전히 일각에서는 “로또 취업을 바라는 거냐”며 비난을 쏟아낸다.
1일부터 재파업에 들어간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원들의 ‘진심’은 뭘까. 고객센터 직영화와 직접 고용 요구를 두고 ‘공정성 원칙을 훼손한다’는 반발이 거센 시점에서 그들은 왜 다시 비난받을 수 있는 수단을 택했을까. 직접 고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지난 4일 비즈한국은 서울 종로구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원 세 명을 만났다.
#실시간으로 등수 보며 일하는 건보공단 고객센터 직원들
인터뷰 당일은 건보공단 본사가 있는 강원도 원주 집결이 예정된 바로 전날이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직원들은 경기도 안산에서, 대구에서 서울을 찾았다. 12년 차 상담사인 여현옥 건보공단 고객센터지부 대구지회 지회장, 4년 차 김신아 경인지회 정책부장, 5년 차 조윤아 서울지회 노조 조합원은 이날 서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소속 업체도 모두 달랐다. 그러나 겪은 경험이 비슷해 같은 회사 직원과 다름없었다.
건보공단 고객센터 노조 조합원 970여 명이 3차 파업에 들어간 지 나흘째. 이들은 “한숨이 나온다”며 심경을 표했다. 민간위탁 사무논의협의회에서의 대화를 전제로 2차 파업을 철회했지만, 정작 협의회에서 ‘정규직 노조의 반발이 심해 설득 작업이 필요하다’는 등 이야기가 또다시 나왔다고 했다. “건보공단이 가지고 있는 안을 밝히고 그걸 함께 논의하면 되는데, 공단이 그걸 공표하지 않아요. 결국 교섭이 공전할 수밖에 없죠.”
소속도 사는 곳도 다른 이들이 합심해 인터뷰에 응한 건, ‘왜’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지를 들여다봐달라는 마음에서다. 2006년 건보공단 고객센터가 처음 출범할 때만 해도 공단에서 수행하던 업무가 고객센터로 이전돼 공단 직원과 외주업체 직원이 함께 상담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비용 절감을 위한 민영화 바람이 거세졌고 현재는 총 7개 건보공단 고객센터가 11개 민간 용역업체에 위탁을 하고 있다. 공단은 업체들과 2년 단위로 도급계약을 한다.
원래 공단이 수행해온 일을 민간 위탁업체에 소속된 고객센터 직원들이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도급인력계획 계약 기준 1632명의 직원이 1060여 개의 상담업무를 수행한다. 법이나 제도가 바뀔 때마다 해야 할 일은 늘어난다. 2011년 4대 보험 징수통합으로 보험료 징수업무가 더해졌고, 2019년 외국인 당연가입제도로 외국어 전화상담서비스로도 확대됐다. 지난해 1월부터는 코로나19 상담 역할도 맡고 있다. 백신 접종 예약 업무도 이들 몫이다.
자연스레 업무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원·하청 구조’가 짙게 자리한다. ‘건강보험 본부고객센터 위탁운영업체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1인당 상담시간, 특화상담 응대건수 등 생산성 부문에 40점으로 가장 큰 배점을 뒀다. 그러다 보니 민간 용역업체는 콜 수 압박을 가하게 된다.
김신아 정책부장은 “한 콜당 3분이 넘어가면 팀장이 개인 채팅으로 ‘왜 이렇게 길어지냐. 빨리 끊어라’고 독촉을 한다. 팀장은 팀원들의 통화 시간, 콜 수를 모두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윤아 조합원은 “팀·센터별 콜 수, 후처리(상담이 끝난 후에 하는 정리) 시간 순위가 한 시간에 한 번씩 나온다. 순위가 떨어지는 사람들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낙인찍히는 셈”이라고 밝혔다. 경인센터의 경우 이름 대신 사번으로 표시되도록 바뀌었지만, 사번 앞자리가 입사 연도라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다. 기저귀를 차거나 물을 적게 마시는 이유다. 직원들은 프로그램에 하루에 15~30분가량인 ‘개인 이석(공식적인 휴게 시간이 아닌 자리 이동)’을 체크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이석 시간이 길어지면 다음 날 아침 조회시간에 망신을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히 업체가 이전 달 대비 콜 수를 10~20% 올리는 ‘콜 프로모션’ 때는 고충이 더욱 심하다. “집중기간에는 하루에 170, 180콜씩 받으라고 해요. 이걸 못 맞추면 팀장이 ‘네가 못 맞추면 그걸 누가 하냐’고 불러서 혼을 내죠.”
업체에서 정한 콜 수 등 지표는 성과급을 가르는 요소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직원들 입장에서는 거역하기가 어렵다. 대구본부에서는 총 130명 직원 중 S등급에 해당하는 5명만 35만 원을 받고 등급이 낮은 다수 직원은 성과급을 아예 못 받는다. 서울3센터에서도 최고등급은 40만 원, 최하등급은 0원을 받는다. 그나마 노조가 생기면서 최고등급 성과급이 28만 원까지 줄어들었고, ‘콜을 잘 쳐내는’ 사람 다섯 명을 뽑아서 돈을 주는 제도도 항의 끝에 사라졌다.
철저한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통제되는 시스템이다. “S등급을 받으려면 0.1~0.2점 차이로 경쟁을 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팀 점수도 들어가요. 상담사 중에는 이런 시스템이 싫어서 최하등급을 받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팀이 목표로 한 콜 수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엔 팀 점수가 낮아지죠. 팀 동료들에게 매우 미움을 사게 돼요. 결국 서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구조죠.”
#공공 서비스는 무조건 효율적이어야 하나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단’을 만들기 위해 공공기관 최초로 출범한 고객센터지만, 이곳에선 아무 생각 없이 기계처럼 빨리빨리 움직이는 사람을 양산하고 있다. 고객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원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전화를 끊고 후처리 시간도 길어지면 감점이 돼요. 그만큼 정신없이 움직여야 하죠. 양심상 업무 시간이 끝나고 나서 고객에게 다시 전화 드린 적이 많아요. 업무 외 시간에 해야 회사에서 이야기가 안 나오니까요.”
비용 절감을 위해 원·하청 구조를 공공서비스에 도입한 사이,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공공성은 점점 약화하고 있다. 고객에게 설명을 더 해줘야 할 것 같아도 콜 수 압박 때문에 일단은 전화를 끊는다. 공단은 업체 평가 항목에서 상담 품질에도 총 40점을 배정했는데, 고객센터에서 처리할 수 있는데도 공단에 업무를 이관할 경우 점수가 가장 많이 깎인다. 원·하청 간 업무 범위가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 상태에서 3분 안에 어떻게든 고객센터 상담사가 요령껏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로 인한 업무 부담이 해마다 늘고 있다고 이들은 하소연한다.
건강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전체 국민의 징수, 건강검진, 보험급여 관련 업무 등 공단의 핵심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김 정책부장은 “원래 입사하면 한 달 정도 신입 팀에서 근무하면서 배웠다. 그런데 업무가 많아지고 콜이 밀리니까 어느 순간부터 팀을 만드는 것 자체가 기피된다”며 “제도가 변경되면 상담사들이 알아서 익혀야 한다. 참고 프로그램은 있지만 숙달되지 않으면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기 쉽지 않다. 그래서 신입 퇴사율이 높다”고 했다.
이들은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내던져진 건강보험 고객센터 상담 업무의 이점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단순 인력 업체인 민간업체가 차별과 건강 불평등을 야기하는 상황을 용인해야 하는지, 국민들은 전문성이 떨어진 공공 서비스를 계속 누려야만 하는지, 결국엔 불필요한 사회 비용이 커지는 건 아닌지 고민해봐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험을 치지 않았으니 차별받아도 돼’라는 이야기가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고 여현옥 지회장은 말했다. 이어 “‘공정’이라는 가치에 기대 기득권자의 눈으로 서열을 매기는 게 우리가 원하는 사회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김신아 정책부장은 “임금을 똑같이 적용해달라는 게 아니라, 별도 직군을 만들어서 현재 들어가는 도급비용을 상담사를 위해 써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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