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전체메뉴
HOME > Target@Biz > 비즈

[K제약 스토리] 제약·바이오 기술수출 6조 원, 정말 성과일까

자금 확보나 인허가 제약으로 기술수출 나서…"핵심기술 해외 유출, 국내 혁신신약 나오는 게 중요" 비판도

2021.07.02(Fri) 14:47:49

[비즈한국] 우리나라 제약 산업은 경제 규모에 비해 매우 더디게 발전했다. 국가 주도로 특정 산업을 집중 육성해 단기간에 산업화를 이루었지만, 제약 산업은 기초 과학이 뒷받침돼야 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요즘, 우리나라는 ‘카피약 강국’이라는 오명을 벗고 선진국과 나란히 경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비즈한국’은 우리나라 제약 산업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제약 산업이 지닌 잠재력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점쳐본다.

 

올해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성사된 기술수출 규모가 6조 원가량에 달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1월 1일부터 6월 30일까지 총 13건의 기술수출 계약이 이뤄졌다. 사상 최대를 기록했던 2020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 수출액(약 10조 원)의 60%에 달한다. 임상3상까지 완료하기보다 국내 기업들이 해외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고 기술료 및 로열티를 받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제약·바이오 업계가 기술수출 규모를 늘리기까지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다국적 제약사가) 물질을 아주 싼값에 사가서 시장이 커지지 않게 (물질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기술수출이 이어지면 국내 산업이 성장하는 것 맞느냐’는 질문도 따라다녔다. 역대 최대 규모 기술수출을 기록했지만 의문점은 남는다. 신약 개발 능력은 높아졌는데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기술수출을 전략으로 채택하는 배경이 뭘까.

 

올해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성사된 기술수출 규모가 6조 원가량에 달한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기술수출을 전략으로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술수출 관심 갈수록 높아진 제약·바이오 업계

 

업계에서 기술수출이 활발해지기 시작한 시점은 1980년대 후반이다. 1987년 물질특허 제도가 도입되면서 신약 개발을 둘러싼 업계 관심이 높아졌다. 그러면서 해외 제약사가 국내 기업의 물질을 사 갔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왔다. 1989년 한미약품이 스위스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개량 제조 방법을 수출했다. 국내 제약사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6년에 걸쳐 총 600만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제조기술을 넘겼다.

 

1990년대 들어서는 대기업들이 제약 사업을 강화하면서 기술수출이 더욱 활발해졌다. 제약 산업 전망이 긍정적으로 평가되면서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기존 제약사를 대기업들이 인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약 연구개발과 기술 수출에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대표적으로 미원은 1993년 제약사업부를 신설하고 이듬해 100억 원을 들여 의약품 공장을 짓더니 인도 제약사 말라디그룹에 항생제 합성 제조기술을 수출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지금 들어도 알 만한 기업들이 기술 이전 소식을 전했다. 1994년 유한양행은 일본 그레란에 간장질환 치료제를 기술 수출했다. 1997년에는 한미약품이 스위스 노바티스에 자체 개발한 마이크로에멀전 제제 기술을 이전했다. 이듬해에는 유한양행과 종근당이 각각 미국 다국적 제약사에 면역억제제 개발기술을 넘기고 기술이전료를 챙겼다. 2000년 유한양행은 영국 제약사 스미스클라인비참에 위궤양 치료신약 기술과 제조 및 판매권을 넘기는 계약을 체결했는데, 당시 기술수출료(1억 달러)는 유한양행 순이익의 3배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 업계에 연구개발(R&D) 능력을 키우려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연구소를 신규로 짓거나 증설했다. 과학기술부 등 정부 부처도 신약개발에 뛰어들었고 신약 관련 세제 지원정책이 만들어졌다. 다만 업계에서는 임상시험을 끝까지 진행하기보다 기술력과 자금력이 있는 글로벌 제약사에 넘기는 게 투자 위험이 적다고 판단했다. 기술수출 건수는 2001~2005년 14건, 2006~2010년 42건, 2011~2015년 70건가량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신약개발 역량이 강화됐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국내 핵심 기술이 결국에는 다국적 제약사에게 팔려나가는 상황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의 신약개발 역량이 강화됐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국내 핵심 기술이 결국에는 다국적 제약사의 손에 팔려나가는 상황을 두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또 기술이전을 통한 매출 증가와 그로 인한 회사 성장, 브랜드 가치 제고를 늘 기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1997년 LG생명과학은 국산 신약 중 처음으로 미국 FDA(식품의약국) 승인을 받은 항생제 팩티브를 영국 GSK에 넘겼지만, 2002년 GSK는 권리를 반환했다. 예상보다 시장 잠재력이 낮으리라 판단된다는 점이 반환 이유로 알려졌다. 일양약품은 항궤양제 일라프라졸을 미국 TAP(현 다케다아메리카)에 2005년 기술수출했다. 그러나 2009년 TAP는 임상3상을 돌연 중단했다. TAP는 일본 다케다의 현지 법인인데 당시 다케다가 항궤양제를 자체 개발 중이었던 터라, 경쟁 약물을 없애기 위한 전략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실탄 확보 위해 기술수출 계약…그러나 성과로 볼 수 있을지는 ‘의문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을 둘러싸고 회의적인 반응이 일기도 했으나, 2015년 이후 기술수출 계약이 잇따라 나왔다. 2015년 26건, 2016년 8건, 2017년 8건, 2018년 11건, 2019년 14건, 2020년 13건 정도다. 2015년 한미약품이 프랑스 제약사 사노피아벤티스와 약 5조 원에 달하는 당뇨치료제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는 등 그해에만 7조 원 계약을 성사시켰고, 그 이후 다른 제약사들 역시 기술수출에 도전했다.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사노피는 경영전략 변경 등을 이유로 한미약품에 당뇨치료제 권리를 반환했다. 그럼에도 기술수출 규모는 커지는 추세다. 2017년 1조 4000억 원, 2018년 5조 3700억 원, 2019년 8조 5160억 원, 2020년 10조 원 정도다. 올해 상반기 기술수출 계약규모는 6조 원을 기록했다. 

 

국내 기업들의 신약 개발 역량이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업계가 기술수출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개된 기술수출 계약 내용 기준 가장 큰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기업은 GC녹십자랩셀과 미국 현지법인 아비타 바이오테라퓨틱스다. 이들 기업은 미국 MSD에 고형암 세포치료제 개발과 상업화 권리를 2조 900억 원에 넘겼다. 대웅제약은 상반기 세 건의 기술수출 계약(총 8940억 원)을 체결했다. 이 외에도 제넥신, LG화학, HK이노엔 등이 기술수출에 나섰다. 이러한 흐름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실탄을 확보하길 원하는 국내 기업들과, 파이프라인을 늘리려는 글로벌 제약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물론 국내 기업들의 신약 개발 역량이 인정받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업계가 기술수출에 나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재천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 사무국장은 “그간 임상 경험이 쌓이고 가이드라인이 생기면서 국내 임상 여건이 나아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인허가 기관인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전문성이 높아지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서류 보완 요청을 하거나 거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실 외국 자료는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제약사들이나 CRO(임상시험수탁기관)들이 고충을 토로하며 아예 해외로 향한다”고 꼬집었다.

 

이어 여 사무국장은 “(기술수출이 활발한 데는) 임상시험을 끝까지 지속해나가기엔 박사급 전문 인력이나 회사 자금이 부족한 것도 작용한다. 또 외국에서 허가를 받거나 마케팅 능력을 확보하는 데 장벽을 느낀 기업들이 아예 기술수출을 택하기도 한다”며 “글로벌 제약사들의 기술수출은 앞으로 점점 활발해질 것이다. 그러나 사실 기술수출한 의약품이 성공해도 우리나라의 성과라고 보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 혁신 신약이 나오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명선 기자

line23@bizhankook.com

[핫클릭]

· [K제약 스토리] '한국판 화이자' 꿈꾸는 제약사 M&A 역사
· [K제약 스토리] '천연두에서 백신 주권까지' 우리나라 백신의 역사
· [K제약 스토리] 33호까지 나온 K-신약 '아직 갈 길 멀었다'
· [K제약 스토리] '금계랍에서 BTS까지' 의약품 광고 변천사
· [K제약 스토리] 동아제약·일동제약, 박카스와 아로나민의 '위로' 계속될까


<저작권자 ⓒ 비즈한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