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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아버지만 한 아들 없다? 한 세대 만에 사라진 건설명가 삼환

대형 호텔 시공과 1980년대 중동 건설로 명성…글로벌 금융위기에 비자금 조성 등으로 풀썩

2021.06.29(Tue) 18:11:18

[비즈한국] 신라호텔, 워커힐호텔 등 국내 대형 호텔들을 공사하며 이름을 알린 건설업 1세대 삼환그룹은 빌딩, 호텔 등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다지며 성장했다. 삼환그룹은 외환위기에 좌초되는 여러 건설 기업 가운데서도 꿋꿋이 생존해 내실을 짐작할 수 있는데, 이는 최종환 삼환그룹 창업주의 경영 방식 덕이었다. 문어발식 확장 대신 건설업에 집중한 덕에 성장세는 더뎌도 튼튼한 그룹으로 자리 잡은 것. 하지만 경영 2세대의 비리와 남매의 난으로 삼환그룹은 급속히 무너져 내렸다. 

 

#‘환’ 돌림 삼형제 이름 따서 만든 삼환기업

 

최종환 삼환그룹 창업주는 1924년 5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했다. 글재주가 뛰어나 각종 작문 대회에서 1등을 휩쓸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궁핍한 살림에 아버지가 사망하며 가세가 더욱 기울어졌기 때문이다. 첫째 형과 둘째 형은 수도·난방공사 자재를 생산하는 제작소에서 일하며 남은 자투리 파이프를 재가공해 납품하며 돈을 벌었다. 최종환도 18세에 형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1983년 9월 9일 신라호텔에서 최종환 세계건설 협회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해방 후인 1946년 삼형제의 이름 끝자인 ‘환’을 따서 삼환기업공사를 설립했다. 실질적인 경영자는 최종환이었다. 최종환 창업주가 회사를 세운 까닭은 당시 주한미군이 토목·수도·난방 등 업종별로 공사를 따로 발주하지 않고 한 업체에 통째로 맡겼기 때문이었다. 

 

삼환기업은 주한미군 공사를 수주하며 2년 만에 서울 을지로에 사옥을 세울 만큼 빠르게 성장했다. 6·25전쟁을 겪은 후에는 전후 복구 사업을 통해 사세를 확장했으며, 1952년 9월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당시 최종환 창업주가 1만 주, 둘째 형 최영환 씨가 5000주, 첫째 형 최명환 씨가 500주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1962년 삼환기업은 공개입찰에서 유명한 건설사들을 제치고 서울 광장동의 워커힐 호텔 공사를 수주하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1960년대 후반까지 신라호텔, 조선호텔, 삼일빌딩 등 유명한 빌딩과 대형 호텔을 도맡아 건축했다. 당시 삼환은 국내 시공 능력 4위를 기록하며 입지를 다졌다. 

 

최종환 회장은 국내 건설업계에서 입지를 다지며 해외 진출도 꿈꿨다. 1963년 베트남에 지사를 설립하고 해외 진출을 시도했지만 4개월 만에 철수했다. 이어 196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한국 업체 최초로 지사를 설립해 해외 건설 사업에 포문을 열었다. 1973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 여러 번 실패를 겪은 후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하게 된다. 하지만 완공 때까지 자재 공급난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자를 면치 못했다.

 

이후 ‘제다시 미화공사’를 메카 순례기간 전까지 마무리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따낸 삼환은 횃불을 켜놓고 야간공사를 진행했다. 당시 파이잘 국왕이 이를 보고 감동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계기로 삼환은 6000만 달러 규모의 대형 공사까지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삼환그룹은 1980년대에 예멘, 요르단, 미국 알래스카 등 세계 각국에 시장을 개척하는 성과를 이뤘다.

 

경동산업, 우성식품, 태양관광 등 9개의 계열사가 늘었지만 친·인척들이 경영했고, 최종환 회장은 건설업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2세대로 접어든 후 잡음 끊이지 않아

 

최종환 회장은 1996년 회사 창립 50주년에 아들 최용권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고 경영에서 물러났다. 외환위기 당시 최종환 창업주의 형제들이 운영하던 경동산업, 우성식품은 자금난과 방만한 경영 탓에 정리됐지만 삼환기업은 무리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최용권 회장이 경영을 책임진 이후 삼환은 점차 몰락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사업에 진출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외환위기 직후 불법 정리해고 논란 및 비자금 문제를 겪었다. 2008년 말 시작된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2010년 1조 1373억 원이던 매출은 2011년 8600억 원대로 급감했고 영업손실과 부채는 크게 증가했다.

 

2010년 1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30대그룹 간담회에서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12년 7월 70억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한 삼환기업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 소공동 부지를 1721억 원에 부영주택에 매각하고, 최용권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지분 12%를 내놓고 사재출연을 약속하면서 삼환기업은 2013년 1월 17일 법정관리 종결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법정관리 도중에 최용권 회장이 차명계좌를 통해 100억 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부 직원의 폭로가 나왔고, 노조가 이를 검찰에 고발했다. 최 회장은 계열사인 신민상호저축은행을 통해 수십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하고 거액의 사업자금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와 계열사를 부당 지원해 183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기소됐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동생이 최용권 회장을 고소하는 악재가 겹치게 된다. 고소장에는 최용권 회장이 4500억 원에 달하는 재산을 해외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내용과 함께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도피와 외국환거래법 위반, 조세 포탈 혐의 등이 적시됐다. 이런 악재가 이어지자 약속했던 사재 출연은 진행되지 않았다.

 

결국 삼환그룹은 ‘부실기업’ 낙인이 찍혀 자금난에 시달리다가, 2016년 10월 소액주주들의 주도로 다시 한번 법정관리에 돌입했고, 2018년 5월 SM그룹에 630억 원에 매각돼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계열사들도 이 시기를 전후해 청산됐다. 

정동민 기자 workhard@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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