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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의 한국인 개발자 3인을 만나다②

베를린에 오기까지, 그리고 유럽에서 경험한 스타트업과 개발자 문화에 대하여

2021.06.28(Mon) 10:42:49

[비즈한국] 유럽에서 한국인 개발자로 일하는 것은 어떨까. 독일 베를린의 핀테크 분야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개발자 3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 인슈어테크의 강자 엘레멘트(Element Insurance AG)에서 시니어 데이터 엔지니어로 일하는 안광택, 한국 배달의민족을 인수한 딜리버리 히어로(Delivery Hero SE)의 결제 부문 엔지니어 오준석, 세금 연말정산 모바일 앱 택스픽스(Taxfix GmbH)의 주니어 개발자 이수진, 세 사람이 그 주인공이다.

 

[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의 한국인 개발자 3인을 만나다①에서 이어집니다.


유럽에서 개발자로 일하는 것은 어떨까. 독일 베를린의 핀테크 분야에서 활약 중인 한국인 개발자 3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어떻게 보면 관료주의적인 유럽의 행정 시스템과의 전쟁이라는 생각도 든다. 스타트업이 혁신을 꾀하는 데에서 한국에서 이미 경험한 ‘빠른 문화’가 도움이 될 것 같다.  

 

안광택(안): 개발자로서 베를린에서 일하면서 정말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2019년에 베를린연방법원 컴퓨터가 트로이 목마 바이러스가 걸려서 급하게 업무를 타자기와 팩스로 진행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베를린법원이 그때까지 ‘윈도우95’ 운영체제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속해서 업데이트를 권장하고, 바이러스에 취약하므로 새로운 운영체제를 써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다 일이 터진 거다. 이 일은 독일 관료주의의 보수성을 암시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아 있다. 긍정적으로 보자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해야 할 일이 그만큼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준석(오): 일본 한 지방은행에서 2020년까지 플로피 디스크를 썼다는 뉴스도 본 적 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이 정말 변화가 빠르다. 그만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회사 분야에 관하여 사전 지식이 있었나. 개발자로서 그 산업을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는가. 

 

안: 나는 게임회사 네오위즈에서 일하다가 넥슨으로 이직하면서 베를린에 오게 되었다. 이후 일본계 이커머스 회사인 라쿠텐 도이칠란트로 이직했는데, 어떻게 보면 이직할 때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셈이다. 엘레멘트에 입사했을 때는 보험에 관한 사전지식은 많이 없었다. 입사하고 나서 프로베이션 기간에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개발자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회사마다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업무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데이터 분석과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즈니스를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프로덕트를 만드는지 자세하게 알아야 하기 때문에 보험에 대해서 많이 공부했다. 보통 프로덕트 하나마다 복잡한 알고리즘이 있다. 이걸 하려면 그 비즈니스에 대한 이해가 필수다. 이후 매뉴얼 작업이 많았는데, 그걸 요즘은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으로 바꾸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다. 

 

베를린 인슈어테크 스타트업 엘레멘트의 안광택 시니어 데이터 엔지니어. 사진=안광택 제공

 

-회사에서 교육과 관련한 지원이 있나.

 

안: 커리큘럼이 있다. 교육 프로세스가 있고, 팀별로도 세션이 다 있다. 원하면 매니저, 팀원에게 부탁해서 보험 관련 워크숍을 신청할 수 있다. 이전에 근무한 라쿠텐에도 교육 과정이 있어서 특정 포지션에 관심이 있으면 교육이나 멘토링 받을 기회가 있었다. 라쿠텐 독일 지사의 경우 밤베르크와 베를린 두 지역에 회사가 있었는데, 두 사무실 오가며 원격으로 일하고 교육 받을 수 있다. 특정 교육을 받고 싶거나 프로젝트에 누군가의 리드가 필요하다 하면 HR  또는 직속 매니저에게 ‘이 사람과 프로젝트를 같이 하고 싶다, 리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신청하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수진(이): 우리도 그런 부분에서는 지원이 있다. 워낙 글로벌한 곳이기도 하고 소통이 중요하다 보니까 기본적으로 영어와 관련한 수업은 지원해준다. 나도 입사 후 지금까지 매일 일주일에 한 번 회사에서 지원하는 ‘비즈니스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다. 

 

-다른 두 사람은 어떻게 베를린에 오게 되었나. 

 

오: 한국에서 카카오에서 일했다. 웹 검색과 관련한 업무를 맡았는데, 일정 설정과 업무량 분배에 부담이 없었고 워라밸이 좋았다. 하지만 부서에서 사용하는 기술이 시대에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일의 성과가 서비스 품질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점점 불안해졌고, 내가 개발자로서 어떤 비전을 갖고 일하는지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대한 사상, 익스트림 프로그래밍 등을 배우면서 이를 바탕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시아권보다는 유럽권이 낫다는 생각에 고민이 길어졌다. 그렇게 리서치를 시작했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는 제외했다. 그러니 싱가포르, 베를린 등이 후보지로 남았다. 기왕 가는 김에 유럽권으로 가자 하는 생각에 베를린으로 왔다. 비자가 잘 나온다는 것도 영향이 컸다. 취업하기까지 과정은 수월했다. 베를린 도착 후 취업까지 6개월 정도 걸렸다. 지금은 한국에서 안 하던 야근을 한다. 

 

이: 원래 개발자가 아니었다. 3년 정도 기획 일을 하다가 미래가 안 보여서 개발자로 커리어를 바꿨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기술면접을 통과해도 ‘원래 개발자가 아니었다’는 선입견이 많았다. 그래서 해외 취업이 훨씬 쉬웠다. 베를린에 오기 전, 싱가포르에서 국영 언론사 데이터 시각화 팀에 일했다. 일은 재미있게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국영 언론사이다 보니 보수적이었다. 싱가포르가 워낙 작아 뉴스거리도 별로 없었다. 동남아가 미래라는 생각에 계속 있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 한계를 느껴서 이직을 고민하던 차에, 택스픽스에 있는 한국인 지인이 추천해서 면접을 봐 오게 되었다. 

 

되돌아보면 싱가포르에서도 베를린에서도 쉽게 취직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레벨이면 한국보다 해외가 훨씬 취업의 문턱이 낮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가진 백그라운드를 별로 안 보기 때문이다. 오로지 능력만을 본다. 우리 회사에는 과거에 DJ, 바텐더, 택시기사를 했던 개발자들도 있다. 우리 팀의 주니어 개발자가 택시 운전을 하다 입사한 40대다. 이 사람은 택시 운전하면서 개발에 관심이 생겨 운전하는 동안 오디오로 개발 관련 강의를 듣고 퇴근 후 집에 와서 독학했다. 그러다 택시에 탄 손님이 오디오 강의를 듣고 베를린의 개발자 밋업을 소개해줬다. 그 밋업에서 우리 회사를 알게 되어 지원했다고 하더라. 그런 식으로 직업을 바꾼 사람을 많이 봤다. 근데 그분이 진짜 개발을 잘한다. 

 

베를린 세금 연말정산 앱 서비스 스타트업 택스픽스의 이수진 개발자. 사진=이수진 제공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다. 다른 분야에서 왔음에도 개발을 잘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나도 개발자 출신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개발을 잘하는지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잘 살펴보니, 회사에서 우리에게 주는 업무가 다르더라. 한국에서 주니어로 잠깐 일했을 때는 허드렛일 한 기억밖에 없다. 미팅노트 정리하고, 좌표 정리하는 너무 단순한 작업을 많이 했다. 인사이트를 발견하고, 스스로 고민해서 진행하는 일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내가 고민해서 갖고 가도 위에서 정리해서 내려온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니어에게도 정말 중요한 일을 맡긴다. 과제를 주더라도 고급 데이터를 주고, 회사에서 정말 고민하는 문제도 던져준다. 그리고 무조건 발표를 시킨다. 나도 입사하고 나서 발표를 진짜 많이 했다. 못하기가 힘든 환경이다. 기능 개발 같은 것을 하면 엔드 투 엔드까지 내가 다 해야 한다. 장점도 있지만 이게 진짜 힘들다. 한국에는 사수 개념이 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고 지도해 주는데, 여기는 너무 자유로우니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다. 하지만 이런 베를린 시스템에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몇 번 하게 되면 실력이 급격하게 는다. 주변 개발자들과 함께 성장하고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런 문화 자체가 부럽다. 어쩌면 개발자들 특유의 문화라는 생각도 든다. 

 

오: 그 고유성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개발자 문화’라는 말을 별개의 용어처럼 사용하는 것 같다. 문화라고 하면 두루뭉술하지만, 대체로 개인이 일을 대하는 태도와 조직이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투명성과 수평성이다. 물론 경영진과 실무진 사이에서는 큰 벽이 있다. 하지만 실무진 사이에는 웬만한 정보가 다 공유된다. 한국에서는 같은 회사 내에서도 부서가 다르면 서로의 소스 코드를 볼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수평적 의사소통도 인상적이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옆자리의 엔지니어가 궁금한 게 있다며 면식 없는 다른 부서의 팀장에서 직접 말을 거는 모습을 봤다. 한국이라면 부서와 직급의 장벽을 넘느라 얼마간 시간을 소모해야 했을 거다. 무엇이든 공유할 수 있고 누구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 보니 의사소통이 정말 명쾌하다.

 

딜리버리 히어로의 오준석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사진=오준석 제공

 

안: 라쿠텐의 경우는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CEO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기업 철학이다. 그렇게 회사의 교육 프로세스가 만들어졌다. 모든 독일 기업이 그런 문화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교육이나 멘토링이 없는 곳도 있다. 

 

이: 그렇기도 하고,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서로 성장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한다. 우리 회사에서도 업무 수행 방식을 정말 다양하게 시도하는데, 사운드 클라우드에서 한 방식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가령 엔지니어가 70%는 자기의 주 업무, 30%는 다른 업무를 해보는 것이다. 내가 프론트 엔드를 하지만 데이터 쪽에 관심이 있으면 30%의 업무는 데이터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해보는 것이다. 거기서 업무를 관찰하면서 공부를 하며 직무역량을 키운다. 나도 어드민 쪽 툴만 하니까 서비스 쪽 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그래서 서비스 앱 팀에 가서 일을 처리하면서 코드 돌아가는 법, 서비스 돌아가는 법에 대해서 배웠다. 그러면서 전체적으로 공부가 되고 회사와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높아졌다. 이런 게 커리어가 되어서 이후 다른 업무로 진출하는 경우도 봤다. 그런데 결국 이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다들 자기 주 업무가 너무 바빠지다 보니 다른 업무에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할 여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대신 지금은 러닝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업무는 업무대로, 배우는 것은 배우는 것대로 따로 한다. 

 

[유럽스타트업열전] 베를린의 한국인 개발자 3인을 만나다③으로 계속됩니다.

 

필자 이은서는 베를린에서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왔다가 향수병에 못 이겨 다시 베를린에 와 살고 있다. 다양한 스타트업과 함께 일하며, 독일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기업, 한국 시장을 공략하려는 독일 기업을 안내하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

이은서 칼럼니스트 writer@biz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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